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자신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신중하다. 심지어 의견 밝히기를 주저하거나 ‘나는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민감한 이야기를 하면 격한 논쟁을 하거나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민감한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는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정치를 논하기 어려운 이유는 서로 간의 생각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깨달았다.

  ‘나는 합리적이고, 너는 비합리적이야’라는 계몽적인 태도가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그 사람들이 쉽게 선동 당해서 그런 거야’, ‘그 사람들이 팩트를 몰라서 그런 거야’라며 어떠한 주장 자체의 반박이 아니라 상대방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다소 무지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은 전혀 편향되지 않거나 완벽하게 깨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의 주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태도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독선을 심화시킨다.

  두번째는 자신의 성향은 드러내길 꺼리면서 타인의 성향을 쉽게 단정하는 태도다. 단지 상대방의 말 몇 마디만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현 정권의 외교 정책을 적극 옹호하면 그 사람을 ‘현 정권이나 대통령의 지지자’로 규정한다. 또는 누군가가 보수 정권을 한 번 비판하면 그 사람을 ‘진보 정권의 지지자’로 규정하고 과거의 진보 정권은 잘못이 없었냐는 식으로 반박한다. 이렇게 타인을 규정하는 태도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위축하게 만들며 이야기의 결론을 피장파장으로 끝내버린다.

  마지막은 모든 이슈를 습관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들이대는 태도다. 여기서의 보수와 진보는 특정 정권이나 정당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다소 ‘편의적인’ 기준을 말한다. 가령, ‘Me Too(미투) 운동’의 경우 구조적인 또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그저 유명 정치인의 사건이나 정당 간 진흙탕 싸움을 논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모든 사안을 진보와 보수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더 중요한 관점을 놓치거나 논의의 흐름을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정치 이야기를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에 답답함을 느낀다. 정치를 과도하게 논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생활과 밀접한 정치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특별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생각의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과 상대방의 태도에 주의한다면 조금은 더 부드럽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민수 학생 
정치국제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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