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된 정치인, 팬이 된 지지자
  • 하혜진 기자
  • 승인 2018.03.05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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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최애되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 당시 미국 교민들은 위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그를 맞이했습니다. ‘OO 하고 싶은 거 다 해’란 문구에는 상대가 무슨 행동을 얼마만큼 하든 지지한다는 다짐이 담겨있죠. 주로 팬덤 문화에서 사용하는 문구가 정치인을 대상으로 사용됐는데요. 정치인의 ‘팬’이 된다는 새로운 지지 방식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거 있는 비판과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 정치 분야에 '정치 팬덤'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주 기획부에서는 오늘날의 정치 팬덤이 자리하게 된 흐름과 원인,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아봤습니다.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 ‘fan’과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다. 흔히 아이돌을 추종하는 집단을 일컫는 팬덤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보낸다고 여겨진다. 최근에는 팬덤의 범위가 확장돼 아이돌뿐만 아니라 배우, 소설가 그리고 정치인에게도 팬덤이 있다. 비판적 지지가 미덕이 되는 정치인 지지자는 어떻게 ‘정치 팬덤’이란 칭호를 얻게 됐을까? 정치인을 향한 지지가 맹목적인 사랑으로 이어진 흐름을 알아봤다.

  지지자에서 팬덤이 되기까지

  “민주화 이전에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활동이 두드러지진 않았어요. 민주화 운동처럼 정치 이념에 기반을 둔 활동이 더 활발했죠.” 이택광 교수(경희대 글로벌커뮤니 케이션학부)는 군부정권 시절엔 국민들이 정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군부정권이 끝나고 대의민주주의가 정치 시스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따라 정치인이 국민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후 자연스럽게 정치인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익집단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안호림 교수(인천대 기초교육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지한 ‘민주산악회’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연합청년동지회’ 모임이 그 예시라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시민의 자발적 모임이 아닌 정당이 관여한 조직이란 점에서 팬덤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지자들이 정당의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모임은 90년대 말부터 등장했다. 안호림 교수는 이회창 전 국회위원 팬클럽 ‘이회창을 사랑하는 모임(창사랑)’과 노무현 전 대통령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 현 정치 팬덤의 원형이라고 말했다. 1998년 출범한 창사랑과 2000년 출범한 노사모 모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초기 정치 팬덤은 형성 계기나 활동 목표에 있어 최근의 정치 팬덤과 차이를 보인다.  “노사모가 지지자를 끌어들인 가장 큰 요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징하는 정치 이상이었어요.” 안호림 교수는 초기 정치 팬덤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모인 만큼 팬덤 활동에 있어 뚜렷한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정치 팬덤은 팬덤이 형성되는 데 있어 정치적 요인 못지않게 정치인 개인의 매력이 큰 요소로 작용한다. 한 정치 팬덤에서 활동 중인 ‘뭐랄까’씨(활동명, 35) 는 지지하는 정치인의 존재 자체나 사소한 행동도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제가 받는 정치적 이익이 있기 때문에 지지해요. 하지만 제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면모가 저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는 이유도 있어요.”

  정치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팬덤을 형성하는데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팬덤 활동의 정치적인 성격 역시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아예 없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문팬’ 운영진은 팬덤의 주요 활동으로 봉 사활동이나 바른 역사관 알리기 운동 등을 꼽았다. “‘사람이 먼저다’란 문재인 대통령의 가치 철학을 실현시키기 위한 활동이에요.”

  정치인과 연예인 사이

  ‘굿즈’란 특정 인물을 주제로 제작된 상품을 일컫는데 주로 연예인 팬덤에서 제작·판매된다. 그러나 최근 정치 팬덤에서도 굿즈가 제작·판매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원가 4만원의 문재인 대통령 친필사인이 새겨진 시계가 중고거래사이트에서 77만원에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굿즈에는 ‘이니굿즈’라는 애칭이 붙었다. 달력에서부터 컬러링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이니굿즈란 이름을 달고 거래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또 다른 팬카페 ‘젠틀재인’에는 이니굿즈를 자랑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정치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도 색다르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생일에는 광화문, 종로3가 등 10개 지하철 역사에 문재인 팬덤이 기획한 생일 축하 광고가 약 2달 간 게재됐다. 뉴욕 타임스퀘어에도 문재인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는 옥외 광고가 걸렸다. 이런 현상 모두 연예인 팬덤 문화와 비슷한 양상이다.

  정치 팬덤이 활성화되고 영향력이 커지 면서 정치인 또한 팬덤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조국현 교수정치인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SNS 계정을 만들어 소통에 나서는 모습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치 팬덤은 정치인과 지지자 간의 교감에서 비롯돼요. SNS나 개인 미디어를 이용한 소통이 중요해진 거죠.”

  특히 지난 19대 대선은 후보들의 정치 팬덤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이 두드러진 경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 쇼핑몰 ‘문재인 1번가’사이트를 개설해 소통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심상정 국회의원 (정의당)은 스스로 심상정 지지 팬카페 ‘심크러쉬’를 창단해 정치 팬덤의 확장을 유도했다. 이재명 전 성남시장 또한 이재명 지지 팬 카페 ‘손가락 혁명군’ 출정식에 직접 참석해 팬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과한 팬심이 낳은 부작용

  그러나 정치 팬덤의 지지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안호림 교수는 정치 팬덤 활동가의 일부는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부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헌 관련 전략 보고서가 편향됐다는 소신을 밝혔다가 3000여 통의 ‘문자폭탄’을 받았다. 계속되는 문자 알람에 결국 그는 새 휴대전화를 마련했다.

  문재인 팬덤을 향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비판적 발언에도 인신 공격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이견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안희정 지사의 발언에 그를 ‘적폐세력’, ‘친일매국노’라 일컫는 사람도 있었다. 정치인을 향한 지지가 이견에 대한 배척과 억압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 팬덤의 배타적인 태도는 실질적인 폭력 행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촛불 집회’ 당시 인터넷에는 박근혜 지지 팬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반대 세력에게 폭행을 가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지난 1일에 기독교와 보수 진영 7개 단체가 진행한 집회에서도 참가자 2명과 의무 경찰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지지자들이 팬덤에 몰입하는 정도가 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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