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팜므파탈도 처녀여야 했다
  • 하혜진 기자
  • 승인 2018.04.02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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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를 가뒀는가

정절에서 순결까지, 억압의 역사

만들어진 ‘처녀성’과 ‘순결 이데올로기’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에서 주인공은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남편을 향해 고백 하나를 토해낸다. 자신이 첫날밤에 피가 나오지 않을까 무서워 일부러 생리를 하는 날에 맞춰 일을 치렀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고백을 들은 남편은 분노하며 깨어나 주인공을 공격한다.

  주인공을 향한 남편의 분노와 폭력은 여성들이 ‘순결’이라는 억압 아래 얼마나 짓눌려 있어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성을 옥죄어온 ‘처녀성’ 개념은 어디에서 왔는지, 여성의 ‘순결’이 어떤 이유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추앙받게 됐는지 그 역사와 원인을 전문가들과 함께 알아봤다.

  절대적인 ‘순결’은 없었다

  김선주 교수(다빈치교양대학)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여성의 정절은 덕목이 아니었다. “삼국시대를 기록한 서책에는 ‘눈이 맞으면 바로 성관계를 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해요. 사회적으로 정절에 제약이 없었던 거죠.”

  고려시대에도 정절은 하나의 관념일 뿐 이를 강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없었다. 소현숙 연구교수(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오히려 남녀 간 성에 제약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엔 ‘남녀상열지사’라고 해서 젊은 남녀 간 사랑을 이야기한 노래도 유행했죠. 조선시대 이전엔 여성도 재혼할 수 있고 재산을 상속받는 등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거예요. 정절을 중시할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상황은 조선시대로 접어들며 달라졌다. 성리학 종법 질서가 도입되며 부계 혈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종법 질서란 큰아들에서 큰아들로 재산과 권리가 상속되는 질서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이런 종법 질서가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자식이 아닌 다른 자식에게 재산과 권리가 상속되지 않도록 차단한 거죠. 아내가 남편 외에 어떤 남자와도 성관계가 없어야 자신의 혈통에게 재산과 권리를 상속해 줄 수 있으니까요.”

  소현숙 연구교수는 이후 사회가 법과 제도로 여성에게 정절을 강제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여성의 재혼 금지였다. 당시 제정된 「재가녀자손금고법」은 재가한 여성의 자식들이 관직에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이 법으로 인해 이전까지 비교적 자유로웠던 여성의 재혼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여성의 재혼이나 성관계는 종법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본 거예요. 아내와 전남편 사이의 아이는 재혼한 남편의 혈통이 아니니까 재산과 권리를 물려 줄 수 없다는 거죠.”

  여성의 정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만들어졌다. 김선주 교수는 조선 시대 ‘내외법’은 여성이 함부로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말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해서 일곱 살이 넘으면 남자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바깥출입도 쉽게 하지 못했어요.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맞았죠.”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성은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 선조대 문인 차천로가 엮은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는 결혼 후 아내가 남자를 치러본 듯해 이혼소장을 올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반면 남성에게는 정절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김선주 교수는 남성에게는 오히려 성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보조 장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남성은 합법적으로 첩이나 기생을 둘 수 있었어요. 재혼도 당연시됐고요. 자신의 혈통을 이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순결=아름다움=처녀

  근대에 들어서며 신여성들은 전근대의 정절 관념에 대항해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소현숙 연구교수는 한국 최초 페미니스트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김일엽이 ‘신정조론’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정조란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유동하는 것, 즉 마음이라는 내용이에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정조는 윤리나 제도의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닌 개인의 취미와 같다고 주장해요. 성적 주체로서 여성의 성적 자율권을 주장한 거죠.”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오히려 여성의 성적 타락의 증거로 간주됐다는 게 소현숙 연구교수의 설명이다. “성적 타락에 대한 염려 속에서 여성의 성적 타락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남성의 성적 타락이 문제시됐죠. 그러면서 김활란 등 보수적 신여성들은 남녀 모두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런 주장은 새롭게 변화한 결혼관과 함께 ‘순결’개념을 만들었다. “근대에 일부일처제나 자유연애론이 들어오며 새로운 결혼관이 만들어져요. 그러면서 이상적인 결혼을 자유로운 남녀가 영혼의 합일에 이르렀을 때 가질 수 있는 ‘영육일치의 상태’라 봤죠. 정신적 합일을 이루기 전까지 동물적 본능인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게 된 거예요.” 이주라 연구교수(한림대 한림과학원)는 이 통제 장치로 남녀 모두에게 ‘순결’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에 우생학이 유입되며 ‘순결’은 또다시 여성에게만 중요한 신체적 문제가 됐다. 우생학은 생물학과 유전학을 바탕으로 인종의 개선을 도모하는 학문이다. “일본에서 우생학이 유입되며 한국에는 ‘비처녀 체액설’이란 이론이 퍼져요. 여성이 남성과 성교를 하면 상대의 체액이 몸속에 흡수돼 체질이 바뀐다는 이론이죠.” ‘순결’한 처녀의 신체만이 훌륭한 어머니가 된다는 낭설이 과학으로 여겨지며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조하게 됐다는 게 이주라 연구교수의 설명이다.

  소현숙 연구교수는 당시 근대 의학의 도입도 ‘순결’을 물질적으로 확인하는 ‘처녀성’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일본을 통해 ‘처녀막’이라는 명칭이 들어오게 되면서 처녀막의 유무를 처녀성의 기준으로 삼았어요. 이를 통해 ‘순결’을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신체적 문제로 귀결시킨 거죠.”

  이주라 연구교수는 이후 처녀는 아름다운 대상이자 근대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로지 ‘순결’하고 임신이 가능한 여성에게만 한정됐어요. 강간 피해자나 노처녀는 그 자체로 가치 없는 여성으로 전락했죠. 오로지 봉사활동 등의 사회적 헌신을 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또한 ‘순결’의 책임은 모두 여성의 몫이었다. 이주라 연구교수는 당시 여성은 ‘순결’을 스스로 지키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근대의 ‘순결 이데올로기’는 ‘현명한 여성은 남성을 설득해 스스로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를 통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고 사회의 도덕을 확립시킬 수 있다는 논리였죠.”

  당시 대중문화는 이런 인식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는 게 이주라 연구교수의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현진건의『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타나는 노처녀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추악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한국 근대 탐정소설의 대표작 『마인』에는 팜므파탈로 설정된 여주인공 주은몽이 나와요.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저는 아직 처녀…’에요. 한국에서는 팜므파탈도‘처녀성’을 유지해야 했던 거죠.”

  지워지지 않은‘깨끗함’의 찌꺼기

  이후에도 ‘순결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한국을 지배했다. 1950년대에는 성폭력을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여성의 존엄이나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여성의 ‘순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현숙 연구교수는 1950년대에 기독교가 확산되며 금욕주의 등을 바탕으로 ‘순결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화됐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도 첫날밤을 치른 후 아내가 처녀가 아닌 걸 알고 다음날 바로 이혼해 달라고 하는 남편도 종종 있었어요. 그 때까지도 여성의 ‘순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거죠.”

  이주라 연구교수는 21세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한국사회에서 ‘처녀성’에 대한 강박은 심했다고 말했다. “정이현의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는 자신의 ‘처녀성’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이루려는 주인공이 나와요. 21세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처녀인 것이 성공적 결혼을 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었던 거죠.”

  그러나 ‘처녀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주라 연구교수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 여성의 행실을 문제 삼는 게 그 예시라고 봤다. “ 순결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성은 개인의 몸 관리와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해요. 이렇게 이중으로 여성을 억압한 근대의 논리가 현재까지도 내려온 거죠.”

  이라영 연구자는 산부인과를 가는 여성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순결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봤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몸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임신이나 출산과 무관하게 산부인과에 간다면 다른 의혹을 가지죠. 여성은 생식을 위한 성관계를 해야 할 뿐 쾌락을 위한 성관계는 순수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이주라 연구교수는 ‘순결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일상의 배후에서 여성의 성을 통제한다고 비판했다. “현 사회는 ‘처녀성’을 간직하라고 표면적으로 강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직도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순결 이데올로기’는 만연하죠.”

  그러나 이런 순수성 강요는 남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라영 연구자는 남성에게 ‘순결’은 오히려 ‘능력이 없다’는 표식이 된다고 설명했다. “남성에게는 ‘순결’이 아니라 성관계 능력을 강조하죠. 이 능력이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남성에게 성관계를 금지하지 않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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