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을 표방한 자들의 아이러니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8.03.12 0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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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민낯 파헤치기

피해자 두 번 울리는
권력형 성폭력

침묵이 낳고 
은폐가 키운 괴물

대학은 10대부터 60대 혹은 그 이상의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거대 집단이다. 대학에 모인 다양한 세대는 인격을 함양하고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정의와 평등을 논한다. 하지만 최근 원대한 목적을 지닌 지성의 전당에서 성폭력 사건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기초적인 역할을 하는 대학가에 부도덕한 모습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원인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 봤다.

  권력은 주어지고 만들어진다

  성폭력은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등을 수단으로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노정민 주임은 대학가 성폭력의 대부분이 위계, 위력과 같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성폭력은 물리적인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상대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권력 구조 속에서 상대적인 약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교수의 지위 권력이 학부생, 대학원생의 진로 및 학업 등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대학 사회에서 학생은 권력의 상대적 약자로 존재한다.

  학생 간, 교수 간처럼 같은 지위에서도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권력 구조가 형성된다. 나윤경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성범죄 사건이 공론화되면 남성 중심사회를 기반으로 한 남성 친화적인 분위기가 가해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는 남성을 옹호하는 문화가 존재해요. 남성이 가해자일 때 사람들은 피해 여성을 ‘꽃뱀’이라 부르며 남성 가해자를 옹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요. 반면 남성이 피해자일 때는 피해자를 향한 동정론이 힘을 얻죠. 이런 남성 중심의 권력 문화가 가부장적 사회의 특징이에요.” 남성은 가해나 피해 여부에 상관없이 옹호 받을 힘을 가진다.

  특정 성별만을 대상으로 하는 불평등한 옹호는 권력을 갖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2차 가해로 이어진다. 나윤경 교수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후 남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억압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진술의 사실 여부를 의심 받기도 해요.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 구조 문제가 아닌 거죠. 2차 가해는 두 사람의 권력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남성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권력 차를 크게 만드는 문화에 대한 대학 사회의 성찰이 부재하죠.”

  모두가 만든 악행

  노정민 주임은 성폭력과 관련한 대학 문화의 문제로 집단 방관을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희롱을 허용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누군가 성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저지했다면 피해는 줄어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희롱을 방관하고 묵인했기 때문에 성희롱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죠.” 일상 속의 성폭력을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며 넘어간 제3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폭력이 용인될 수 없다는 확고한 생각과 태도가 대학가에 미비했기 때문이다.

  대학 사회는 또래문화를 중요시한다. 이에 따라 구성원들은 밀접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환경은 성희롱에 제재를 가하는 분위기 형성을 어렵게 한다. 나윤경 교수는 성애화 된 대학가의 또래 문화도 지적했다. “대학가에서 ‘왕게임’이나 ‘러브샷’ 같은 문화가 활발하게 소비되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시예요.”

  대학이 빚은 참극

  “대학은 성폭력이 접수되면 발생 존재만으로 학교 명성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요. 대학 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죠.” 나윤경 교수는 성범죄가 학교 평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대학이 공론화를 꺼리며 사건을 축소·음폐한다고 지적했다. 대학 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 역시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나윤경 교수는 대학교 인권센터 운영 방식에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전문가 대부분이 비정규직 직원이에요. 재임용 여부가 학교에 달린 상황에서 전문가는 성폭력 사건을 표면화하는 데에 부담을 느끼죠.” 직업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은 인권센터가 대학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박찬성 변호사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대학가 분위기는 가해자의 악의적 행동을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는 개인이 가진 비뚤어진 욕망을 그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투사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싹트게 해요. 성폭력은 개방적, 공개적 그리고 수평적인 분위기와 친하지 않아요. 대학가의 폐쇄성, 수직적 위계 구조야말로 성폭력 발생에 있어 온상과도 같은 환경을 제공하죠.” 지금까지의 대학 사회가 성폭력이 발생하는 데 적절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문화적 관습도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사건 경위를 말하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명시키게 만드는 구조에요. 자신의 말을 계속 의심받으면서 피해자는 ‘내가 행실을 잘못했구나’라며 자신을 검열하게 되죠.” 나윤경 교수는 대학 내에 피해자가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학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한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사건을 은폐시킨다는 것이다.

  박찬성 변호사는 대학 내 모든 유형의 성폭력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 사회의 낮은 인권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지위가 높고 낮고를 떠나서 모든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해야 해요. 타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의식이 대학사회에 자리 잡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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