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태양을 가려도 그 빛을 막을 순 없다
  • 김예령 기자
  • 승인 2018.05.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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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Misogyny’를 번역한 단어로 사회에 자리한 여성 차별적인 문화의 총체를 일컫는다. 단순히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뜻하는 ‘혐오’와는 다른 맥락이다.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9일 서강대의 인권강연회 취소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서강대 총학생회(총학)는 지난 10일에 인권주간 ‘만개’와 함께 <인권강연회>에서 은하선 작가와 정희진 교수의 여성 인권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부 학생은 두 강사가 남성 비하 표현을 활용한 전적이 있다며 강연회 진행에 격렬한 반발을 보였다. 이로 인해 총학 구성원 개개인과 관련인에게까지 심한 폭력이 가해지자 결국 총학은 은하선 작가에게 강연회 취소 입장을 전했고 정희진 교수는 연대의 의미로 강의를 보이콧 했다. 반(反)페미니즘 의사 표명에 의해 여성 인권의 발화가 억압된 순간이었다.

  강연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대자보를 통해 의견을 밝혔다. 대자보에서는 페미니즘을 ‘그릇된 신념’이라 정의하며 강연에 참여하기로 했던 두 사람을 ‘도덕적으로 하자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총학은 ‘민주적 절차’를 지켜라 외쳤고 강연을 취소하지 않을 시엔 ‘불미스러운 일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촛불집회 당시 권력으로부터 쟁취한 권리는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란 인식이었다며 지금 서강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사람이 성별을 이유로 받는 억압과 혐오를 뿌리 뽑는 것은 그릇된 행동인가. 남성 비하 발언은 도덕적으로 하자 있는 행동이지만 강연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쏟아낸 인신공격적 비난들은 민주적인 절차였는가. 작성자는 페미니즘 강연이 불미스러운 일을 초래할 거라 이야기했지만 페미니즘이 없는 우리사회는 이미 불미스러운 일로 가득 차있다.

  여자 화장실에서는 혹시 불법 촬영을 당할까봐 휴지로 막아놓은 작은 구멍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온라인상에는 여전히 불법 촬영물이 유통된다. 1920년대부터 혹은 더 이전부터 수많은 여성혐오 표현이 만들어져왔지만 이를 규제하는 법이 논의된 건 최근 사용되는 남성 비하 표현이 생긴 이후가 처음이다. 올해 초 시작된 ‘Me Too(미투) 운동’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 ‘나도 당했음’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명예훼손 고소장과 미온적인 처벌이었다.

  하나의 강연은 취소됐지만 오히려 이는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증명이 됐다. 앞으로도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되겠지만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논의 자체를 완전히 막진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는 항상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해왔고 그 누구도 터져 나오는 소리를 끝까지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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