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복지는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한 물질적 보장에 치중했다. 그러나 탈물질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의 삶의 질과 생활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데까지 복지의 영역은 넓어졌다. 대표예시가 바로 ‘문화복지’다. 문화 소외계층에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듯 복지 개념은 발전했지만 과연 우리는 문화복지를 관대하게 보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우선 「문화예술진흥법」 제15조3항(문화소외계층의 문화예술복지 증진 시책 강구)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문화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예술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실제 정책을 보면 아직 선심 쓰기에 그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일례로 문화복지의 사업인 ‘문화누리카드’가 있다. 문화누리카드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삶의 질 향상 및 계층 간 문화격차 해소를 위하여 발급되는 카드다. 그러나 1인당 연간 7만원 한도에 불과하며 혜택의 정도도 크지 않다. 또한 1991년부터 문화소외계층에 지원된 ‘문화사랑티켓’은 2016년 국고보조사업연장평가에 따라 폐지됐다. 문화복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제대로 된 문화복지 시행은 곧 권리의 확장이다. 사회 진보는 권리의 범위를 넓히면서 일어났다. 억압에서 탈피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권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권리를 요구했다. 시민운동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고 이를 넘어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를 요구하는 과정처럼 말이다. 욕구를 취합하고 이를 권리로써 주장하고 보장하면서 사회는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총량도 늘었다.

  이제 ‘누구나 문화생활을 향유할 권리’를 누려야 할 때다. 문화적 욕구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딴지가 걸리지 않아야 한다. 자의적인 기준에 근거해 가난한 이들에 문화적 혜택이 제공돼야 함을 불쾌한 요구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타인의 권리를 속단하고 국한하는 것은 되레 개인의 행복을 억제하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다.

  흔히 문화생활은 생존에 관계 없는 것들로 인식된다. 가난한 사람에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이유다. ‘가난한 자’에게 베풀 수 있는 온정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할 정도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려야 하는 권리에 정해진 범위는 없다.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약자의 권리를 한층 높이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자.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대상이 사회 전체 구성원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약자를 위한 더 넓은 목소리를 내자. 권리는 우리가 재단한 범위 그 이상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밝히며 문화복지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길 바란다.

이나원 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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