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이 흐리다. 요 며칠간 하늘이 우중충한 게 금방 비가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눈물을 흘릴 듯, 말 듯 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툭, 투툭 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무도회가 시작된다. 내 방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그 어느 날보다 짙은 색을 뽐내며 바람에 부지런히 움직인다. 고요한 그들의 축제 속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사람들은 비가 싫은가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망가지고, 옷도 젖고, 눅눅한 그 기분을 누가 좋아할까. 비를 어떻게든 맞지 않기 위해, 떨어지는 비 사이로,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재빠르게 뛰어다닌다. 우산이 없는 나는 그 모습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한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나는 달팽이를 참 좋아했다. 비가 내리는 날의 수국 근처에는 습기를 느끼고 나온 달팽이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달팽이를 만날 수 있는 비 오는 날이 참 좋았다. 창밖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걸을 때마다 뾱뾱 소리가 나는 오리가 그려진 노란색 장화를 신은 채로, 엄마 팔을 붙잡고 집 밖을 나섰다. 그렇게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달팽이를 구경하다가, 엄마가 들고 있던 우산을 옆으로 슥 치우는 장난을 치곤 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만의 작은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비 맞는 게 뭐가 그리 즐거운 일이었는지, 한 방울, 두 방울 맞을 때마다 웃음소리가 더불어 커졌다. 비를 맞는다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감기 걸린다. 이제 들어가자.’

  엄마의 그 말이 나올 때까지, 나는 한참이고 빗속에서 뛰어다니곤 했다.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오면 엄마는 차를 한 잔 끓여왔다. 호호 불어가며 따끈하게 식은 차를 마시면서, 엄마랑 창밖의 조용한 잔치를 지켜보는 게 비 오는 날의 해야 할 일이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왕 젖은 김에 실컷 맞아보라고 했다. 비를 느껴보라고 말했다. 분명히 나는, 비가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이면, 달팽이들은 햇빛을 피해서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어디엔가 숨어있던 사람들은 비가 그치고 나서야 밖으로 나선다. 비가 한껏 내리고 난 뒤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파랗다. 사람들은 다들 비가 오지 않는 파란 하늘을 좋아한다. 사실, 그건 비를 맞아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소풍이 예정되어 있던 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소풍이 연기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소풍은 밀렸고, 친구들은 다들 실망했다. 푸른 잔디밭이 아니라, 어둡고 퀴퀴하게 습기 찬 교실에 앉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극적으로 내리던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다 적셔버릴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등에 젖어 들어가는 그 차가운 느낌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세상은 모두 젖어 들어갔고, 예외 없이 물에 젖어버린 서로를 보며, 친구와 나는 언제 소풍이 취소되었냐는 듯 한바탕 크게 웃었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는 멀 것만 같던 그 길로, 오래 걸리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비는 모든 것을 씻어 내려간다. 비를 한바탕 맞은 뒤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씻겨져 내려간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비의 느낌이 잘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아마 키가 조금 더 자라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를 맞는다는 것은, 머리카락에 대해 열심히 공을 들이고 나온 나의 노력이 씻겨 내려감을 의미했다. 곱슬머리인 나에게 머리카락은 꽤 중요한 존재였고, 야속하게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나의 소중한 그것은 습기를 한껏 머금고는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나는 더는 장화를 신지도 않았고, 비를 맞지도 않았다.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선생님들과 축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가던 나에게 친구들이 같이 뛰자고 말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무엇보다 내 머리카락이 망가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들을 뒤로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를 뒤로하고는,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최대한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동안 비를 맞지 않았다. 비를 맞는다는 것은 이제 전혀 괜찮지 않았다. 누군가는 비를 맞으면 산성 성분 때문에 머리가 빠진다는 소리를 내게 하기도 했다. 물에 젖으면 안 되는 옷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비를 맞으면 안 되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비가 내리는 날은 어두컴컴하고, 습기로 눅눅해서 기분마저 꿉꿉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비를 맞으면 내가 잃을 것들 때문에 비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공들인 머리를 잃을까 봐, 며칠 전에 산 가방이 물에 젖을까 봐, 어제 깨끗하게 빤 새하얀 신발에 얼룩이 질까 봐. 내가 비로부터 지켜야 할, 내가 가진 것들이 많아질수록 비가 더욱 싫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이유는 비를 맞아도 잃을 것이 없어서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잃을 것 또한 늘어났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흐린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처럼 열심히 손질한 머리가 난장판이 될까 봐, 또 누군가는 화장이 번질까 봐, 누군가는 옷이 젖을까 봐. 제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상실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잃는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가진다는 것, 잃는다는 것을 배워갈수록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는 것에 대한 걱정이 비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버렸다. 비는 세상 만물을 씻겨준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것들이 혹시라도 씻겨나가 버릴까 봐 그것이 두려워서 비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그 잃을 것에 대한 걱정은 결국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보다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더 힘들다. 가지고 있다는 것. 곧 잃는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잃는 것이 두려워 무언가를 손에 더 가지고 있으려고 아등바등 처절하게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잃기도 전에 잃을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비를 맞기도 전에,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곤 비가 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비를 맞을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어디를 가든 비를 피할 곳이 곳곳에 있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다. 비를 맞을 일 없는 온실 속으로 들어온 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화초다. 고난 없이 잘 자라지만, 비가 올 때의 바깥의 다른 식물들처럼 마음껏 비를 느낄 수 없는 온실 속에 있다. 두 손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손안의 것들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무언가를 잃어보려고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스스로 비를 맞으려고 해본 적이, 내가 무언가를 내 두 손에 가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없다. 그렇게 나는 온실 속에서만 살아왔다. 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혹은 내가 비를 맞을 수 없게 막아버리는 온실에서.

 작년 이맘 즈음에, 배낭 하나만 걸치고 여행을 다니던 적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사는 친구들의 소파에서 소파로 옮겨 다니는 여행. 가진 돈이 없어서 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항상 신세를 지고 다녔었다. 목적지는 무조건 재워줄 수 있는 친구가 사는 곳으로 떠돌아다니던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바깥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 프라하에서 여느 날과 같이, 신세를 진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졌다. 고민했다. 역까지 비를 맞으며 갈지, 아니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비는 더욱 거세졌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역까지는 겨우 300m 남짓 되는 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직선거리가 300m이고, 역으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결국, 온몸, 가방, 옷가지 등 여기저기서 물을 줄줄 흘리며 역에 도착해버렸고, 그날의 기차를 놓쳐 노숙을 해야 했다. 무서웠다. 그런데, 그 날 밤 깨달았다. 여행길에서 나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 조그만 7kg짜리 배낭에는 겨우 내 옷가지들만 들어가 있을 뿐이었고, 머리는 비를 맞고 정리하지 않아서 산발에, 돈을 아끼려고 매일 같이 가벼운 한 끼만 먹고 다니다 보니, 살은 빠질 대로 빠져버려서 마치 부랑자 같은 모습이었다. 돈이 없어 보였는지, 소매치기들도 다행히 내 지갑은 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제서야 비를 맞는 느낌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비를 맞는 것은 별 것 아니었는데, 나 혼자 두려워하고 싫어했다는 것을 저 먼 곳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느꼈다. 그렇게 나는 온실 속에서 한 발자국 나와서 비를 느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시금 비를 즐기게 되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린다. 하늘은 맑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비를 피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비를 막아줄 우산이 없다. 아직은 비를 맞는다는 사실이 마냥 유쾌하지만 않다. 아직까지도 내리는 비를 마음껏 맞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몇 개월의 긴 여행이 끝난 뒤, 후원을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비를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조그마한 처마가 되어주고 싶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도 멈추었다. ‘취업준비는 잘 되어가니’ 라며 묻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던 일인 양조장에서 나만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영국으로 워킹 비자를 받아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내어주거나 잃더라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 어떤 비가 내려도 자신 있게 맞으며 걸어갈 수 있도록, 아직은 서툴지만 손에 쥐었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우산이 없다는 사실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온실 밖으로 나와 비를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이제 비를 더는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일도 하늘이 흐릴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 썩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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