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알게 모르게 압박으로 다가오는 ‘꿈 패러다임’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 패러다임의 모습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할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지니며 경제적인 여유도 보장되는 직업을 꿈으로써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가슴 뛰는 열정을 보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조건도 덧붙는다.

  패러다임에 갇힌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건들을 충족하는 직업 하나쯤을 꿈으로 설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슴 뛸만한 일을 찾는 것부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버텨내는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불가능하고 직장 내 경쟁과 힘든 업무로 대표되는 현실 경험담을 접하면서 고뇌가 짙어진 듯하다. 단순 방황인지 아니면 사회에 대한 반항인지 모를 그 언저리에서 꿈 패러다임에 차츰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제1913호 ‘앙잘앙잘’ 코너에서 ‘노멀크러시’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기획했다. 노멀크러시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20대가 보통의 존재로 눈을 돌리게 된 현상’을 말한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 기준에서 벗어나 나답게 ‘아무나’로 살며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위 대학생에게 노멀크러시를 느껴본 적 있는지 의견을 물으며 기획을 준비했다. 노멀크러시를 꿈꾸는 대학생은 생각보다 많고 다양했다. 저녁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몰두하고 싶지 않다거나 패배가 두려워 더 이상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 혹은 경쟁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렵잖게 보였다. 휘황찬란한 직업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겠다고 말하는 등 많은 청춘이 나와 엇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모두 특별히 가슴 뛰는 일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성공’이라고 불리는 것들과도 간극이 있었다. 꿈 패러다임에서 말하는 꿈에 비하면 밋밋해 보일지 모르는 바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정도면 괜찮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다’며 편안하게 말했다.

  꿈 패러다임을 다시금 되짚어볼 때가 왔다. 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과 그 자리에서 버텨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누군가에겐 충분히 버거운 일일 수 있다. 남들이 만들어낸 꿈 패러다임에 의해 꿈을 맞춰가고 있었다면 ‘이제 그 허상 된 꿈에서 서서히 벗어나도 된다’, ‘가지고 있기 버거운 꿈이라면 버려내도 된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한 번뿐인 청춘 아니냐’며 치열하지 않은 청춘을 향한 안타까운 시선은 거둬야 한다. 성공한 인생이란 언제나 치열한 삶을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 청춘의 꿈이 청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거창한 무언가로 치환될 이유도 없다.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인생만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에 ‘맘 편히’ 힘쓰는 것도 훌륭한 최선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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