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수필 공모 및 제12회 비평 공모 심사평
  • 중대신문
  • 승인 2018.06.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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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선

  ○수필: 이준범 학생(경영학부 3)  「비의 랩소디」
  ○사회비평: 전명환 학생(국어국문학과 3)  「PUBG: 배틀로얄이라는 공정함의 환상」
  ○영상비평: 권해선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

  가       작

  ○문학비평: 김선빈 학생(경제학부 1) 「현실의 표상」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6회 수필 공모 및 제12회 비평 공모에 총 58편의 작품이 접수됐습니다. 부문별로는 수필 36편(▲17편), 문학비평 5편(▲2편), 사회비평 8편(▲3편), 영상비평 9편(▲3편)으로 예년보다 모든 부문에서 응모작 수가 증가했습니다.(괄호안의 숫자는 지난 공모전과 비교해 증가한 응모작 수)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응모작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인적사항을 지운 뒤 심사위원에게 전달했습니다.

  수필과 문학비평 부문 예심 심사는 오창은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맡았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수필 10편과 문학비평 2편이었습니다. 사회비평과 영상비평 부문 예심 심사는 김성윤 강사(사회학과)가 담당했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사회비평 3편과 영상비평 4편이었습니다.

  본심 심사는 분야별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필은 류신 교수(독일어문학전공), 문학비평은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 사회비평은 백승욱 교수(사회학과), 영상비평은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심사했습니다. 최종심사 결과 수필, 사회비평, 영상비평 부문에서 당선작이 뽑혔습니다. 문학비평 부문에선 가작이 선정됐습니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해 열정을 보여준 모든 응모자 학생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불어 귀한 시간 내어 심사를 맡아주신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총평>

  -수필 부문
  수필은 내면을 향해 있으면서도 소통을 염원하는 열린 글쓰기이다.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공감하는 말 걸기이기에 ‘내밀한 긴장’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예심을 통과한 10편의 글은 모두 수필의 요건을 갖춘 글들이었다.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글로 전환되고 있었다. 다만, 글을 어떤 순서로 구성하여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더 숙고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해본다. 2017년에는 응모작이 19편이었는데, 2018년에는 36편으로 대폭 늘었다. 그렇다 보니 예심 통과작도 10편으로 늘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글쓰기는, 읽는 모든 이들에게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글이다. 응모한 모든 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다.

  -문학비평 부문
  평론은 텍스트에 대한 정교한 읽기, 분석,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글쓰기이다. 다소 전문적인 글쓰기이다 보니 훈련을 필요로 하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평론은 논증적 성격을 띠기에,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을 앞세우는 감상문과 다르다. 투고된 5편의 평론을 검토하면서 정교한 텍스트 읽기야말로 좋은 평론의 훌륭한 미덕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잘 읽는 것이야말로 좋은 평론을 쓰기 위한 근본적 토대이다. 네 편의 응모작은 좋은 읽기의 초입에서 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좋은 평론을 많이 읽음으로써, 자신의 평론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오창은 교수(다빈치교양대학)


  -사회비평 부문
  비평은 민감함에서 출발한다. 요즘 시대의 새로운 정서 구조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존의 익숙한 언어, 문법으로 세계를 보는 글들이 많은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어떤 질문과 인식을 제공해주는 글이 점점 드물어지는 느낌이다. 

  -영상비평 부문
  영상비평 분야에서 매년 반복되는 문제는 자신들의 비평 의제가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들었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데 급급한 평면적 서술, 서술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오타쿠 비평 내지 연예 평론, 주관적 인상만 남아버리는 감상문들이다. 영상비평의 대상이 폭증하는 추세에 비하자면, 그에 대한 비평 리터러시는 왜소화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성윤 강사(사회학과)

  <예심평>

  -수필 부문
  비의 랩소디: 감각적으로 언어를 선택하여 표현하고, 문장 속에 정감을 불어넣을 줄 안다. 서정적 문장은 이야기 속에 정서가 스며 있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깨달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 글은 “비를 맞아도 잃을 것이 없”기에 비를 좋아했던 나날에 대한 기억을 환기한다. 지키는 삶과 버리는 삶 사이에서, 비는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프라하에서 비를 맞았던 경험을 담담히 서술한 대목이 강한 이미지로 그려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가 한강을 달리는 이유: 4년간, 250회, 1,500km의 거리를 달린 경험의 기록을 한 편의 글에 담았다. 수줍게 참가한 러닝 크루(running crew) 모임이 계기가 되어 중앙대 러닝 크루 “CAUON” 결성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쳐내고 있다. 한 세계에 빠진다는 것은 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만의 감정을 확인하고, 더불어 함께 할 추억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 깊이 되새겨 쓴 글은 오래 묵은 상처를 치유한다. 내면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그리고 공개하여 공유함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더불어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쌍둥이 동생을 기억에서 다시 불러오는 일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힘은 힘든 것을 감내하면서 쓰여진 글에서 큰 울림으로 발산된다.

  여백: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시각장애인이었던 할머니를 통해 잔잔한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일상을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를 추모하며 잔잔하게 글을 잘 풀어냈다.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아버지에게로 이어져 자신의 내면을 형성하고 있다는 성찰 또한 돋보인다.

  2017년 3월, 2015년의 그 친구를 기억하며: 고3 시절 전학 온 B라는 친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B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도 많았던 불성실한 전학생이고,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특이한 친구였다. 그 친구와 ‘마니또’를 통해 가까워지면서, 그가 ‘단원고 재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월호 생존자였던 B의 상실감이 잔잔하게 전해지면서 ‘4·16세대’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달아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때, 사람들은 어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까? 이 글은 경남 마산 귀산동의 놀이터에 대한 추억과, 스무 살의 나이에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겹쳐낸다. 그곳에 화자가 만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은 분위기를 환기할 뿐이다. 과거의 삶은 선명한 기억보다도 분위기로 남을 수도 있으리라.

  공감이 주는 힘, 사실 나도 그래: ‘위로를 받고, 위로를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나만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은 다른 이들도 드러내지 못하고 견뎌내고 있던 일들이었다. 용기를 내서 이야기하고, 공유하면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삶에도 희망을 준다. 일상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일들을, ‘Me too와 With you’와 연결하여 ‘용기의 감각’을 일깨운다.

  당신이 모르는 어떤 삶에 대하여: 고물상을 하는 어머니가 “찌그러진 흰색 트럭”으로 학교까지 데려다줄 때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다고 토로한다. 삶은 다층적이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엄마 덕택으로 대학을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엄마의 삶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한때 부끄러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순간, 삶에 대한 이해는 큰 폭으로 확장된다. 그 삶의 지평을 ‘엄마의 삶’이 넓혀주고 있다.

  이제는 그곳에 가고 싶다: 가깝지만 갈 수 없는 이웃이 있다. 이웃집 사람과 접촉할 기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로, 세계 곳곳에서 예전에는 금지된 이웃들과 접촉이 가능해졌다. 이 글은 금강산에서, 아랍에미리트 해외 파병 현장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북한’을 간접적으로 만났던 경험을 담고 있다. 아직도 북한을 먼 이웃이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웃이기도 하다.

  상실이 머무는 삶의 역설: 주삿바늘을 두려워하면서, 첫사랑의 아련함 속에서, 혹은 버스를 타면서도 기회와 상실에 대해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함을 이 글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잃음으로써 얻는다는 역설은 일상 속 경험과 어우러질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문학비평 부문
  푸른 빛의 시: 윤동주 시인은 한국인에게 슬픔의 정조, 되돌아봄의 의미를 시적 서정으로 일깨워줬다. 이 글은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에 대한 깊이 읽기를 시도했는데 의미가 있다. 자신의 관점을 갖고 시를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평론은 자기 관점의 확보에서 시작한다. 논자는 자기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평론의 요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느낌’이나 ‘감상’을 앞세우는 인상비평을 넘어서는 논증을 해야 좋은 평론에 도달한다. 

  현실의 표상: ‘Me Too(미투) 운동’과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관 지어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어 흥미로웠다.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한강의 중편 『채식주의자』와 단편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함께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논자는 ‘식물성’의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을 의미화하고 있다. 이 글은 말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비해, 독자를 배려한 소통적 배려에 대한 고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사회비평 부문
  PUBG: 배틀로얄이라는 공정함의 환상: 게임의 틀과 이용자들의 정서 구조 사이의 동형성을 전제로 해서 사회비평을 시도한 점이 신선하다. 특히, 공정성과 능력주의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청년세대의 세계관이 기존 체제를 공고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충분히 공감을 살 만하다. 다만, 게임과 이용자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전제한 것은 텍스트와 수용자 사이의 차이를 봉합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오늘날 ‘혼자족’의 기원을 X세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둔 점은 의미 있는 지적이다. 이들의 탈조직 성향이 새로운 공동체 이념으로 귀착되고 있다는 점도 적절히 짚어냈다. 그러나 혼자족으로 개별화된 요즘 시대에 한국인의 민족성을 언급한다든지 하는 점은 자가당착처럼 보이기도 한다. 탈조직화한 개인들이 공동체주의로 회귀하는 과정도 분석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인상비평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주류라는 이름의 비주류화의 역설: 공통의 좌표, 집합적인 표상, 공동의 목적의식 등이 부재한 시대라는 점을 인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오늘날 세대 담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짚어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에 구체적 대상이 없을 때 논지의 힘을 잃어버릴 공산이 크다는 점은 이 글에도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상비평 부문
  선택의 괴리와 고민의 진화: 필자가 달았던 제목처럼 비평대상으로 삼은 영화로부터 ‘선택의 괴리와 고민의 진화’라는 실존적 질문을 잘 끄집어냈고, 자신의 언어로 일관성 있게 재구성했다. 또한 (비록 충분하다고 할 순 없더라도) 영화 장르의 시각성을 비평의 서술 전략에 효과적으로 결합한 점도 이번뿐 아니라 근래의 응모작들에 비하자면 뛰어난 점이었다.

  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 제목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쓰리 빌보드>에서 ‘분노’라는 감정의 문제를 건드리는 글이다. 같은 영화를 다룬 다른 비평 글이 주로 ‘정의’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 비하자면 나름 흥미로운 논점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편견과 분노 그리고 갈등과 해결이라는 다소 평이한 쟁점들이 영화의 서술적 깊이를 담아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해답이 없는 파국의 장: 이 글은 남성들의 역사에서 희생되는 여성의 존재론적 문제를 끄집어내려 한다. 요즘처럼 페미니스트 인식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비교적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일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의 서사를 추적하는 데 급급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에 배치된 상징적 요소를 해석하는 데 주로 치중하기 때문이다. 좋은 비평이 때때로 독자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다소 아쉬운 서술 전략이지 않나 싶다.

  거장이 바라본 디지털 혁명: 상업영화에 대한 마니아적 접근이 돋보이는 글이다. 이런 글들이 언제나 상업영화에 대한 미학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추적하지만 작가론이라 보기 어렵고, 작품에 내재적으로 접근하려 하지만 작품론이라 보기도 어렵다. 다만, 영상비평 분야에서 마니아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지해보는 차원으로 본선 심사작으로 추천해본다.

  <본심평>

  -수필부문

  단정한 문장의 꽃, 단단한 사색의 열매

  수필은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隨) 쓰는 글(筆)’이다. 개성 있는 문체의 꽃을 우아하게 피워 올리면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이 단단한 자기 성찰과 따뜻한 공감의 열매로 맺어지는 글을 찾았다.

  아쉽게도 총 36편의 응모작 대부분은 수필이란 장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글이었다. 고백, 일기, 콩트, 에피소드, 추억담이 대부분이었다. 화려한 수사와 비유를 동원해 글 밭을 다채로운 꽃으로 치장했지만 정작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투명한 글도 있었고, 흉중에 품은 주제 의식과 발상은 참신했으나 무미건조한 보고서 문체로 생기를 잃고 만 글도 있었다.

  당선작 「비의 랩소디」에는 꽃과 열매가 행복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문체는 시처럼 아름다웠고, 삶에 대한 사색은 우물처럼 웅숭깊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무도회’로 비유하는 언어 감각이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갈수록 점점 비 맞기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채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살아온 자기 자신과 진솔하게 독대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었다. ‘그 어떤 비가 내려도 자신 있게 맞으며 걸어갈 수 있도록, 아직은 서툴지만 손에 쥐었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결정에는 연대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쏟아지는 비를 헤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갈 이 학생의 젖은 머리 위에 우산을 씌어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심사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류신 교수(독일어문학전공)

  -문학비평 부문

  주장하는 글과 공명하는 글

  본심에 오른 비평문은 윤동주의 「참회록」을 분석한 「푸른빛의 시」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오늘의 문제의식으로 읽은 「현실의 표상」 두 편이었다. 「푸른빛의 시」는 「참회록」에 나오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로 차분하게 시를 읽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잘 이해되지 않는 시 구절의 의미를 살펴보고는 있지만 개인적 견해에 그칠 뿐 공감할 만한 해석에 이르고 있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차갑고 애처로운 느낌의 ‘푸른’ 빛이라는 해석에서 이 시에 대한 이해가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어서 아직 ‘비평문’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현실의 표상」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Me Too(미투) 운동’으로 대표되는 오늘의 문제의식으로 읽어 보고자 한 비평문이었다. 오늘의 문제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문이 지녀야 할 중요한 요건 하나를 가지고 있는 글이었지만 관점이 도식적이고 주관적이며 다소 거칠고 문장력도 아쉬웠다. 그러나 각 장에 제목을 붙여 나름의 구성을 취하고자 한 점, 도식적이기는 해도 『채식주의자』를 나름의 관점으로 읽어 보고자 애쓴 점, 『채식주의자』를 통해 하고 싶은 자신의 말이 있는 점 등 미덕도 눈에 띄어 ‘가작’으로 선정했다.

  개인적 감상을 서술하거나 주장하는 글만으로는 좋은 비평이 될 수 없다. 감상과 주장을 넘어서 공명하는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작품을 읽는 훈련 못지않게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벼리고 있어야 하겠다. 문학비평에 도전한 모든 응모자들께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좋은 비평이란 무엇인지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

  -사회비평 부문

  청년 세대의 고민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잘 분석해 보여준 수작

  예년에는 다른 비평 분야에 비해 사회비평 분야 응모작이 적어 아쉬웠는데, 올해는 응모작이 8편으로 대폭 늘어 반가웠다.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고 이에 대해 청년 세대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음을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문학’ 영역에서는 좀 더 개인적 평론이나 발언을 많이 할 수 있지만 ‘사회’ 영역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면 발언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많이 깨어지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사회 현상들을 뒤집어 분석하고 개입해 보는 노력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은 세 편이었다. 세 편 중에서 당선작을 가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PUBG: 배틀로얄이라는 공정함의 환상」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져 보였다. 사회비평 당선작 선정 기준으로 생각한 것은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 현상을 뒤집어 보고 심도 있게 바라보기, 설득력 있는 서술로 앎의 효과를 주기 등 세 측면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프로 혼자 족’에 대하여」와 「주류라는 이름의 비주류화의 역설」도 나름 글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는 주제에 파고들기나 현상을 뒤집어보기에서 아쉬움이 보였다. 「주류라는 이름의 비주류화의 역설」도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와 설득력 있는 서술로 독자를 장악하는 힘에 부족함이 있어 아쉬웠다.

  「PUBG: 배틀로얄이라는 공정함의 환상」은 배틀로얄 게임의 흥행이라는 사회 현상으로부터 지금 청년 세대의 고민과 좌절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자기 목소리를 담아내는 글쓰기 스타일이 잘 부각되고 있고 구체적 사례를 거시적 변화와 연결지어 설득력 있게 서술하는 솜씨도 훌륭하다. 섣부르게 한두 개의 이론 잣대를 가져다 현실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 할 만하다.

백승욱 교수(사회학과)

  -영상비평 부문

  영화비평의 존재 방식, 또 하나의 예술을 향하여

  본선에 오른 영상비평은 총 4편이었다. 올해에도 지난해와 같이 한국영화에 대한 글이 없었다. 한국영화와 비평이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은 아쉬웠다.

  올해 골든 글로브 수상작 <쓰리 빌보드>에 대한 비평문이 2편이나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 첫 번째 비평 「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는 영상의 색채와 등장인물의 갈등을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분노’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 깊이 있게 작품을 분석하려고 노력한 것이 인상 깊었다. 비평문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이 눈에 띈 것은 옥의 티였다. 이 영화의 두 번째 비평인 「선택의 괴리와 고민의 진화」 역시 진지하고 성실하게 작품을 분석한 글이었다. 영화를 통해 사회와 윤리에 대해 성찰한 것은 유의미하게 읽혔다. 다만, 필자가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객관적인 비평과 분리하지 못하고 서술한 부분은 평론적 미숙함으로 남는다.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한 비평 「거장이 바라본 디지털혁명」은 감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접근해 간 글이었다. 영화 속의 다양한 오브제들을 풍부하게 읽은 것이나, 외국 영화에 대한 박식한 지식은 칭찬할 만하지만, 심도 있는 글쓰기를 통해 비평자의 참신한 발언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영화 <마더!>에 대한 비평 「해답이 없는 파국의 장」은 꼼꼼한 분석과 깊이 있는 해석에서 돋보였다. 그러나 이 글은 영화비평이 특정 영화에 대한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 행위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글은 아니었다.

  영화비평은 작품을 장황하게 소개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글이 아니다. 좋은 영화비평은 그 글 자체로서도 감동을 주고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비평문들은 독창적인 해석을 시도함에 있어 소극적이었다. 시인 김수영의 말을 빌려, 영화비평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글쓰기를 선보였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투고자 모두의 건필을 기대한다.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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