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이 오는 이유
  • 중대신문
  • 승인 2018.05.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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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날씨가 얄궂어졌다. 거센 비가 총알처럼 땅에 후두두 쏟아지다가도, 금세 비가 그치고 쨍쨍한 햇볕에 수증기 막 같은 더위가 이어진다. 이런 날씨에는 에어컨이나 틀면서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게 정석이다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캠퍼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축제 기간이 한창이라 동아리 축제 부스 운영을 도우러 가기 위해서다. 장대비가 쏟아졌던 아침이 무색하게 캠퍼스 곳곳에 설치된 부스는 축제의 들뜬 분위기를 더했다. 부스를 운영하느라 분주한 학우들, 이곳저곳 들러보느라 정신없는 학우들, 모두 축제 분위기를 장식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축제를 정신없이 즐기면서도 습관처럼 걱정이 머리를 스친다. ‘밀린 과제를 앞두고 이렇게 놀아서 될까?’, ‘벌써 유학 간 동기도 있던데’, ‘누구는 도서관에서 시험준비 하던데’ 소소하고 부질없는 고민들. 한창 흥이 달아오를 때쯤 이런 고민이 위기감, 초조함 같은 것을 몰고 온다. 그렇다면 할 일을 다 끝내고 놀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할 일을 안 해서 생기는 죄책감 같은 것이 아니다. 내가 과제나 공부를 하고 있더라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하는 습관적인 걱정이 생긴다. 아마 이것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한 불안감, 이 방향이 맞나 하는 불확신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내 행동과 상관없이 불현듯 나를 덮친다. 

  12년간의 대입 교육은 내 삶의 성패 여부를 성적표로 결정지었고 나에게 그런 가치관을 주입시켰다. 하지만 좋은 성적만 가지고는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시장과 모호한 기준은 끊임없는 자기 불확신을 심어준다. 또한 특례입학, 부정 인사청탁과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보면 열심히 노력할 의지가 꺾인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의 전제는 노력만큼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인데, 이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무엇을 시작하던 사기가 꺾인다. 최근 사회를 휩쓴 ‘Me Too(미투) 운동’은 취업 이후에도 겪을 더 많은 시련을 말해주고 있어 인생에 회의감을 들게 한다. 인생 자체가 고통이라는 불교의 사상에 깊이 공감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절박함과 만성적인 무기력감이 뒤섞여 복잡하고 답답한 심정이 된다. 요즘 신문 사회면에 자주 쓰이던 ‘대2병’이라는 신조어가 이런 나의 상태에 해당하는 것 같다.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하필이면 내가 20대일 때 이런 혼란한 사회가 되었나. 하지만 격정의 과도기가 아닌 적이 없던 한국의 현대사를 생각해보며 약간의 책임과 위로 얻는다. 그저 ‘이전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야지’하고 우울함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어느덧 기말고사가 한 달 정도 남은 학기 중반을 맞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강을 잘 마무리해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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