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글에 대한 참회록
  • 하혜진 기획부 차장
  • 승인 2018.05.28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렇게 나쁜 글을 쓰면 어떡해. 예쁜 글만 써야지.” 교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책상 위에 놓인 지역신문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렸다. ‘식당은 좁고 시간에 쫓겨…급식 너무 불편.’ 책상 앞에 공손히 서서 내가 쓴 ‘나쁜 글’의 제목을 눈으로 좇았다. 무서웠다. 교장의 손가락이, 교장실을 나가면 머리 위로 떨어질 선생님들의 눈총이 무서웠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얼마 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내쫓기듯 전학을 나왔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책상 앞에 서서 떨던 고등학생은 이제 대학생이 돼 지역신문 대신 중대신문에 ‘나쁜 글’을 쓴다. 올해 초에도 경영학부 A교수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하는 ‘나쁜 글’을 썼다.

  시작은 중앙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 하나였다. A교수가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글에 달린 댓글마다 메시지를 보냈다. 에브리타임에도 어떤 교수인지 물어 증언을 모았다. 생각보다 내용은 심각했다. 성희롱에서 팔짱까지, 물어볼수록 A교수를 향한 증언은 더 나오기만 했다.

  취재를 진행하며 화가 났다. A교수는 학생들의 증언에도 ‘그런 적 없다’며 변명하기만 했다. 더 확실하고 나쁜 증거를 찾아야 했다. 증언이 더 구체적일수록 유리했다. 학생들에게서 계속 증언을 구했고 증거를 모았다. 조금 흥분했는지도 몰랐다. 단독보도였고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일은 그때 터졌다. 한 학생이 더 이상 취재에 응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학생은 내가 기사 내용에만 너무 집착한다고, 내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기자님, 저 무서워요. 교수님이 제가 누군지 알아채고 보복할까봐 무섭고 졸업을 못할까봐 무서워요.”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6년 전 책상 앞에 서있는 학생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부끄러움이 온몸에 몰려들었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잊고 있었다. 왜 6년 전 내가 ‘죄송합니다’밖에 말하지 못했는지, 왜 울면서 학교를 나와야만 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생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그제야 이제까지 내가 귀를 반쯤 덮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의 내용만 들었지, 그 속에 든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지 못한 기자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기사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지도, 피해자를 배려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귀를 가린 채 쓴 글은 진정으로 나쁜 글이 된다.

  기사가 나간 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매주 쓰는 ‘나쁜 글’이 진정 나쁜 글은 아닐까 돌아본다. 귀를 덮은 채 쓰지는 않았을까, 스스로가 오히려 피해자들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된 것은 아닐까 늘 무섭다. 그러나 나는 더 무서워해야 한다. 무서워하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