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를 밝힌 민중의 힘
  • 김성우 기자
  • 승인 2018.05.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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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품, 「80년대 그림판 이야기」, 1989, 광목에 혼합매체, 129 X 1434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독재, 검열, 탄압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한가운데 ‘민중미술’로 어둠을 몰아내려고 노력한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시대현실을 예술에 반영하고 사회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그들의 의지를 작품 속에서 살펴볼 수 있죠. 시대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 그들의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과감하게 ‘유감’을 표명해

모순된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다

외면받은 이들의 삶에 주목하고

해학과 신명으로 시대를 이겨내고자 노력하다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지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표한 「시대유감(時代遺憾)」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사전심의라는 명목의 검열로 가사의 수정을 요구하자 서태지는 가사 전체를 뺀 후 멜로디만 남아있는 곡을 발매해 저항정신을 드러냈죠. 서태지 이전 예술조차 국가가 검열하던 1970~80년대, 어두운 시대에 과감히 유감을 표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 참여 예술을 강조한 ‘민중미술’ 작가들이죠.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 컬렉션 상설전 ‘시대유감’의 김민정 도슨트와 함께 ‘민중미술’을 알아봤습니다.

  어둠을 가르는 예술의 비판
  1960년 4·19 혁명으로 민주 정부를 수립한 감동도 잠시, 한국 사회는 군부 독재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1969년 3선개헌과 1972년 유신헌법으로 15년 이상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가 차례로 정권을 잡았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늘 ‘경제 성장’ 구호에 막혀 외면당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민들은 터전을 잃었다. 도시와 농촌 간, 부자와 서민 간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됐고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은 ‘민중미술’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젊은 예술가들은 시대현실에 침묵하는 기존 예술을 비판하며 다양한 소집단을 결성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산업화·도시화의 폐해와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 민주화 열망 등 기존에 금기시되던 주제를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중미술의 비판 정신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됐다. 김민정 도슨트는 민중미술의 태동을 알린 작품으로 신학철 작가의 「밤길」(1973)이 있다고 전했다. “「밤길」은 두 사람이 아무 대화 없이 등을 지고 걸어가는 구도에서 심리적인 공간감과 긴장감이 느껴지죠.” 신학철 작가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암울한 심정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간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던 민중미술은 점차 어두운 사회 현실에 불만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당시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주의 그림을 제외한 작품은 검열을 통과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세태를 김용태 작가는 검열을 통과한 작품만 걸린 전시장의 모습을 일그러진 구도와 어두운 색채의 그림으로 나타내 정부의 부조리한 검열을 비판했다. 김용태 작가가 포함된 민중예술 소그룹 ‘현실과 발언’의 전시회는 ‘시국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기도 했다.

  ‘현실과 발언’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당시 민중미술의 최전선을 이끈 작가들이 공동 제작한 「80년대 그림판 이야기」에는 당시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14m 길이의 광목천에 그려진 그림에는 ‘입바른놈 잡아다가 모조리 족치는데 탁치니 한열이도 억하고 가는구나’ 등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민중을 억압한 정부의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대사가 마당극 형식으로 쓰여있다. 독재정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회 모순, 강요된 행복에 저항하다
  민중미술가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서울올림픽 유치 등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의 이면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신학철 작가의 「한국 근대사-서울탑」 속 수직으로 길게 솟은 욕망의 탑을 지탱하는 것은 도시화된 서울이다. 작가는 중산층 가족을 기준으로 극명한 상하 대비를 통해 정부의 양면적인 정책을 꼬집고자 했다. 탑의 중간에는 행복해 보이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탑의 아래쪽은 화려한 색의 대중문화 스타, 광고사진, 풍부한 먹을거리 등으로 경제 발전의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었다. 반면 탑의 위쪽은 로켓 등 무채색의 무기를 배치해 경제 성장 과정에서도 여전히 북한의 위협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정부의 양면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신학철, 「한국근대사-서울탑」, 1984, 종이에 몽타주, 168 X 53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송창 작가의 「사기막골 유원지」에도 정권의 모순이 나타난다. 작품 왼쪽에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들이 푸른 초원에서의 일상을 즐기고 있다. 반면 가족의 모습보다 압도적으로 큰 북한군 복장의 해골이 작품 정면에 섬뜩하게 묘사돼 있다. 가족을 곧 덮칠 듯해 보이는 회색빛 인민군 무리도 해골 뒤에 자리하고 있다. 해골과 인민군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김민정 도슨트는 당시 정권이 반공의식을 이용해 민중을 선동하고 정부의 힘을 각인시키고자 했다고 전했다. “작가는 시민의 행복을 장려하면서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반공의식을 강요하는 당시 정부를 꼬집고자 했죠.”

송창, 「사기막골 유원지」, 1984, 캔버스에 유채, 130 X 162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민중미술가들은 ‘한강의 기적’ 이면의 급격한 도시화로 터전을 잃은 소시민과 열악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일하기를 강요받은 노동자에도 집중했다. 그들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황재형 작가는 실제 3년 동안 광산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탄광촌 주민과 광부의 모습을 묘사했다. 작가는 「탄광촌」(1989)에서 탄가루를 뒤집어쓴 광부와 탄광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노동자의 고단함을 드러냈다. 황재형 작가는 탄광촌보다 더 탄광촌 같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림을 그리려 했다. 김민정 도슨트는 황재형 작가가 「군상」을 통해 노동자와 민중의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황재형 작가는 탄광촌 생활에서 목격한 노동자와 민중의 생명력을 인간 전체의 삶에 확대해 표현하고 있다. 「군상」의 단일한 백색조의 인물들이 주먹을 쥐고 한쪽으로 응집력 있게 돌진하는 모습에서 민중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종이 부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은 입체감과 질감이 더해져 민중을 의미하는 인물들의 역동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황재형, 「군상」, 1986, 패널에 종이 부조, 122 X 244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한편 민중의 반발을 우려한 독재 정권은 민중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유화 정책’을 꺼내 들었다. 또한 서울 곳곳에 서울대공원을 비롯한 유원지를 건설해 시민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고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며 자유를 보장해줄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1981년 정규방송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고 3S 정책이 보다 강력하게 시행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권은 TV를 통해 산업화·도시화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생활이 이뤄지고 있음을 각인시켜 민중에게 행복을 강요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중미술은 이러한 우민화 정책을 동원해 정치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 당시 정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모녀」에서는 여인과 아이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2명의 인물은 환하게 웃고 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인물들의 웃음은 어색함을 유발하죠.” 작품에서 형형색색의 꽃밭에 자리한 모녀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과장된 모습 때문에 오히려 어색함이 부각되고 있다. 김정헌 작가는 모녀의 인위적인 웃음을 통해 ‘위장된 행복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김정헌, 「모녀」, 1984, 캔버스에 유채, 133 X 196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해학으로 恨(한)을 풀다
  한편 암울한 시대를 민족 고유의 흥과 신명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작품도 등장했다. 마당극과 탈춤 등 전통문화에서 나타나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해학적인 모습을 통해 시대의 한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오윤 작가의 「낮도깨비」에는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도깨비가 등장한다. 두꺼운 선을 통해 단순하고 강직하게 표현한 도깨비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다. “도깨비 머리에는 기(氣)처럼 보이는 선이 묘사돼 있어요.” 그림에는 이러한 역동적인 선을 통해 도깨비의 흥과 해학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오윤 작가와 ‘현실동인’을 결성한 김지하 시인은 도깨비들을 보고 ‘한을 뚫고 나오는 신명을 담아낸 한류 미학의 시작’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오윤, 「낮도깨비」, 1984, 목판화, 53 X 37cm,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외에도 1983년 결성된 ‘두렁’은 마당극과 탈춤 부흥 운동을 전개하는 등 전통문화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두렁의 창립 동인 김봉준 작가는 「농악」(1990)에서 풍물놀이를 즐기는 민중의 모습을 그렸다. 두렁은 도시화로 나타난 인간 소외 현상을 전통문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술 운동을 펼쳤다.

  민중미술은 현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 사회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고 풍자와 해학을 통해 우회적으로 부조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궁극적으로 암울했던 시대를 예술로 표현하고 민중과 함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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