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 낙인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까맣게 꽃 피어나네, 내 눈에 내 몸에 내 가슴에, 상처로 물든…’,‘넌 깨져버린 추억들로 그중에 제일 달콤한 조각으로 날 찔러, 내 몸은 또 기울어져, 너의 품으로…’ 지난해 가수 주니엘이 발매한 ‘Last Carnival’란 노래로 그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당시의 감정을 담은 가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메갈’이라 칭하며 ‘메갈X 노래는 사지 않겠다’고 힐난했다. 개인의 폭력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메갈짓’으로 규정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메갈’이라 낙인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보았다.

  연예인도 피해갈 수 없는 ‘메갈’ 낙인

  ‘메갈리아’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이 국내에서 발생했을 당시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에 생긴 ‘메르스갤러리’에서 파생된 인터넷 사이트다. 메르스갤러리는 생성 당시 메르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여성으로 보도됐던 국내 첫 보균자가 남성임이 밝혀지면서 갤러리 성격이 변모했다. 첫 보균자가 여성인 게 오보임에도 여성혐오적 발언이 계속되자 미러링 방식으로 남성을 비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자 측은 ‘욕설 및 음란성 게시물 등록을 자제’하라 공지했고 결국 메르스갤러리 게시글을 삭제했다. 이에 ‘메갈리아’ 사이트가 생겨났다. 주로 과거에 겪은 성추행, 강간, 데이트 폭력 등의 아픔을 고백하는 공간으로서 미러링 방식을 사용했다.

  이후 반(反)여성혐오로 미러링 방식을 취하는 사람을 ‘메갈리아’ 이용자로 추측해 ‘메갈’이라 불렸다. 은송 웹툰작가는 요즘에는 미러링 방식뿐 아니라 단순히 여성혐오를 논하는 의견에도 ‘메갈’ 꼬리표가 붙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메갈리아를 하는 여자’라는 뜻의 ‘메갈’ 단어는 이미 본래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고,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딱지로서 사용되고 있어요.”

  지난 2016년 배우 이주영은 SNS를 통해 ‘여배우’란 단어가 여성혐오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이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라며 단순히 여성인 배우를 칭하는 단어가 왜 여성혐오에 해당하냐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여배우’가 인간의 디폴트 값을 남성이라 보는 시선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여성을 차별하는 단어라 설명했다. 또한 여성혐오에는 여성을 향한 공격뿐 아니라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에도 댓글 창은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적인 글이 빗발쳤고 그를 ‘메갈’이라 칭하는 글이 게시됐다.

  또한 페미니즘과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메갈’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2월 아이돌 손나은은 SNS에 ‘Girls Can Do Anything(GCDA)’이 적힌 핸드폰 케이스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이 케이스는 그가 화보에 참여한 브랜드로부터 받은 케이스였다.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인 GCDA는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뜻하는 문장으로도 쓰인다. 이후 각종 언론에서는 손나은이 ‘페미니스트 의혹’을 받고 있다 보도했고, 해당 게시물에는 ‘손나은도 메갈이었냐’며 실망하는 댓글이 달렸다. 계속되는 논란에 그는 결국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한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메갈’이라며 사이버 불링을 당한 경우도 있다. 30대 한국 여성의 보편적 일상을 담은 책 『82년생 김지영』은 안티 페미니스트에게 일명 ‘메갈서적’이라 일컬어진다. 아이린과 유나, 수영 등은 이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가 사이버 불링을 겪었다. 찢기고 불탄 아이린의 사진이 온라인상에 게시되기도 했다.

  김태희씨(22)는 유독 여성에게만 엄격한 ‘메갈검증’이 가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 연예인이 여성 인권신장을 위해 페미니즘을 논하면 마녀사냥처럼 ‘메갈’로 몰아간다고 느꼈어요. 반면 같은 말을 남성이 했을 경우 그만큼의 사이버 불링이 가해지는 경우는 드물죠.”

  이젠 노동권도 위협한다

  온라인에서 벌어진 ‘메갈 논란’은 단순히 사이버 불링에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지난 2016년 한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SNS에 게시하자 게임 이용자 사이에 ‘성우를 교체해달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결국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다. 이에 일러스트레이터 및 웹툰작가 등은 티셔츠 한 장을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 비판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작가들 또한 회사로부터 자신의 창작물을 삭제당하는 등 작업에 고초를 겪었다.

  ‘메갈’을 색출해 내려는 움직임은 개인이 SNS에서 하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범주에 담았다. 지난 3월 곧 업데이트 될 그림을 그린 한 일러스트레이터 A는 ‘한남충이 모욕죄로 인정됐으니 이제 맘충이라고 욕하는 것도 모욕죄로 인정되겠구나’, ‘메갈 티셔츠는 퇴출감이고 팬티 훔쳐보기 게임은 재미로 한 일이니 봐주자며 옹호할 일이다? 게임업계 전반에 여성을 차별하고 존중하지 않는 정서가 이토록 만연하다’ 등의 글을 리트윗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은 A가 일러스트에 참여한 게임 운영진 측에게 항의를 넣었고 운영진은 해당 일러스트 업데이트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로부터 직접 ‘메갈’이 아님을 검증하라는 요구를 받은 작가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B는 A의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표했다가 회사 측에서 ‘난 메갈리아와 관련이 없고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SNS에 게시하라고 요구받았다.

  고려대에 재학 중인 익명의 학생은 페미니즘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신념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이 가해지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또한 페미니즘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 해당해요. ‘메갈’이란 프레임을 통해 페미니즘을 향한 무조건인 비난을 하는 것은 기존의 옳지 못한 전통에 머무르려는 나태와 비열함이죠. 한편, 극단적인 남성비하 발언을 자제해 ‘메갈’ 낙인을 벗겨내려는 움직임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익명의 학생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페미니즘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논하는 모든 사람을 ‘메갈’이라 칭하는 현상은 ‘3차적 재혐오의 생산’이에요. 여성혐오에 대응한 남성혐오에 다시 여성혐오가 가해진 거죠. 배제적 페미니즘이 아닌 수용적 페미니즘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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