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열댓 살은 젊은 게 어디서 여기 앉아있냐” 9호선 지하철에서 두 사람이 말싸움을 하고 있다. 어느 몰상식한 청년이 노약자석을 가로챈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누가 봐도 공경해야 할 두 노인뿐이었다. 팔십이 넘는 노인께서 육십인 노인에게 자리를 비키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나의 귀에 박힌 건 환갑의 노인이 ‘젊은’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해 1월 1일에 다 같이 한 살을 먹는다. 우리는 ‘~년생’으로 구분되고, ‘~할 나이’라는 말로 서로의 역할을 나눈다. 그래서일까. ‘환갑의 나이’의 노인에게 ‘젊은’이라는 말은 뭔가 어색했다.

  나이 문화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나와 주변 지인은 나이에 맞은 사회흐름을 따라가기 바빴다. 홀로 설 나이, 군대 갈 나이, 인턴 할 나이… 나이에 정해진 삶을 살기 위해선 공백기는 사치였다. 결국, 남들 따라 쉴 틈 없이 나이를 채워온 나에게 남은 건 ‘사회로 나갈 준비하는 나이’라는 점이 스스로를 안타깝게 했다. 

  얼마 전 정치 팬덤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정치학 전공 교수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교수님은 예시를 들면서 말해주셨다. “BTS처럼 정치 쪽 팬덤도 같은 현상이에요” 순간 직감했다. 내가 아는 BTS가 아닌, 이 분야에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전문용어의 약자임이 틀림없음을 말이다. 내가 아는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은 그래야만 했다.

  ‘역시 교수님!’ 차오르는 존경심과 함께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내 기사의 질을 한층 끌어 올리겠다는 기대를 안고 다시 질문했다. “BTS가 어떤 약자죠?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요?” 하지만 기대는 순식간에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왜 있잖아 방탄소년단이라고 아이돌인데 게네 팬덤이 아주 강해”

  김광석, 이문세 외의 가수는 입에 담으시지 않을 것 같은 교수님이 방탄소년단을 예시로 답변하실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산이었다. 단지 나이에 대한 편견이었다. 이번 일은 그동안 나이에 맞는 행동을 구분 짓던 나를 반성케 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나이에 맞춰 살아가려고 한다. 나이에 따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이 말이다. 군대 갈 나이가 되면 한숨으로 하루를 보내고, 고학년이 되면 남들 다하는 스펙 쌓기에 발동을 굴린다. 취업할 나이라고 무작정 ‘묻지마 입사’를 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행복보다 초조함이 느껴진다. 반대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늦깎이 입학생들은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이미 늦은 거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은 걸까?

  아니라고 본다. 나이에 맞게 남들 따라가려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초조함의 원인이다. 남들보다는 늦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성취한 게 그들이 당당한 이유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무작정 남들을 뒤쫓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멈춰 숨을 돌려보자. 남들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 위에 내가 못 본 지름길이 보이진 않을까?

  청춘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나는 남들이 가는 길에서 나와 오늘도 당당하게 신문사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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