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10대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지도 어느새 1년. 과잠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캠퍼스를 누비는 새내기를 보면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화장은 짙어졌고, 때때로 술로 지새우는 밤도 생겼다. 그러나 변한 것은 겉모습뿐이었을까. 이젠 적응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여전히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듯하다.

  ‘최고’를 꿈꿔왔던 나에게 스무 살은 ‘보통’의 삶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수많은 ‘해야 할 것’과 ‘남들이 다 하는 것’ 사이에 ‘하고 싶은 것’을 끼워 넣을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최선의 노력을 바쳐도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며, 나에겐 간절한 도전이 누군가에겐 놓치면 그만인 기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얕아져가던 내 자존감에 난도질을 해댔다.

  인간관계 또한 복잡했다. 같은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적당히 대화에 참여할 줄만 알면 충분하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랐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자꾸만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열지 않으니 겉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늦은 밤, 여느 때처럼 피곤에 절은 눈을 끔뻑이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중 문득 문화부에 몸담으며 써왔던 기사를 하나씩 읽어봤다.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보테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윌리엄 켄트리지까지.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그림을 그렸던 현대미술 거장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은 모두 ‘주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화가들이 보통 따랐던 유럽 미술의 기조를 따르는 대신 거장들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의 신념,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화. 그들은 그것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 참 당연하고 쉬운 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스스로 채찍질하기를 요구하는 현실에 적용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남들을 의식해가며 아등바등 쫓아간 삶의 끝이 겨우 상처투성이의 ‘보통’이라면, 더군다나 그조차도 될 수 없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해답은 항상 내 안에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 첫 방황의 종착점은 나 자신이었다. ‘남들이 다 하는 것들’ 대신에 정말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하고 싶은 것’을 앞에 두기로 했다. 실타래 같은 관계의 늪에서 벗어나 정말 소중한 사람들만을 소중하게 지키기로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은 고민, 더 많은 시련을 겪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라는 기본적인 사실만 잊지 말기로, 내일의 나와 약속해본다.

공하은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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