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忍)을 인(仁)으로 보는 사회

우울증은 미친 게 아니에요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논문 「슬픔과 우울증」에서 우울증을 자아가 빈곤해지는 병이라 칭한다. 정신분석으로 처음 우울증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그 자신도 우울증을 겪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고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색안경을 낀 채로 우울증 환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2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를 경험하지만 이 중 교수에게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이토록 우울증을 쉽게 치료받지 못하도록 했는지 알아봤다.

  참는 건 미덕이 아니다

  한상익 명예교수(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는 우울한 정서를 표현하지 않으려는 한국 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우울증을 감추게 한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는 자신의 우울감이나 아픔을 표현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겨요. 하지만 한국의 유교 문화에서 참는 걸 미덕으로 배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울한 정서나 아픔을 표현하지 않죠.”

  또한 한상익 명예교수는 문화에 따른 우울증 증상 자체의 차이도 우울증 치료를 지연시킨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우울증은 우울감이란 심리적인 증상보다는 ‘화병’이라는 신체적 통증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정서 표현을 통해 우울함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보다는 신장내과, 위장내과 등 다른 병원을 찾아가죠.” 자신의 증상이 정신질환에 따른 신체적 질병임을 알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다 치료받을 타이밍을 놓친다는 설명이다.

  정신병에 적개심을 투사하는 문화로 인해 우울증 증상을 참아내려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제각기 내부의 적개심을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게 투사해요. 우리 문화에는 정신병 환자를 약자로 보고 적개심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았죠. 소위 ‘미친년’에게 돌을 던지던 문화처럼 말이에요.” 박용천 교수(한양대 정신건강의학교실)는 이런 문화를 학습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린 경우 자신에게 쏟아질 적개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울증을 더욱 숨긴다고 덧붙였다.

  편견에 둘러싸인 사람들

  우울증을 부정적으로 여겨온 문화는 우울증 증상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양산했다. 우울증이 옮는다거나 우울증 환자가 주변 사람을 해친다는 생각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편견은 대부분 옳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환자들은 주변의 잘못된 시선 때문에 우울증을 쉽게 밝히지 못한다.

  많은 환자들이 우울증에 관해 털어놓으면 상대도 우울해질까봐 미안해서 증상을 숨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서로가 힘들 수는 있죠. 하지만 그건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예요.” 석정호 교수(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는 우울증이 전염된다는 인식이 우울증을 드러내는데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환자들이 주변을 해친다는 인식은 우울증 환자 내부의 적개심을 잘못 판단한 오해라는 게 박용천 교수의 설명이다. “적개심이 밖을 향하면 ‘화’가 되고 적개심이 자기 내부를 향하면 ‘우울증’이 돼요. 화가 외부에 있는 남을 해친다면 우울증은 내부의 나를 해치게 되는 거죠.” 스스로를 옭아매는 우울증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오해 속에서 이중으로 고통 받는다.

  우울증 환자 스스로도 편견에 싸여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꺼린다. 우울증 치료약이 독하고 중독성이 강하다고 오해하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 약으로 마음을 어떻게 고치냐 하는 사람도 있죠.” 한상익 명예교수는 항우울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아직 사람들은 몸에 상처를 입거나 수술이 필요한 병에 걸려야만 질병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조현병이나 치매 같은 수준만 질병으로 여기는 거죠.” 석정호 교수는 증상이 덜 심각해 보인단 시선으로 우울증을 대하기 때문에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을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나약한 의지에 원인이 있다는 편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마음이 나약해서 우울증이 생긴다는 편견은 선진국일수록 우울증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진단 사실을 왜곡한 결과이기도 하다. 석정호 교수는 우울증은 사회의 발전 수준과 상관없이 발생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에 따라 인식이 변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으면 우울증의 해결방법을 미신적 행위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요.” 의료서비스 수준이 낮은 한국은 우울증의 해결방안을 비전문적인 분야에서 찾게 한다.

  정신병에 돌을 던지는 사회

  우울증은 국제질병분류에 따라 ‘F코드’에 해당된다. F코드는 ‘정신과질환’을 의미하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정신병원에서 우울증을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정신병 자체가 갖는 오래된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용천 교수는 한국에서 정신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의료 행동에 대한 문화 변동이 느리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문화 변동이란 한 사회의 문화가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현상이다. “해외에서는 정신병 치료를 받는 의료 행동이 자연스러운 문화인데 한국에선 아직 그런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어요. 정신병원을 짓는 것 자체에도 강한 거부 반응이 일죠.”

  한상익 명예교수는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져야 우울증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거라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우울증이 있어도 정신병원을 찾지 않죠. 정신병 환자를 ‘또라이’라 부르며 배척하니까요. 우울증은 조현병 처럼 심각한 정신질환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아요. 하지만 자살로 이어질 위험성이 상당히 높아 더욱 문제이죠.”

  사회 제도에도 환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인식이 담겨있다. “F코드 질환을 진단받으면 환자들은 증상의 중증도 등을 고려 받지 못하고 실손보험 가입을 거부당해요.” 박용천 교수는 사회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주는 불이익을 개선해 정신질환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심사하도록 보험사 내규에 명시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를 받을 경우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사회의 비뚤어진 틀 속에서 우울증 환자는 오늘도 고통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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