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경중(輕重)을 판단하는 일
  • 손하영 기자
  • 승인 2018.06.0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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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명함을 받은 지도 벌써 반년이 가까워 옵니다. 12번의 신문을 발행하는 동안 수많은 취재원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모든 취재원이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취재원이 있습니다. ‘서울캠 생활관, 딱따구리 소음 해결 나서’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던 한 생활관 학생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처음 딱따구리 기사의 취재지시를 받았을 때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학교에 더 시급한 일이 많을 텐데 딱따구리가 집 짓는 것까지 기사로 써야 한단 말이야?’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아직 기사도 몇 번 안 써본 주제에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취재지시를 받았으니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생활관 A학생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딱따구리 소음으로 피해를 겪던 A학생은 제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고충을 털어놓았죠. 그는 딱따구리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이없이 웃고 마는데 직접 고통받는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A학생과 인터뷰하며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제가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한 일이 누군가에겐 진심으로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판단하고 경중을 가늠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이후 다른 취재원을 만날 때도 A학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들의 힘듦에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 더욱 조심하죠.

  하지만 제멋대로 기사의 경중을 판단하는 건 저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땡전 뉴스’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전두환 정권 시절 방송행태를 비판하는 말입니다. 방송 시작음과 동시에 톱뉴스로 대통령의 활동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가리키죠. 하지만 대통령 입맛에 맞게 기사의 경중을 판단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언론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기삿거리의 가치를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 중에서 어떤 것을 보도할지 취사선택해야 하니까요.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이를 ‘게이트키핑’이라 합니다. 언론은 대중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게이트키핑을 더 신중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게이트키핑은 과연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듭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사장님, VIP 아이템 오늘은 뒤로 배치하고 내일부터 자연스럽게 올리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자칫 역풍이 불게 되면 VIP께도 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고 문자를 보내 대중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VIP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죠. 전두환 정권 이후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기사의 경중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중대신문 기자로서, 또한 한 명의 시민으로서 기사의 경중을 판단하는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딱따구리 소음으로 고통받는 A학생의 힘듦을 제가 마음대로 재단해버린 것처럼 어쩌면 제가 보는 뉴스도 그렇게 판단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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