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당하고 ‘경계’지어진 
  • 하혜진 기자
  • 승인 2018.05.07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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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갇힌 사람들

 

벗가다’란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서 나가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번 학기 기획부는 사회에 존재하며 누군가를 억압하는 틀을 찾아 벗가보려 합니다. 세 번째 틀 속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 정체성, 다른 성적 지향, 다른 성적 표현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단순히 여자와 남자, 두 가지 성별로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는 함께 살기엔 불편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트랜스젠더인 크리스틴 조겐슨이 성전환 수술을 받을 당시 부모님께 썼던 편지가 전하는 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이 잘못한 것을 내가 바로 잡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
 


본 기사는 트랜스젠더 다섯 분의 실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새롭게 각색한 인물임을 알려 드립니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1995년 발매된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노래 중 한 구절이다. 이 노래가 나온 지 2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머리 긴 남자와 머리 깎은 여자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오늘날에도 ‘이상한 존재’로 여겨지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다를 바 없이 같은 ‘사람’인 우리가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속에서 함께 어우러질 날은 언제쯤 찾아올까. 트랜스젠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사회에 자리한, 그러나 반드시 벗겨져야 할 ‘트랜스젠더를 향한 색안경’을 알아봤다.

  시선은 화살이 되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 ‘헉’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불안한 눈빛에 A씨는 고개를 숙였다. 또 이런 반응이다. ‘여자야, 남자야?’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의 성별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일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야 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고 법적으로도 여성이 됐지만 A씨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신고 당할까 늘 두려움을 느낀다. ‘여성답게’ 보이지 않는 그를 사람들은 매번 ‘경계(儆戒)’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하며 ‘경계(境界)’지었다.

  사람들의 배타적인 시선과 무례한 말은 자주 A씨의 숨통을 옥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쾌한 시선과 수군거림을 참아내야 했다. 이를 피하려다 보니 외출도 점차 꺼려졌고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불편했다.

  얼마 전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곤욕을 겪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신나게 달리던 와중, 갑자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쫓아 나와 질문을 던졌다. “우와 여자예요, 남자예요?” A씨는 아이들에게 “그게 왜 중요한 거야?”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A씨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여자인지 남자인지만을 캐물었다.

  가끔은 가족들조차 A씨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창피해하며 숨기려 들었다. 처음 성전환 수술과 주민등록부 성별 정정을 고민했을 때도 그랬다. “주변 사람들은 생각 안 해봤어? 사람들에게 바뀐 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이 말을 들은 A씨는 참담하면서도 화가 났다. 그저 주민등록부에 표시된 성별이 바뀔 뿐인데, ‘나 자체’가 바뀐 게 아닌데, 자신이 더는 ‘나’로서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SNS에서 같은 트랜스젠더 친구들과 소통하며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SNS를 즐겁게 하고 있던 그때, 띵동띵동! A씨가 아까 올린 댓글에 갑자기 대댓글이 우수수 달린다. ‘트젠충 극혐’, ‘부모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나랑 성관계나 하자. 트랜스젠더들은 다 하는 거 아냐?’ 쏟아지는 몰상식한 발언에 A씨는 다시 자신의 숨이 옥죄어 오는 것을 느낀다.

  아플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성기가 있으니 다시 여성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걱정마요.”

  B씨는 어이가 없어 산부인과 의사를 빤히 바라봤다. ‘돌아간다’는 게 무슨 뜻일까? 자신은 원래 ‘여성’인 적이 없는데…. 성기만을 가지고 자신의 성을 남녀로 가르는 논리에 B씨는 분노를 넘어 괴로움을 느꼈다.

  B씨에게 병원 문턱을 넘기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 산부인과를 찾아간 이유도 그냥 염증 치료를 받기 위해서 였다. 그렇지만 들어서자마자 날아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본인 맞나요?” 간호사는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등록된 성별과 외모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저번보단 나았다. 저번에 간 병원에서는 B씨에게 다짜고짜 보호자 연락처를 요구했다. 보호를 받을 나이는 이미 훌쩍 지났는데 말이다.

  지방에 사는 B씨에게는 당장 호르몬 처방을 받는 일도 험난하다. 처음 B씨가 젠더 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을 때 찾아간 병원마다 모조리 퇴짜를 맞아야 했다. B씨의 동네에 트랜스젠더 진단을 할 줄 아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르몬 처방을 끊어야 나을 수 있다며 호르몬 처방을 안 해주려는 병원도 많았다.

  결국 수소문 끝에 서울의 한 전문 병원을 찾았다.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호르몬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다. 이제 호르몬 요법을 받기 위해 이 먼 거리를 평생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B씨는 이거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건강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 호르몬 요법 등 의료적 트랜지션 비용은 모두 B씨 본인 부담이다. 호르몬 요법에 따르는 여드름, 탈모 등 부작용 때문에 사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B씨는 부당하다고 느낀다. 자신도 국민으로서 세금과 건강보험료 모두를 내지만 국가는 자신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 것만 같다.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얼마 전 C씨 앞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입영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입영을 미루고 미루다 대학 졸업까지 한 그였다. 주변에서 트랜스젠더가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나 인권 침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C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징병검사를 받을 때 견뎌야 했던 수치스러움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젠더 정체성 장애 진단서까지 떼 갔건만 검사위원은 옷 갈아입을 공간만 분리해줬을 뿐 그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검사 내내 수백명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부대 안에서 그러한 모욕과 폭력을 참아내야 한다는 게 억울하고 또 화가 났다.

  C씨는 원래 성전환 수술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위험성과 후유증이 큰 성전환 수술을 굳이 받고 싶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했다. 그러나 국가는 군 면제를 받으려면 그가 지금 갖고 있는 성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지만 그에게 수술비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의사는 3000만원을 수술비용으로 불렀다.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그의 호주머니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실 3000만원은 무슨, 당장 취업부터 쉽지가 않았다. 대학도 나오고, 스펙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고용주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만 해도 서류부터 통과되지 않다 보니 이제 입사지원서를 쓰는 것부터가 두려웠다. 입사지원서의 네모난 남녀 기입칸이 꼭 그를 틀에 넣고 쥐어짜려는 듯했다.

  얼마 전에는 소위 말하는 ‘트랜스젠더 바’에도 찾아가 봤다. 간혹 SNS를 통해 성매매 요구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혹시나’하는 마음에서였다. 유흥업이나 성매매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바에서 여러 트랜스젠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예뻐야’ 하지, ‘여자답지’ 않으면 써주지도 않아.”

  바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며 C씨는 몇 달째 연락이 끊긴 다른 트랜스젠더 친구 D씨를 떠올렸다. 연락이 끊기기 전 D씨는 성전환 수술 비용을 구하기 위해 막노동, 공장 등을 전전했지만 자꾸만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야, 이 바닥에 자살하는 사람 한 다리 건너 하나씩 나오더라….” D씨가 울분을 삼키며 그에게 했던 말이 오늘따라 유독 뇌리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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