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덮은 차도르를 들추다
  • 공하은 기자
  • 승인 2018.04.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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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린 네샤트,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연작 中 '침묵의 저항'」, 1994, 116.84X78.74cm
쉬린 네샤트,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연작 中 '침묵의 저항'」, 1994, 116.84X78.74cm

은 천을 휘두른 채 정면을 응시하는 여성과 눈이 마주치니 괴로움으로 인한 지침이 느껴집니다. 얼굴을 가득 채운 문자들과 시선을 사로잡는 총기에선 굳건한 의지마저 느껴집니다. 쉬린 네샤트(1957~)의 프레임에는 주로 이슬람교도 전통의상 차도르와 총기, 피부를 가득 메운 문자가 피사체로 담깁니다. 사진 속 등장하는 총기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그가 사진에 담아내고자 했던 의지를 함께 살펴봅시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이란인으로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마주하는 이슈들 사이를 항해하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본령이다. 그리고 그 이슈는 나라는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쓰리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서 주인공 밀드레드는 강간살해사건으로 딸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여느 영화 속 여자주인공처럼 절망에 빠져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는다. 밀드레드는 경찰의 수사 미진을 탓하는 거대한 광고판을 설치하고, 화염병 투척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 속 밀드레드가 그랬듯 실제로 우리 사회에 화염병을 던진 여성이 있다. 이란 출신 예술가 쉬린 네샤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쉬린 네샤트는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란 여성을 위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하영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와 함께 쉬린 네샤트의 미술 세계를 탐구해보자. 
 
  누가 그들을 베일 속에 가뒀나
  쉬린 네샤트가 태어났던 1950년대 이란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수적인 이슬람국가가 아니었다. 동서양을 잇는 교통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과거 페르시아 제국에 뿌리를 둔 이란은 예부터 다양한 문물과 민족 문화를 자유롭게 받아들였다. 또한 이란은 정부의 석유 국유화를 통해 순조로운 경제 발전도 이룩해갔다.

  이러한 경제적 호황 속에서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 왕은 1963년에 이르러 이란의 근대화를 위한 ‘백색혁명’을 이끌었다. 백색혁명을 통해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 왕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더불어 문맹 퇴치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토지개혁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백색혁명 정부가 이끄는 이란은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개방적인 국가였다. 1970년대에는 거리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남성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이란 여성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혁명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었다. 팔레비 왕조는 혁명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비민주적으로 탄압했으며, 급격한 경제성장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또한 토지개혁으로 인해 정치적 재정적 기반이 약해진 성직자들의 불만도 커져갔다. 이에 1979년 종교지도자였던 아야톨라 루훌라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한 고위 성직자세력이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다. 이러한 이슬람 혁명은 국가의 운명을 뒤집는 엄청난 계기가 된다.

  이슬람 혁명 정권은 반(反)서구, 반(反)세속을 주장하며 순수 이슬람국가로 회귀했다. 호메이니는 서구의 모든 문물을 전면 거부하고 오직 이슬람 율법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혁명 후 이란 여성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써야 했고,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슬람 교리에 의해 제한됐다.
 
 “서구에서는 베일이 이슬람 여성의 억압을 상징하지만 이 이미지 속의 주체들은 강인하고 당당해 보인다.
실제로 검은 베일을 쓰면서 (...) 여성적인 몸은 전사의 몸, 결단의 몸, 심지어 영웅의 몸으로 변형되었다.”
 
  침묵으로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
  서구화에 의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이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네샤트는 이슬람 혁명이 일기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약 16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엄격한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이란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특히 혁명 후 억압 속에 갇힌 이란 여성들의 모습은 네샤트의 첫 작품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연작 탄생의 배경이 됐다.
쉬린 네샤트,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연작 中 '각성하는 충성'」, 1994, 흑백 RC 프린트에 잉크, 118.7X94.3cm
쉬린 네샤트,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연작 中 '각성하는 충성'」, 1994, 흑백 RC 프린트에 잉크, 118.7X94.3cm

  작품 속 여성들은 모두 검은 차도르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기다란 총구는 차도르를 쓴 얼굴을 통과하거나 두 손 혹은 발 사이를 가로지른다. 페르시아어로 쓰인 텍스트는 그들의 얼굴, 손, 발을 덮고 있다.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뿐만 아니라 네샤트의 많은 작품에서 ‘차도르’와 ‘텍스트’, ‘총기’는 꾸준히 핵심 모티프로 작용한다. 차도르를 입는 주체는 여성이었으나 그것을 입고 벗을 선택권은 오랜 기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20세기 초반 서구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지도층에 의해 벗겨졌던 이란 여성들의 차도르는 이슬람 혁명 이후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시 씌워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차도르는 전통과 억압뿐 아니라 저항의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주하영 교수는 네샤트의 작품에 나타나는 페르시아어 텍스트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여성 주체로서의 소명과 신념을 표명한 시인들의 글이에요. 이는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저항의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어요.”

  덧붙여 주하영 교수는 네샤트가 이슬람 문화와 이란 여성에 대한 서구 사회의 고정관념에 맞섰다고 평가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총구와 같은 무기는 이슬람 여성을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존재로 여기는 고정관념 속 약자들의 강한 목소리를 대변한 거죠.”

  금기의 빗장을 풀다
  네샤트는 사진 작품만이 아니라 영상 작품도 다수 제작했다. 그중 비디오작품 <격동(Turbulent)>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세계가 흑백처럼 대립하는 이란 사회의 젠더 문제를 다뤘다. <격동(Turbulent)>은 극장을 가득 메운 남성 관객 앞에서 전통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의 찬가를 부르는 남성 가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면 맞은편 스크린에서 검은 차도르를 두른 여성 가수가 등장해 텅 빈 객석을 향해 가사 없는 노래를 혼신을 다해 부른다.
「격동(Turbulent)」 中 일부, 1999
「격동(Turbulent)」 中 일부, 1999

  주하영 교수는 노래하는 남녀의 상반된 상황이 강한 울림으로 관객을 압도한다고 평했다. “영상 속 여성은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 노래해요. 이는 금기와 허용, 규율과 자율 사이에서 여성의 노래는 투쟁이자 해방의 상징이 되죠.” 이란에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노래하는 것이 매우 큰 금기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란 문학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네샤트는 이란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작가 샤누쉬 파시푸르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장편영화 <남자 없는 여자(Women without Men)>를 제작했다. 영화에는 서로 다른 아픔과 실패의 경험을 가진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격변의 역사 속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들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과 현실을 깨닫는다.
 
「남자 없는 여자(Women without Men) 中 일부」, 2009
「남자 없는 여자(Women without Men) 中 일부」, 2009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여성의 현존함’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전적으로 영감을 주죠.

이슬람혁명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순종적으로 표현됐다면,
이제 저희는 테헤란 거리에서 페미니즘의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았습니다.”
 
  네샤트는 이 작품을 통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주하영 교수는 네샤트에게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이 그를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랑하는 예술가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네샤트는 이 영화로 인해 이란의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어요. 금기된 사회현실을 재현했으며 진취적 여성을 그린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다는 게 이유였죠.”

  네샤트에게 이란은 모국임과 동시에 그에게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이슬람 안팎에서 이중적으로 차별받는 이란 여성들의 현실과 서구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참여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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