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much information(TMI)’을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한 중년이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숙제라며 심리상태분석 설문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분석 결과가 특이 케이스라며 무료로 상담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다시 왔습니다. 아무 의심 없이 학교 근처에서 약속을 잡았고 자신을 어느 대학 상담사라 소개한 그분은 제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많이 힘들죠? 동그라미를 그린 위치를 보니까 가족 간에도 고민이 있어 보여요.” 기자가 그린 찌그러진 동그라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마치 상담사가 기자의 마음을 들여다봤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는 말처럼 사소한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상담사의 모습에 라포가 형성됐죠. ‘맞아요, 정말 그래요’ 맞장구를 쳐가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기자의 TMI를 처음 보는 상담사에게 잔뜩 털어놓았습니다. 말하면서 살짝 눈물이 고였던 기억도 나네요. 하지만 상담이 끝날 때쯤 상담사분은 자신도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을 했을 때 도움을 받은 곳이 있다며 한 이단 종교를 소개해 줬습니다. ‘아차’ 싶었던 기자는 다음에 연락드리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죠.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한 사람에게 속았던 경험은 꽤 충격적이었지만 오히려 기분이 후련한 면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털어놓는 이야기가 상대방에겐 부담이 될까 봐 항상 입을 굳게 다물어 왔었거든요.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터놓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있어 생각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곱씹게 된 기자가 TMI란 신조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더 중요한, 더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유능함의 척도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이해 타산적인 생산성만을 우선시 하다 보면 타인의 아픔은 불필요한 정보가 됩니다. 약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사회에선 인권과 평등이 자리 잡기 힘들어지죠.

  이번 ‘우울증 기획’을 취재하며 깨달은 사실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우울증에 틀이 씌워진 원인도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죠. 타인의 우울증 증상을 불필요한 정보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우울증 환자들의 입을 막았고 잘못된 소문을 양산했습니다. 우리가 좀 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 갖는다면 우울증을 향한 프레임이 생기는 것도, 그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병들어버리는 것도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고민은 없니. 바쁜 생활 속에서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불필요한 정보는 없습니다. 특히 자신의 고통이나 아픔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경청해주세요. 하나같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터놓다 보면 우리 사회 속에서 누군가를 억압하는 틀들이 사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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