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힘이다. 미치광이 은둔자라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탄성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한 후 단 하루 만에 우리에게 대단히 친숙한 인물이 되었다. 

  생방송이 신의 한 수였다. 남북정상회담의 전 과정을 가감 없이 보면서 사람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언어적 표현에서부터 비언어적 표현까지 각자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분석했다. 매체가 기사를 선별하고 편집한 뒤 내보내는 뉴스로 접했다면 이런 교감이 가능했을까? 이런 인식의 대전환이 가능했을까?

  SNS에서 사람들은 ‘옥류관 냉면 서울 분점’, ‘대동강 캔맥주 네 개 만원’, ‘개마고원 락 페스티벌’, ‘금강산 글램핑’이라며 즐거운 상상을 즐긴다. 드라마틱한 발상의 변화다.

  북한에 관한 영화 세 편을 소개하겠다. <쉬리>(1999년, 강제규 감독), <간첩 리철진>(1999년, 장진 감독), <공동경비구역JSA>(2000년, 박찬욱 감독). 당시 굳건했던 내 고정관념을 일거에 깨뜨려버린 놀랍고 통쾌한 영화다.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남북한 병사의 우정이라니! 우리 국정원 요원이 북한 특수부대 남파간첩과 사랑에 빠지다니! 특히 압권은 <간첩 리철진>이었는데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그 충격은 잊을 수 없다. 간첩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북괴 간첩이 남파됐는데 요원암살이나 건물 폭파가 아닌 슈퍼 돼지를 가지러 왔다는 임무에서부터 생계를 고민하는 고정간첩, 고정간첩을 부모로 둔 자식의 고민 등등 재기발랄한 씬으로 넘쳐난다. 대종상에 우수 반공 영화상이 1987년까지도 존재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십 년 만에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놀라운 속도로 벗어난 셈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최근에 작성된 네티즌들의 영화평을 찾아봤는데 대다수가 “지금은 대배우가 된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보는 재미”를 꼽고 있었다. 그 외는 별로 큰 감동이 없다는 뜻이겠다. 심지어 <쉬리> 영화평 중에 이런 평도 눈에 띈다. “익숙하고 흔한 내용”

  북한 특수부대가 남한에 잠입, 테러를 계획한다든가 남한 정보국에 스파이가 있는지 정보가 계속 새 나간다는 설정. 알고 보니 한석규가 사랑하는 여인 김윤진이 간첩이라는 뻔한 반전. 맞는 얘기다. 흔한 구조고 예측 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영화가 시초다. 이후에 나온 비슷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쉬리의 구조를 따라 하거나 최소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익숙해 보이는 것뿐이다.

  앞으로 남북한 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대거 기획될 것이다. 어떻게 놀랍고 신선한 발상으로 접근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 50년대 혹은 6,70년대 시대물을 찍을 때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그 시절 분위기를 찾을 수 없어 대규모 야외 세트장을 만든다. 앞으로 북한에서 장소 잘 찾으면 야외촬영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또한 몹시 기대가 된다.

주찬옥 교수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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