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정보, 올바른 인식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충격적인 이 문장 은 유명 아이돌이 부른 노래 가사의 일부다. 산부인과를 타인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 곳으로 폄하한 가사 속에는 산부인과와 여성을 향한 모멸과 비하 인식이 그대로 담겨있다. 출산한 여성을 성적으로 ‘깨끗하지 않다’고 여기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 았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것이다. 단순히 성경험의 유무를 기준으로 ‘순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순결’과 ‘처녀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방안은 무엇일지 전문가와 함께 알아봤다.

  내 몸은 내가

  “유교 문화권 내에서도 특히 한국은 ‘처녀성 ’강박이 강하게 존재하는 나라에요. 한국에서 ‘처녀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는 미혼 여성이 정상인지, 도덕적으로 옳은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죠.” 이주라 연구 교수(한림대 한림과학원)는 한국 사회가 ‘처녀성’에 대한 그릇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혼 여성의 경우 성경험 여부가 그 여성의 인성과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명 연예인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도 피해자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꽃뱀으로 몰리는 이유도 여성의 ‘순결’을 곧 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발생한 사례다.

  이현재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는 한국 사회에서 ‘처녀성’ 강박관념을 벗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순결’과 ‘처녀성’은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데서 유래해요.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몸과 욕망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지 여성이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죠.”

  마찬가지로 성추행이나 강간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엄연한 범죄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성폭력 문제를 단순히 여성의 ‘순결’이 침해받은 사건으로 바라본다. 이현재 교수는 ‘Me Too(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또한 여성의 성적인 ‘순결’을 중시하는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를 평소에 성적 관계가 문란한 사람으로 몰거나 스스로 원했 다는 인식을 씌우며 미투 운동을 저지하려는 모습이 있어요. 이는 여성을 ‘순결’이란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죠. ”하지만 오히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제 한하는 방향이 아니라 여성을 성적 욕망의 주체로 변혁시킨다는 점에서 여성해방운동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주라 연구교수 역시 여성의 신체가 여성 스스로에 속한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그 누구도 침해하지 않을 때 ‘순결 이데올로기’가 사라질 수 있어요.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신이 가질 때 여성들 또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당연하게 할 수 있죠.” 산부인과를 방문하고 피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신체에 대한 주체성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한 정보가 정답

  ‘순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여성의 몸을 정확히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정보 중 가장 큰 오해는 성적 ‘순결’을 상징한다고 여기는 처녀막이다.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과장은 질을 막고 있는 상태를 연상시키는 처녀막 대신 질 주름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처녀막이라 부르는 부분은 사실 질 입구의 일부를 가리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주름이에요. 질을 막고 있는 것도, 터지는 것도 아니죠. 첫 성 경험에 출혈이 있는 여성은 50%도 안 된다는 연 구 결과도 있어요.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처럼 질 주름이 질 입구를 막고 있으면 이를 절개하는 수술이 필요하다.

  처녀막이 의학적으로 잘못된 표현이란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주라 연구교수는 ‘처녀성’에 대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몸가짐을 조심하고 얌전한 모습이 올바른 여성으로 인식되는 밑바탕에는 남자를 모르는 얌전한 처녀가 좋다는 사고가 깔려 있어요. 처녀막의 진실이 의학적으로 밝혀졌지만 ‘처녀성’ 인식은 바뀌지 않았죠.” ‘순결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일상의 배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논리로 활용된다.

  또한 산부인과의 진료 범위를 출산에 한정 짓는 편견도 존재한다. 비혼 여성이나 청소년이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는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 비혼 여성 1324명 가운데 약 53.2%가 생식기 건강에 이상을 경험했으나 이 중에서도 약 56.9%가 산부인과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현재 교수는 그 이유가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 때문이라 말한다. “ ‘처녀성’이 강조되는 문화에서 비혼 여성의 산부인과 출입은 곧 몸을 마구 굴린 여자, 창녀, 한심한 여자 등으로 등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혼 여성도 산부인과 진료가 필수적이다. 여성 생식기와 관련된 질병은 성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질염은 오래 앉아 있거나 세정방식이 잘못된 경우에도 발생 하는 흔한 질병이다. 또한 생리통 역시 참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하거나 제거할 수도 있는 통증이다.

  성교육으로 바꾸는 인식

  사회에 만연한 ‘순결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윤정원 과장은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나온다는 신화를 이제 버려야 해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성교육을 통해 ‘순결 이데올로기’를 깨야 한다는 것이다.

  성교육이 올바르게 정착된 대표적인 국가는 캐나다와 영국이다. 캐나다와 영국은 국가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청소년 시절부터 올바른 성지식을 접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함양할 수 있는 철학을 가르친다. 단순히 안전한 성관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왜 중요한지와 실질적인 대화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국가 주도로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었지만 올바른 성평등 가치를 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 전화’가 작성한 ‘교육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의견서’에 따르면 이 표준 안에는 성의 목적을 단순히 생식으로 여기  생식의 목적이 아닌 성관계를 무가치하게 취급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외에도 비현실적인 금욕 강조, 남성의 성욕에 대한 통념 강화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순결 이데올로기’를 부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고쳐나가야 한다. 올바른 성교육이 함께한다면 다음 세대에는 ‘순결’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더는 여성에게 ‘순결’과 ‘처녀성’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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