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지난해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각 세대에 ‘여러분은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그렇다’ 고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은 세대는 20대였죠. 이러한 결과는 요즘 20대가 남들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노멀크러시 성향이 강하단 걸 보여줍니다. 이번주 앙잘앙잘의 주제는 ‘Normal Crush(노멀크러시)’인데요. 노멀크러시는 Normal(보통의)과 Crush(반하다)의 합성어로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20대가 보통의 존재 로 눈을 돌리게 된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대학생들은 왜 노멀크러시에 열광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노멀크러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무한 경쟁에 지친 청춘들

평범한 일상에 열광하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지난해 인기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에 출연한 가수 이효리씨가 길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한 말입니다. 방송 이후 이 말은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란 청춘에게 “아무나 돼!” 한마디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거죠. 이 말은 평범함을 추구하는 ‘노멀크러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과 성공신화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아무나’로 사는 삶, 노멀크러시에 열광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수용 학생(상명대 경영학부), 왕준혁 학생(광고홍보학과 2), 정지윤 학생(사회복지학부 3)과 함께 노멀크러시에 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Anybody But Me

  사회자: 요즘 화려한 성공보다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노멀크러시가 유행입니다. 여러분은 노멀 크러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수용: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요즘 트렌드에는 노멀 크러시가 많이 녹아있는 것 같아요.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는 거죠.

  지윤: 저도 노멀크러시 열풍을 체감하고 있어요. 사회는 일등만을 강요하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죠. 그 속에서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찾고 개성을 추구하는 게 노멀크러시라 생각해요.

  준혁: 성공의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노멀크러시는 다양한 성공의 길을 찾는 긍정적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노멀크러시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비교적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부나 명예보다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중시하죠. 각자 자신의 길을 개척하면 경쟁이 줄고 삶의 질도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사회자: 여러분도 경쟁적이고 화려한 삶보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지윤: 어릴 때부터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잖아요. 자기계발서의 경우도 마찬 가지예요. 성공한 삶의 틀을 정해주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 속 우리는 성공 신화 속 주인공과 환경도, 성격도 다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까 하는 회의감이 들곤 하죠. 그럴 때 저는 저답게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수용: 저는 인간관계에 지쳐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화려한 인맥이나 사교적인 성격 같은 ‘성공한 인간관계’의 틀이 너무 답답했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가끔 제가 꼬치 사이에 껴있는 듯 답답한 느낌을 받죠. 그럴 땐 화려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집에 가서 낮잠을 자고 싶어지더라고요. 오히려 소박하더라도 확실한 행복을 주는 노멀크러시가 좋아요. 남들보다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진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니까요.

  준혁: 저는 제가 노멀크러시를 추구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부나 명예를 좇는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또 평범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인 것 같아요.

  사회자: 그럼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요?

  준혁: 간단하게 말하자면 꿈이 있고 그걸 이루는 삶이에요. 제 꿈은 세계 일주를 하면서 각 나라 문화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거예요. 이 말을 딱 들으면 평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노멀크러시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사회자: 노멀크러시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데서 출발하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준혁: 맑은 날 평일 오전, 동네 산책을 할 때 행복해요.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평일 오전엔 늘 학교에 갇혀 있었잖아요.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오전에 동네를 산책하는데 기분이 새롭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산책을 자주 즐기고 있어요.

  지윤: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건 강하게 만들죠. 저는 학교 일과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휴대폰을 하면서 귀가할 때 행복해요. 도착 이후 해 방감을 느끼고 개인 공간에서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요.

  수용: 매달 받아보는 패션 잡지를 읽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껴요. 제가 읽는 잡지에는 기사, 사진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노래 목록이 적혀있어요. 목록에 적힌 노래와 함께 잡지를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사회자: 노멀크러시 열풍은 콘텐츠에서도 이어지고 있어요. ‘효리네 민박’이나 ‘청춘시대’처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담은 TV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많은 공감과 인기를 끌었죠.

  지윤: 저는 ‘청춘시대’를 즐겨봤어요. 대학생들의 현실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다뤄서인지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유명인의 실제 일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도 공감돼요. 화려한 스펙과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 우리와 비슷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수용: 저는 ‘효리네 민박’을 되게 좋아해요.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잖아요. 실제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는 게 그렇게 재밌을 줄 몰랐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정도 연예인이니까 저렇게 살지’하는 생각도 들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과 차이가 드러나서 오히려 괴리감이 느껴지죠.

  준혁: 저는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활동적인 여가생활을 즐기는 편이라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딱히 몰입되지 않고요.

  숨 막히는 사회, 여전한 시선

  사회자: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콘텐츠까지 다방면에서 노멀크러시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젊은 세대가 노멀크러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수용: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돈을 갖고, 높은 위치에 서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죠. 기회주의적으로 변하기도 하고요. 이런 사회에 살다 보니 다들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지윤: 맞아요.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서 노멀크러시라는 말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취업이든 입시든 문이 좁아지고 있잖아요.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이 넘쳐나죠. 끊임없는 경쟁에 지친 젊은 세대가 노멀크러시에 열광한다고 생각해요.

  준혁: 저는 오히려 늘어난 기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엔 ‘성공으로 진출하는 길’로 여겨졌던 교육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존중받고 있어요. 즉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력만 한다면 ‘성공의 길’을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 진거죠.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길만을 걷다 보면 자신에게 무의미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가치 있는 길을 걷고 싶은 젊은 세대들이 노멀크러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젊은 세대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요.

  지윤: 그럼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노멀크러시가 유행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죠. 노량진이나 신림동 같은 고시촌만 봐도 많은 사람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수용: 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각자 가지고 있는 목표가 다르더라도 경쟁을 피하긴 힘들 것 같아요.

  준혁: 욕심이 있는 인간은 누구나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필연적으로 경쟁을 하죠. 부와 명예는 시대와 무관하게 매력적인 가치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세대도 성공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죠.

  사회자: 그래서인지 경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노멀크러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해요.

  수용: 맞아요. 누군가 노멀크러시를 과감히 실행했을 때 그걸 바라보는 주위 시선이 무조건 관대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다들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나 어디 한달 동안 놀러 갈 거야’라든지 ‘이번학기 휴학하고 하고 싶은 거 배울 거야’라고 말하면 그 사회의 ‘오류’로 치부하곤 하죠.

지윤: ‘쟤는 왜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 같아요. 또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 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준혁: 돈이나 명예를 좇는 삶을 산다면 비교적 확실한 결과물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데 노멀크러시는 내세울 수 있는 게 주관적인 행복뿐이잖아요.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고 추상적인 것이죠. 이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저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 건지 긴가민가할 것 같아요. 막상 나 자신은 행복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 모두가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틀에 갇히지 않으려면

  사회자: 아직 노멀크러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하고 있네요. 지금까지 평범한 삶을 추구 하는 노멀크러시를 이야기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평범함’은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요?

  지윤: 노멀크러시에서 말하는 평범함은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강조하죠. 하지만 일정 수준의 경제적인 면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용: 맞아요. 가끔은 ‘평범하다’고 말하는 경제 수준이 사실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서 “나중에 최소한 30평 이상 아파트에 중형차를 살 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꾸짖으신 적이 있었죠. 그 당시엔 웃어넘겼지만 돌이켜보니 결코 평범한 기준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엔 집과 차를 살 만큼 ‘적당히’ 돈을 버는 것도 정말 힘들잖아요.

  준혁: ‘평범한 것은 이렇다’고 단정 지어 말하는 사람은 오만한 것 같아요. A에겐 평범할 수 있는 잣대가 B에겐 박탈감을 초래하는 기준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평범함의 기준을 외부에 두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평범하다는 기준을 남에게 함부로 들이밀지도 말아야 하죠.

  사회자: 그렇다면 어떤 ‘평범함’을 추구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수용: 평범함을 논할 때 경제적 지위나 학벌 제한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수업 시간 한 시간 전에 일찍 나가서 맛있는 걸 먹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행복을 느끼거든요.

  지윤: 제가 평범함의 기준을 판단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기준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 생활을 하는 저의 평범한 일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준혁: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추구하는게 가장 중요하죠. 평범함과 관계없이요. 화려한 성공을 좇는 삶이든 노멀크러시처럼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남들이 기준 짓는 평범함에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 같네요. 결국 어떤 삶이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하죠.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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