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언총이 필요하다
  • 박수현 기자
  • 승인 2018.04.09 0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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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우리
말을 내뱉기 전 언총을 떠올리자

“네가 없는 게 나한테 도움 주는 거야”, “넌 키도 몸매도 괜찮은 것도 아닌데 공부는 더더욱 아니야. 너는 잘난 게 뭐가 있어?”  

  나는 다른 사람이 툭 건네는 ‘말’ 한마디에 웃고 운다. 그리고 웃게 하는 말보다 울게 하는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하게 울 때면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무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면 무거운 말보다 가벼운 말을 쉽게 내뱉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베스트셀러인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언총(言塚)이 언급된다. 이는 400~500여 년 전에 지어진 말(馬)이 아닌 말(言)을 묻는 무덤으로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 위치해 있다. 옛날부터 여러 성(姓)씨가 모여 살던 한대마을에서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마을 어른들이 해결방안을 찾던 중 마을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말싸움의 원인과 예방책을 알려줬다.

  그는 한대마을을 둘러싼 야산의 모양이 개가 짖는 모습과 같아 마을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일렀다. 더불어 싸움의 발달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모아 구덩이에 묻으라고 말했다. 예방책대로 구덩이 위에 돌과 흙을 쌓아 올려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다. 이는 남에게 상처가 될 가벼운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는 의도다. 이후 한대마을에 말싸움이 없어지고 평온해져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요즘 사회는 과거 한대마을과 닮았다. ‘아무말대잔치’가 유행해 젊은이들은 듣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말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더불어 팩트(Fact)로 폭력 한다는 ‘팩트폭력’도 성행한다. 사람들은 ‘사이다’를 외치며 더욱더 시원한 팩트폭력을 부추긴다. 이런 현상은 한 대마을 야산의 개가 짖는 모습과 별다를 바 없다.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는 말은 작게는 말싸움부터 크게는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야기한다.

  상처가 될 가벼운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내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다 보면, 말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말을 내뱉기 전, 언총을 떠올려보자. 언총 주변에 있는 비석에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등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후세에도 한대마을처럼 말싸움이 없어지길 원하는 선조들의 마음이다.

  선조의 지혜에 따라 지금 내가 내뱉으려는 말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나을지, 언총에 묻는 게 나을지 한 번 고민해보자. 말이 너무 가벼워 언총에 묻어야 한다면, 과감하게 묻자.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나둘씩 언총에 묻으면, 한대마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평온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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