이번 학기 기자는 교환학생으로서 미국 대학교에 다녔습니다.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고 즐거운 여행도 했지만 학생으로 생활한 만큼 한국과 사뭇 다른 수업 방식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많아봐야 스무 명뿐인 강의실에 교수님보다 학생들이 더 말을 많이 하는 진귀한 풍경까지. 말로만 듣던 미국식 수업을 직접 들어보니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죠.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평가 방식입니다. 미국 대학은 대부분 절대평가 방식을 취합니다. 기자가 다녔던 학교도 마찬가지였죠. 다른 학생 점수와 상관없이 본인이 90~100점을 받았으면 A, 80~90점을 받았으면 A-와 같은 식으로 성적을 받습니다. 덕분에 학기가 끝난 지금, 기자는 총 7학기의 대학 생활 중 처음으로 불만 없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상대평가는 다함께 열심히 한들 누군가는 반드시 낮은 위치를 부여받아야만 한다는 가장 큰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즉 누군가는 반드시 C이하 학점을 받아야 하죠. A, B학점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이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2학년 때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들은 전공수업이 있었습니다. 출석·과제·발표·시험, 그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죠. 그러나 성적 조회 날 기자는 좌절감과 허무함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게 세상살이 아니겠냐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사회에서 넘치도록 실감할 유리천장을 굳이 교육현장에서부터 느껴야 하나 싶었습니다. 당시 교수님께서도 “모든 학생들이 A학점을 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잘 해주었는데 누군가에게 꼭 C 이하의 성적을 줘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고 하셨죠.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교수님들이 괴로움을 이겨내고자 문제 난이도를 높여 버리는 겁니다. 수업 목표와 상관없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내는 거죠. 기자는 “다들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를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도 심심치 않게 뵀죠. 오로지 성적 분포를 위해 난이도를 높여야만 하는 게 과연 이상적인 교육의 방식일까요.

  절대평가는 학생 간 경쟁을 줄이고 협동을 도모하도록 돕습니다. ‘비교’라는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같이 수업 듣는 친구를 경계할 필요가 없죠. 오로지 나 자신과만 싸우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수업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서로 응원해주고 도와주며 다 같이 성적을 잘 받아보자는 따뜻한 분위기였죠.

  변별력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을 테지요. 기자도 우려했던 사항이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제가 많고 참여 점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노력 없이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교육 목적은 행복한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남을 꺾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기르기보다는 서로 협력하며 스스로 노력해 그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행복한 민주주의 시민을 육성하는 게 더 나은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요.

홍설혜 뉴미디어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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