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문헌정보학과 전공기초 수업에서 약 40명의 학생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호그와트도 아니고 중앙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이 신비로운 마법의 비밀은 바로 ‘교수’에 있다.

  학계의 거장이라는 문헌정보학과 A교수는 자신이 언급한 소설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40여 명의 학생을 결석처리 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출석을 했음에도 결석이 되는 아이러니하고 마법 같은 상황에 놓였다. A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출결은 교수의 재량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그는 이게 취재거리나 되냐며 호통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정말 이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결석’의 사전적 정의는 ‘나가야 할 자리에 나가지 않음’이다. 만약 A교수가 학생들이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에 문제를 느꼈다면 태도 점수를 감점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야 했다. 학생들은 ‘결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결석 처리하겠다는 것은 교수의 재량을 넘어서는 불공정한 처사다. 아무리 교수라도 존재는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수는 갑의 위치에서 학생들을 손쉽게 지우고자 했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A교수는 책을 들고 오지 않은 학생들을 가리켜 “그놈들을 학생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A교수가 말했던 ‘교수의 재량’도 결국 ‘그놈들’로 칭해진 학생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교수는 학생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런 교수가 학생을 그리도 쉽게 지워버리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교수는 학자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스승이기도 하다. 캠퍼스 안에서 교수는 선생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A교수의 결석 처리는 그러한 교수의 역할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가 진정으로 학생을 위했다면 결석 처리 대신 학생들과의 소통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A교수는 학계에서 뛰어난 학자일지는 몰라도 훌륭한 선생은 아니다.

  이는 비단 A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인격모독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정 사람들을 향한 차별적인 언행은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됐고 학생들은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조소전공 성추행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성폭력을 행하는 교수의 모습은 스승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지위를 사용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일 뿐이다.

  이러한 씁쓸한 사건을 바라보며 교수라는 찬란한 이름이 권위라는 껍데기만 남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문헌정보학과 A교수는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분야에서는 한 획을 그은 인물일지는 몰라도 학생을 지워버리는 과오를 저질렀다. A교수는 교수의 권리는 학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이라는 것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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