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낳은 훌리건

SNS가 키운 정치 팬덤

그의 생일을 축하하러 서울에서 번개 모임을 하기로 했다. 어제는 지하철 광고판에 그를 위한 생일 축하 광고를 게시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했다. 팬카페 회원들과 만난 이후 집으로 돌아와 그가 해외에서 한 활동을 스크랩해 블로그에 올렸다. 자기 전엔 SNS를 통해 그가 쓴 글을 공유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흡사 유명 연예인 팬의 일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연예인이 아닌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팬이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좋아한다니 색다른 풍경이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좋아하는 최근의 ‘정치 팬덤’ 현상은 사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정치 팬덤은 어떻게 생겼을까?

  누구나 훌리건이 될 수 있다

  한국 정치에 정치 팬덤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성호 교수(경희대 철학과)는 정치 팬덤의 등장을 ‘훌리건(Hooligan)’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극성 스포츠팬을 뜻하는 ‘훌리건’은 사회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입장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성호 교수는 우리가 모두 열성 지지자인 훌리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대상으로 훌리건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정치인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거죠. 정치인의 성공과 실패를 지지자 자신의 경험처럼 여기는 거예요.”

  정치 팬덤이 정치인에게 열성적인 지지를 보내는 원인에는 사회적 배경 또한 밀접 한 연관성을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정치 팬덤보다 더 많은 팬을 보유한 배경에는 ‘국정농단’이 있었다. 사건 당시 대통령 직무와 권한을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시위가 일어났다. 시민들의 촛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문재인이 당선됐다.

  최성호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국민들에게 정치적 소명감을 줬다고 설명 한다. “집회와 시위를 통해 실제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민들은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정치에 관심이 커졌고 이는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이어 졌죠.”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문재인 팬덤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을 ‘나의 일’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최성호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수사와 서거까지의 과정 또한 문재인 팬덤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는 비판적 지지 성향이 강했어요. 그러나 결국 과도한 비판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학습하게 됐죠.” 노무현 팬덤의 다수가 문재인 팬덤으로 넘어오면서 너무 강한 비판은 자제하려는 인식이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최영진 교수(정치국제학과)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집단문화가 원인이 된다고 설명 했다. “올림픽 컬링 경기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컬링 경기에 열광했던 이유는 ‘우리나라’라는 공통점 때문이에요. 같은 우리나라 사람이란 생각을 갖고 일인칭적 관점으로 선수들을 바라본 거죠.” 그는 정치 팬덤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말했다. 문재인 지지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자기 사 이에서 공통점을 찾아 공동체를 형성한다. 여기에 집단문화가 결부돼 팬덤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르지만 닮아가는 팬덤 문화

  문재인 팬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광고를 제작하고 그와 관련된 굿즈를 공유하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연예인 팬덤의 활동을 연상케 한다. 안호림 교수 (인천대 기초교육원)는 정치 팬덤이 연예인 팬덤과 비슷한 문화를 보이는 원인은 연예인 팬덤의 ‘덕질문화(팬 활동 문화)’에 익숙한 세대 층이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10대나 20대가 주로 연예인 팬덤 문화를 누렸어요. 그러나 오늘날은 세대층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이 연예인 팬 덤 문화를 즐기죠.” 연예인 팬덤 문화에 익숙해진 다양한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정치 팬덤에 스며들었고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정치인에게 애정과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는 것이다.

  연예인 팬덤이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예인과 팬 사이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스스로 팬에게 보답과 감사를 표하며 팬덤을 확보 하려고 한다. 안호림 교수는 정치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대중의 관심과 지지는 정치인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에요. 충성스러운 지지자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이 요구되죠.” 문재인 대통령 또한 총선 당시 소통플랫폼 ‘정감’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약을 제안 받았으며 현재에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활발히 소통하려는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최성호 교수는 SNS 내에서 이뤄지는 정치 팬덤 활동이 ‘에코 체임버(echochamber) 현상’으로 강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코 체임버란 ‘메아리를 만들어 내는 방’이란 뜻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취사선택해 소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SNS에서는 나와 맞는 사람을 팔로우하죠. SNS에서 정치색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의견을 공유한다면 그 집단의 정치적 성격이 한쪽으로 극단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정치 팬덤의 활동이 주로 SNS에서 이뤄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SNS가 팬덤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기술의 발전으로 정치 팬덤이 정치인을 향한 지지를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지, 정치 팬덤의 본질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차량을 대여해 정치인을 따라다니는 등 정치인을 과도하게 지지하는 모습은 존재했어요. 지금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정치인 이름을 띄우는 등 색다른 활동이 등장했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이죠.” 시대와 상관없이 정치인 을 향한 맹목적 지지나 호감 표현은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현재 정치 팬덤의 활동이 예전보다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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