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편견이 만든

제도 속 고통받는 그들

“난 거 싫어요.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면 몰라도…” 지난해 대선기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성 소수자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다. 그의 발언은 트랜스젠더를 향한 무지와 편견을 보여준다.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는 사회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사회가 배제해버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트랜스젠더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봤다.

  한국 성별 정정 기준=고문

  우리나라는 법적 성별 변경 요건을 규정한 법률이 없다. 지난 2002년에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 관한 특례 법안’이 발의된 이후 두 차례 더 관련 법안이 논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트랜스젠더 퀴어 연구소 루인 선임연구원은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사무처리지침)에만 의존해 성별 정정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별 정정과 관련한 판결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참고자료로 만든 게 사무처리지침이에요. 구체적으로 설정된 제도가 없다 보니 단순한 지침이 사실상 법률이 됐죠.” 사무처리지침이 만들어 진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성별 정정에 관한 법적인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처리지침이 트랜스젠더에게 과도한 조건을 요구한다는 점도 문제다. 성별을 정정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시돼야 할 부분은 ‘개인이 인지하는 성 정체성’이다. 하지만 사무처리지침은 이외에도 ‘정신과 치료 여부, 자녀 유무, 생식능력의 불능 여부’ 등을 묻는다. 실제로 다른 국가의 성별 정정 기준과 비교해 봤을 때 과도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려면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 의사 진단서가 필요하다. 실제로 성 정체성 혼란은 ‘성 정체성 장애’란 명칭으로 정신질환 진단분류(DSM-5)에 등록돼있다. 이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성별 정정에서 요구하는 정신과 진단서는 자기 선언이 아닌 의사의 진단을 통해 트랜스젠더임이 증명돼야 함을 뜻해 문제가 된다. 정신과 의사가 감별사의 역할로 트랜스젠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자녀 유무 또한 성별 정정에 영향을 미친다. 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성별 정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별이 바뀐 부모는 미성년 자녀에게 혼란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부모가 트랜스젠더인 경우 부모의 성별 정정이 오히려 자녀를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트랜스젠더인 가정을 보면 트랜스젠더 부모를 이해하는 자녀의 경우가 더 많아요. 오히려 자녀의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로 인해 부모가 원하는 성별로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죠.”

  또한 사무처리지침은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를 요구한다. 이는 신청인이 성전환 수술을 받아 태어났을 때 갖고 있던 성기가 전환하고자 하는 성별의 성기와 유사한 외관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성별 정정을 위해선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고문특별조사위원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불임 요구는 고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승현 이사는 개인이 느끼는 성별 위화감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이 꼭 필요한 조치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성별 위화감은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달라서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뜻해요. 성별 위화감이 낮은 경우에는 호르몬 요법만 시행해도 무방하죠.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수술이 필수적인 건 아니에요.”

  트랜스젠더가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의료적 조치로는 호르몬 요법에서부터 목젖성형수술, 고환·정관절제술, 자궁·난소난관절제술, 성기재건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현재 한국은 이러한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모든 수술을 다 끝마친 트랜스젠더에게만 성별 정정을 허락한다. 법원의 일방적인 조건에 원하지 않는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요구하지만 도와주지는 않는다

  현재 트랜지션과 관련한 정신과 진단과 호르몬 요법, 외과적 수술 등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항목이다. 녹색병원 윤정원 과장은 트랜지션에 드는 높은 비용을 전부 환자가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실정을 비판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경우 자궁절제술에 약 350만원, 가슴의 유선절제술에 약 300만원의 비용이 들어요. 하지만 시스젠더* 여성이 자궁절제술을 받을 때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죠.”

  비용의 측면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의료기관의 인식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이승현 이사는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한정적이고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정도도 낮다고 말한다. “의료기관에서 트랜지션과 관련한 부작용이나 정신건강을 간과하는 측면이 많죠. 심지어 보험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이 성전환 수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어요.”

  의료적 조치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할 때 의료진의 편견을 대면하는 일도 다반사다. 루인 선임연구원은 의료진의 무지에서 비롯된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발언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진료 과정에서 의사에게 혐오 발언을 듣는 일이 잦지만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장치가 없어요. 트랜스젠더들 스스로가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트랜스젠더에게 우호적인 병원을 공유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인식이 먼저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의 문제는 결국 트랜스젠더를 향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다. 제도가 무력화됐을 때 인권의식이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자를 외면하고 차별을 묵인했다. 소수자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남녀로 성별을 분리하는 사고는 성 소수자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루인 선임연구원은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상황은 여성과 남성 이외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녀로만 성별을 기재하는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불가능한 삶, 잘못 태어난 존재로 보이게 되죠. 하지만 트랜스젠더를 잘못 태어난 존재로 만드는 사회에 먼저 잘못을 물어야 해요.”

  매년 5월 17일은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세계보건기구에서 동성애를 DSM-5 분류 목록에서 제외한 날을 기념해 열리는 행사다. 과거 동성애를 향한 사회적 낙인이 있었던 것처럼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문제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동성애를 병자로 바라봤어요. 하지만 1990년 이후 공식기관에서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고 선언했죠. 현재 사회는 트랜스젠더를 부도덕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어요. 이제는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죠.”

*시스젠더: 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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