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쉬 바브, 「설명은 때로 상상을 제한한다 Ⅱ」, 2018, 폴리에스테르, 가변크기, 작가소장

현대미술, 그중에서 아시아 현대미술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 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는 지금까지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그려진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시아 현대미술,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시아를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를 보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프레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인식의 틀 속에서 다른 대상을 판단하고 정의하죠. 자신의 세계에서 내린 판단이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필요하죠. 지난달 7일부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교차적 공간’, ‘관계’ 등 총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소통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가 보여주는 아시아 총 8개국의 현대미술을 만나봤습니다.  

  보이지 않는 억압을 해체하다

  전시회는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상을 담아낸 여러 작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입니다. 국경, 민족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삶을 제한하고 행동에 압력을 가하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는 다양한 이름으로 구별됩니다. 사람들은 지역에 명칭을 붙여 지역을 구분하고 지역마다 고유의 특징이 존재한다고 믿죠. 그런데 실제로 각 지역의 명확한 정체성이 존재할까요? ‘아시아’로 분류되는 지역 안에서도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가치가 존재합니다. ‘어디에서’라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세계’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전시회 속 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 구분과 정체성을 나타내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합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양탄자처럼 보이는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요게쉬 바브 는 「설명은 때로 상상을 제한한다 II」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인 ‘국가’를 표현했죠. 작품에서 형형색색의 네모난 털실 뭉치는 원래 국기(國旗)를 의미합니다. 국기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체성을 가집니다. 각 색은 국기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죠. 예로 태극기의 붉은색은 양(陽), 존귀를 의미하고 흰색은 순수와 평화를 뜻합니다. 반면 프랑스 국기의 붉은색과 흰색은 각각 우애와 평등의 의미로 태극기의 색과는 다른 의미를 갖죠.

  요게쉬 바브는 177개국의 국기를 씨실과 날실로 해체해 같은 모양과 크기로 표현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도슨트는 “국기는 절대불변의 정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색깔 별로 해체하면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죠.

  ‘민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후지이 히카루는 「일본인 연기하기」에서 민족의 의미에 의문을 던지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대상자는 ‘일본 사람은 눈이 작다, 어깨가 좁다’ 등 외적 특징으로 일본인을 판별하려고 하지만 쉽게 구별하지 못 합니다.

  “영상이 진행될수록 점차 그들은 번호를 매기고 자리를 바꿔 세우는 등 폭력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사람을 대상화하는 모습에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실재했던 ‘인종 전시장’의 일면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거 일본은 세계박람회에서 조선인과 대만인을 전시해 동물원의 동물처럼 단순한 구경거리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외모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이용해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죠. 이번 전시회의 도슨트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제국주의 시절과 다름없이 여전히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현대인을 비판하고자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후지이 히카루, 「일본인 연기하기」, 2017, 비디오, 작가소장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제로 한 작가들은 국가나 민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서 대상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절대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작품에서 드러냅니다. 추상적인 가치를 평가해 명확하고 통일된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하나를 이해하는 수많은 길

  고유한 정체성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머릿속에 새기며 다음 주제의 전시실로 발을 옮겼습니다. 전시회의 두 번째 키워드는 ‘교차적 공간’입니다. 모든 사건이나 대상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다는 것이죠. 어떠한 대상을 관찰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대상, 시점, 방법 등에 따라 수많은 생각과 의견이 교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차적 공간은 이러한 개인의 인식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타오 후이는 「몸에 대해 말하기」에서 ‘정체성’을 일괄적으로 규정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영상에서 이슬람 여인은 덤덤하고 상세하게 얼굴형, 눈과 코의 모양, 골격 등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특징을 주위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죠.

  그러나 영상 속 이슬람 여인은 사실 타오 후이가 분장한 모습입니다. 타오 후이는 중국 한족 남성이지만 작품 속에서 그는 이슬람 전통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등장했죠. 작가는 본인의 실제 정체성과 다른 사람이 인지하는 정체성의 괴리를 보여줌으로써 개인에게 강요되는 정체성을 표현했습니다.

타오 후이, 「몸에 대해 말하기」, 2013, 비디오, 작가소장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는 요소에도 다양한 관점을 투영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카마타 유스케는 「더 하우스」를 통해 일본 전통 건물을 인식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시각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일본의 일반적인 전통 주택인 2층 목조 건물은 일본과 한국, 미국 등에 공통으로 존재하지만 국가마다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다르죠.

  일본인에게 전통 가옥은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입니다. 일본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러나 한국에서 일본 가옥은 ‘적산가옥(敵産家屋)’, 즉 적의 집이란 의미로 적대적인 이미지입니다. 한편 미국에 있어 일본 가옥은 전쟁 중 일본 본토에 떨어뜨릴 소이탄 실험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모양의 주택도 그것을 바라보는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마타 유스케, 「더 하우스」, 2018, 9552 x 5230 x 6273 mm, 목재, 거울, 비디오, 작가소장

  결국은 ‘관계’와 ‘소통’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키워드를 통해 전시회는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규정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깨달음을 전달합니다. 결국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을 통해 그러한 다양한 의견을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소통을 위해서는 ‘관계’를 맺는 일이 가장 필요합니다. 전시회의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관계’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플랫폼’입니다.

  「생산라인」에서 황 포치는 자신과 어머니,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바탕으로 대만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 변화와 노동자의 현실을 표현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대만의 봉제공장에서 일했지만 중국에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공장이 생겨나며 실직하죠. 그러나 중국의 노동자도 싼 임금에 일해야만 하는 현실에 억압받고 있었습니다. 황 포치는 어머니와 중국의 봉제공장 여공이 협업해 제작한 푸른색 셔츠 수십 벌을 전시했죠. 이로써 그는 대만과 중국, 양국 노동자의 관계를 기록함과 동시에 대만의 농업경제 변혁과 사회 변화를 작품 속에 투영했습니다.

황 포치, 「생산라인」, 2018, 복합매체, 가변 크기, 작가소장

  황 포치는 「생산라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관계 맺음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직접 관람객과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의 작품을 고안하기도 했죠. 미술관 한편에는 그의 다른 작품 「500그루의 레몬나무」와 간이 바(bar)가 있습니다. 황 포치는 버려진 농지에 여러 후원자의 도움으로 레몬나무 500그루를 심고 레몬주를 만들었습니다. 바에서는 관람객들에게 그가 만든 레몬주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관람객은 근처 의자에 앉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직접 즐기며 체험할 수 있죠.

황 포치 , 「500 그루의 레몬나무」, 2018, 복합매체, 가변 크기, 작가소장

  전시회는 관객이 자신의 세계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도록 유도합니다. 다른 사람과 토론하며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작가에게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에 방문해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알아가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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