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을 제안한 사회, 행동이 제약된 우리
  • 민용기 기자
  • 승인 2018.04.02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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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갇힌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상처를 주는 강요된 ‘순결’

“선화공주는 남몰래 사귀어 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사모해 퍼뜨렸다는 이 노랫말 속에는 혼인도 하지 않은 공주가 남성과 불순한 행동을 했다는 암시가 담겨있다. 이 노래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결국 선화공주는 멀리 귀양을 가야만 했다. 선화공주가 궁 밖으로 쫓겨난 이유는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목 때문이었다.

  ‘순결’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선 여군에게 처녀막 유무 확인검사를 했으며, 미국에선 자신의 ‘처녀성’을 팔겠다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순결’과 ‘처녀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순결’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중대신문에서는 사람들의 ‘순결’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31일간 ‘순결과 처녀성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우리나라에 ‘순결’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총 응답자 258명 중 90.3%(233명)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순결’을 덕목으로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인지했다.

  ‘순결’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 233명 중 96.1%(224명)는 ‘순결’을 강요받는 특정 생물학적 성별이 있다고 답했다. ‘순결’을 더 강요받는 생물학적 성별로는 ‘여성’이 약 99.1%(222명)을 차지했으며 ‘남성’은 약 0.9%(2명)를 기록했다. 생물학적인 성별에 따라 사회가 개인의 성경험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설문결과를 통해 대체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성경험의 전무함이 중시 되는 문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여성의 ‘순결’을 의미하는 ‘처녀성’에 대한 경험을 묻는 설문을 실시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경험한 여성의 순결을 중시하는 발언은 약 77.5%(200명, 복수응답)의 응답자가 선택한 ‘여성의 성생활이 문란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으로는 ‘여성은 처녀막을 중시해야한다는 인식을 접한 적 있다’가 약 57%(147명, 복수응답)를 차지했다. 또한 약 54.7%(141명, 복수응답)의 응답자가 여성은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접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뒤로는 ‘생리컵을 쓰면 처녀막이 찢어진다’, ‘산부인과를 가면 처녀성을 잃는다’는 인식을 접했다는 답변이 각각 약 40.7%(105명, 복수응답), 약 30.7%(87명, 복수응답)을 차지했다.

  모두가 괴로운 이중 잣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순결’에 대한 잣대는 심층 취재된 사례에서 더 잘 드러났다. 한 응답자는 ‘항상 남성으로부터 아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사회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처녀성’을 강조한다고 토로했다.

  가족으로부터 ‘순결’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느낀 응답자도 있었다. “생리 기간에 바다에 들어가야 해서 탐폰을 끼려는데 삼촌께서 ‘그게 들어가면 이상한 거 아니냐’란 말씀을 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방광염에 걸렸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문란하게 사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듣기도 했죠.”

  여성에게 ‘순결’을 덕목으로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는 여성의 행동을 오로지 생식기능에 도움이 될 때만 허락하겠다는 관점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 조부모로부터 처녀막 보호를 위해 자전거를 많이 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항상 몸을 따뜻이 하라는 이야기도 주위로부터 자주 들었죠.” 여성을 재생산의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로 여기며 자궁에 해가 가는 행동을 제한한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받는 잘못된 성교육 지식 또한 ‘순결 이데올로기’를 양산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생 때 여자아이들만 ‘순결 캔디’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고등학생 땐 선생님으로부터 ‘여성의 순결이 남편에게 엄청난 선물이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죠.” 교육기관에서 조차 여성에게 성경험에 있어 전무함을 강요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학습된 ‘순결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일상 속 대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이 취재 결과로 확인 됐다. 취재 응답자의 대부분은 주변과의 대화에서부터 성경험의 유무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분위기가 있음을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한 응답자는 선배로부터 ‘순결은 나중에 결혼할 남편에게 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나의 자유의사로 정하는 부분을 타인이 함부로 결정해버리니까 기분이 나빴죠.” 다른 응답자는 실제 생활에서의 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여성의 ‘처녀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방송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순결’을 중시하는 문화를 접하게 돼서 문제에요.”

  여성의 ‘처녀성’을 강요하는 문화는 남성에겐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설문의 한 응답자는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개인의 성경험을 향한 시선이 정 반대로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다. “성경험이 많은 남성을 ‘만능열쇠’로, 여성을 ‘잠기지 않는 자물쇠’로 칭하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딸에게만 성관계를 가졌냐고 추궁하는 부모를 본 적도 있죠.” 남성에겐 성경험의 유무가 일종의 자랑거리가 되며 능력의 척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남성의 성경험을 능력으로 보는 관점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어진다. A학생(25)은 성경험이 없는 남성을 무능력하다 여기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저는 종교적 이유로 결혼 후에 성관계를 갖겠다는 신념이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이런 저에게 ‘고자’ 또는 ‘선비’냐 물어 보기도 하죠. 애써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고쳐나가야 하는 문화라 생각해요.”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성경험을 다르게 판단하는 사회의 이중 잣대 속에서 결국 모든 사람들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나를 잃었다
  여성에게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은 크게 성적자기결정권과 생명·신체의 처분에 대한 결정권, 피임결정권 등이 해당된다. 심층취재 결과 이 세 가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설문의 한 응답자는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처녀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산부인과에서 질염 검사를 받은 후에 ‘처녀막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처녀막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이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아직 중요하다’고 말했죠.”

  또한 산부인과 자체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산부인과를 꺼리는 응답자도 있었다. 자궁에 혹이 나거나 생리불순 문제로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들은 주변으로부터 문란한 성관계 때문에 왔다는 시선을 받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처녀막으로 여성의 ‘처녀성’을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성이 생리용품을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의 생리컵 도입을 알리는 기사에는 ‘질이 늘어나고 처녀막이 찢어진다’ 등의 잘못된 인식이 담긴 댓글이 달린 적 있다. ‘성경험 있는 여성들만 사용하냐, 생리컵에 음료를 타주는 것이냐’는 등의 성희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B학생(22)은 사람들이 여성의 자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잘못 된 정보를 사실처럼 묘사하는 글들이 많아요. 여성 신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없다고 생각해요.”

  응답자 중 일부는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성경험을 숨기거나 ‘거짓순결’을 연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히 성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럽다는 시선을 보내는 사회 앞에서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차별적인 깨끗함은 우리 사회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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