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시대, ‘반야심경’에 길을 묻다
  • 중대신문
  • 승인 2018.04.09 0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야심경』 (해석본, 저자미상)

대학 시절 나의 인생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반야심경을 내놓는다. 우리가 공부하는 반야심경은 손오공을 거느렸다는 당나라 삼장법사가 천축국(인도)에 유학하며 범어 원전을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그리고 가요와 팝송으로 대변되는 통제와 금기의 1970년대, 반야심경은 부조리한 세상을 읽는 나의 나침반이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제목 10자를 더하면 총 270자로 쓰인 반야심경은 이 첫 구절에 중심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번역하면 이렇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이 대목에서 핵심어는 바로 ‘오온이 공하다’는 것이다. 오온이란 물질계와 의식계를 구성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 색(물질)을 포함해 수(느낌), 상(연상), 행(반응), 식(분별)등 다섯으로 구분되는데 이 모든 것이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하다 할 때 우리는 대개 ‘없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공(空)은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무(無)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있음을 전제로 한 없음이며 채워있음을 전제로 한 ‘비어있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연기론적인 가르침이다.

  공의 철학은 과학적이고 인식론적으로 정합하다. 사유하는 나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정해진 실체가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며 내일의 나 또한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교수이고, 집에서는 아버지이며, 병원에서는 환자이고, 기차에서는 승객으로 불리운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근대가 종식을 고한 이후 존재의 본성을 파악하는 핵심적 길잡이가 된다.

  반야심경은 오온이 공함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온이 공함을 안다는 이야기는 세상사 모두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규범과 관습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많고 적음, 차고 따뜻함,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의 본성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상황의 소산이자 오직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고 정신을 차려 깨닫는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했다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미래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지식사회는 갈피가 없는 상황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출현이 아닌 마음의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알고리즘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있음을 전제로 한 없음의 세계, 채워있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불가사의한 세계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기론’에 기반을 둔 반야심경의 공 철학이 ‘관계의 시대’를 통찰하는 나침반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김영호 교수 서양화전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