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관객석, 그리고 쉽게 관람 할 수 없는 비싼 요금, 마지막에는 관객의 흥미를 이끌지 못하는 지루한 내용. 이는 우리나라 연극계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병폐인 듯 싶다. 재미있는 영화 한편이 시도때도 없이 각종 영화를 상영하며 많은 최신 기자재를 이용하는 반면에 연극은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순수예술이란 미묘한 이름아래 배우들의 육체적 노력만을 요구한다.

21세기가 지난 요즘에도 연극계는 수입의 적자를 면치 못해 여러 곳이 폐쇄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지난 3월에는 대학로에 자리잡은 ‘은행나무 극단’(극장장: 송바울)이 관객감소로 운영을 하기 어려워 4월말로 폐관을 선택하게 되었고 4월 23일까지 ‘유리의 성’ (박근형 연출)을 ‘폐관기념공연’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또 대학로 몇몇의 극단들은 관객들의 동참을 얻기 위해서 순수예술을 거부한 채 으슥한 곳에 웃기기, 벗기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연극이 관객들의 동참을 얻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대중매체의 선호가 변화됨에 따라 관객들이 감각적, 즉흥적인 쾌락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게 극장의 지리적인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정의하고 있고 배우들의 강한 어필이 필요하다고 풀이한다. 이 말은 대다수가 위치한 극단이 대학로에 밀집 포화된 현실과 배우가 가진 전문성 있는 연기의 아쉬움을 비판한다.

“연극인이여 대학로를 떠나라. 대학로는 포화상태다. 서울에선 기대할 것이 적다. 방안에 틀어박힌 네티즌이 활개치는 요즘 연극의 탈출구는 지방주민과 섞이는 것이다” 지난 10월 대학로 생활을 청산한 연출가 이윤택씨는 대학로를 떠날 것을 외치며 경남밀양에서 주민들과 무대에 갇힌 연극이 아닌 서로 호흡하는 연극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또한 밀양시와 표충사. 영남루. 등의 유적과 연극촌을 연계해 종합문화도시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즉 연극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만인이 연극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하는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좁은 무대공간을 탈피해 관객들이 연극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마실 것, 저렴한 공연료, 책·자료 전시 등이 필요하다는 풀이이다. 또한 대중매체의 정보원천이 변화됨에 따라 인터넷의 적극 활용함과 지나친 상업성보다는 관객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일으켜 감화시키는 연기의 절실함을 가리킨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다른 장르의 위협을 이겨낸 나라에서 연극은 철저하게 ‘시민들을 위한 문화적 서비스’로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연극이란 부분을 인간의 친숙함에 다가서기 위해 어두운 무대를 낮에는 아이들의 연극놀이 공간으로 또는 시민공간으로 활용한다.

또한 매주 목요일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연관람료를 절반으로 받아 누구나 손쉽게 이용케 하고 있다.

연극의 상업성추구. 그리고 되살리기 운동. 20세기에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연극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사라지고 말 것인지를 질문했다. 그리고 연극이 존재하더라도 소수의 위한 창조와 생산. 그리고 그들만의 고급예술로 끝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전망했다.

그러나 연극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연극이란 분야 자체가 고급예술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전부터 인간이 일상의 모습을 그려내 만인들에게 호소하는 감정순화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연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비추어볼 때 이를 단순 보존하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만인들이 접근할 수 있게 노력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김영중 기자> powerade@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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