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위는 무법지대?
  • 이건희 기자
  • 승인 2018.05.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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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힙합’입니다. ‘힙합’는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역동적인 춤과 음악을 총칭합니다. 이러한 힙합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힙합의 지나친 혐오표현과 욕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힙합의 혐오 표현, 이대로 괜찮을까요?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하는 걸까요? 3명의 대학생과 앙잘앙잘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자극적이고 거친 가사

멋과 불편함의 ‘두 얼굴’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X 쳐봤지” 지난 2016년 발매된 노래 「Indigo Child」에서 래퍼 블랙넛이 부른 가사 중 한 소절입니다. 이 가사는 여성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 하고 비하해 논란이 불거졌죠. 가사의 당사자인 키디비는 블랙넛을 「성폭력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모욕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블랙넛뿐 아니라 많은 래퍼가 가사에서 혐오표현이나 욕설, 비하 발언을 사용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경우가 있는데요. 표현의 자유 이전에 지켜야 할 기본적 가치가 무너지는 현실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힙합의 거친 표현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요? 황영선 학생(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과 흑인음악 동아리 ‘Da C Side’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기찬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 김민준 학생(물리학과 2)과 함께 ‘힙합 속 혐오 표현’을 이야기해봤습니다.

  높은 인기, 낮은 도덕

  사회자: 요즘 음원 차트 상위권에 힙합 음악이 많은 걸 보니 정말 대세인 모양이에요. 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비속어나 욕설, 혐오 발언이 많아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하죠. 혹시 힙합 음악을 들으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가사가 있었나요?

  민준: 스윙스가 故최진실씨의 자녀를 가사에 언급한 게 생각나요. 굳이 언급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어요. 

  기찬: 저는 블랙넛의 노래 가사처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가사에 눈살이 찌푸려져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 같아요. 그런 표현 없이 힙합을 충분히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죠.

  영선: 지코가 생각나요. 지코의 노래 중 ‘광주 출신이 아니지만 전라도 환영’이라는 가사가 잊히지 않아요. 지역 비하와 동시에 여성의 전라도 환영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굉장히 불쾌했죠. 대중에게 파급력이 큰 연예인이라면 가사를 쓸 때 시민의식을 갖고 인권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사회자: 일각에서는 이런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박하기도 해요.

  영선: 욕설이나 혐오성 가사는 이미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거예요. 가사에 대한 비판은 가수가 짊어져야 할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아니죠.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는 보통 약자가 거대 권력으로부터 억압받을 때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죠. 혐오 섞인 가사를 쓸 때가 아니라요.

  기찬: 가사의 주제나 표현이 사회 정서에 부합하는 것도 중요해요. 가사 수위가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면 지탄받아야 하죠. 책임을 져야 하고요. 

  민준: 저는 표현을 너무 적나라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특정 대상을 비하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잘못이죠.

  사회자: 가사를 직접 쓸 때 비속어나 욕을 쓴 적 있나요? 

  기찬: 가사를 쓸 때 남을 비하하는 표현은 쓰지 않아요. 가치관이나 윤리의 기준선이 있으니까요. 반면 욕은 조금 쓰는 편이죠. 처음 힙합 문화를 배우며 본 게 욕으로 도배된 가사였거든요. 최대한 안 쓰려고 해도 욕이 들어간 가사를 접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사에 욕을 쓰게 돼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요.

  민준: 저도 기찬씨와 비슷해요. 힙합에서 멋을 드러낼 때 사용하던 표현이 주로 욕이다 보니 저도 종종 쓰게 된 것 같아요. 

  사회자: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나요? 

  민준: ‘Fxxk’을 가장 많이 쓴 것 같아요. 신경 안 쓴다는 표현도 ‘I don’t care’이라고 쓸 수 있는데 ‘Fxxk that shxx’이라고 쓰기도 하죠. 

  영선: 욕을 사용함으로써 여성 혐오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려돼요. 힙합에서 사용하는 욕 대부분이 ‘MotherFxxker’처럼 여성 비하 표현인 경우가 많죠. 힙합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한국 욕도 대부분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고요.

  기찬: 동의해요. 욕은 의도가 어떻든 결국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유발한다고 생각해요. 욕을 쓰지 않고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사람도 많죠. 저는 욕이 아닌 가사에 담긴 철학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요. 하지만 욕을 사용했을 때 따라오는 관객의 호응이 있죠. 거친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연에서는 욕을 써야 공유되는 흥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본질을 되돌아보자

  사회자: 유독 힙합에서 거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민준: 힙합이 미국 흑인 빈민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에요. 흑인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사가 거칠어진 것 같아요. 한국 힙합도 이에 영향을 받아 욕이나 비하 발언 같은 거친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됐다고 생각해요.

  기찬: 민준씨 말씀처럼 힙합이 탄생한 배경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제 생각엔 무엇보다 래퍼 개인의 가치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힙합 문화에서 가장 멋있는 점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관을 솔직하게 가사에 담아내는 거죠. 하지만 래퍼가 자신이 가진 잘못된 가치관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가사에 표현하다 보니 종종 문제가 발생하죠.

  사회자: 꼭 거친 표현이 있어야 진정한 힙합의 멋이라 말할 수 있나요?

  기찬: 아니죠. MC메타라는 래퍼가 있어요. 그분은 욕 없이도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사로 잘 풀어내요. 삶을 성찰하거나 후배를 위한 조언이 대부분이죠. 굉장히 멋있고 한국 힙합의 선구자로서 많은 래퍼가 그분을 존경해요. 이런 점을 보면 꼭 거친 표현이 없어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선: 맞아요. 그런 게 진정한 ‘스웩’인 것 같아요. 가사에 욕을 쓴다고 꼭 멋있는 건 아니죠. 

  민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욕도 친한 친구 사이에서 친근감의 표시로 쓸 때가 많죠. 힙합에서도 욕을 하면 때로는 멋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히 있다면 굳이 거친 표현이 없어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어요. 계속 욕만 하면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기찬: 불필요한 부분에 과도하게 욕이 사용되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래퍼가 자신의 힘든 삶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번 정도 욕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힙합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민준: 힙합의 본질을 딱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전하는 것도 힙합이고 흥을 표현하는 것도 힙합이라고 생각해요. 힙합은 단어 그 자체로 엉덩이를 흔들 게 하는 음악이잖아요. 

  영선: 힙합은 차별을 받아온 흑인에게서 비롯된 문화인 만큼 평등, 자유를 향한 욕구와 문제의식이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본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힙합은 그저 ‘멋만 부리는 것’으로 호도되는 것 같아 아쉬워요. 힙합의 본질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인데 지금은 거꾸로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서서 오히려 약자에게 비난을 가하는 상황이죠.  

  기찬: 결국 한국에서 힙합을 하는 거잖아요. 미국 힙합에서 솔직하고 과격한 표현을 쓴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할 필요는 없어요. 무작정 미국 힙합을 따라 해 대담하고 솔직하게, 자극적인 가사를 쓰는 건 진정한 힙합이 아니죠. 

  오해와 혐오 지우기

  사회자: 힙합에서 혐오표현이나 욕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래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하는 상황이죠.
기찬: 가치관이 잘못된 래퍼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래퍼 전체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죠. 물의를 일으킨 몇몇 래퍼들을 보고 ‘래퍼는 다 저렇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영선: 맞아요. 유명한 사람이 문제의식 없이 혐오표현이나 욕설을 가사에 쓰기 때문에 래퍼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민준: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른 장르에 비해 자유롭다 보니 욕이나 비하 발언을 하는 사람도 쉽게 생기기 마련이죠. 

  기찬: 시대정신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활동하는 래퍼들이 힙합을 접한 시기엔 혐오 발언 등에 대한 반성이 활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의 음악에 거친 표현이 많은 것 같아요. 과거와 달리 요즘엔 욕이나 혐오 발언을 개선하려 노력하죠.

  사회자: 힙합 문화를 올바르게 발전시키고 즐기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찬: 힙합을 듣는 사람의 피드백이 중요할 것 같아요. 힙합이라는 장르가 워낙 자유롭고 다양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욕이나 혐오 발언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럴 때 음악을 듣는 사람이 래퍼에게 ‘이건 옳지 않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라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준: 음악을 듣는 사람의 피드백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욕 같은 거친 표현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해요. 힙합이 가진 자유로움도 중요해요. 

  영선: 힙합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인권의식을 높여야 해요. 스스로 성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죠.

  사회자: 힙합이 혐오와 비하에서 벗어나 적정선 안에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것 같네요. 그것이 대중과 래퍼들이 건전하게 공존할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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