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싣고 온 문학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관하는27회 의혈창작문학상에서 시 1편과 소설 1편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의혈창작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데요. 전문대 이상 학부 재학생(휴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지난 1110일까지 지원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시 부문 13, 소설 부문 24명 등 많은 문학도가 지원했는데요.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시 부문 예심은 조동범 강사(문예창작전공)와 김근 교수(문예창작전공)가 심사해 총 3명의 학생이 통과했습니다. 이후 본심에서 이수명 교수(문예창작전공)와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에게 심사를 받았는데요.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인 이승하 교수는 대개 다양한 소재, 신선도 높은 표현력을 보여줘 읽는 재미를 십분 느끼게 해주었다하지만 되풀이해 읽어도 주제가 무엇인지 모를 작품이 태반이라 아쉬웠다고 전했습니다.

 소설 부문의 예심은 박형숙 강사(문예창작전공)와 윤고은 강사(문예창작전공)가 심사를 맡아 2명의 학생이 본심에 올라갔습니다. 이후 오정희 교수(문예창작전공)와 방현석 교수(문예창작전공)의 손에 당선작이 뽑혔죠. 소설 부문 본심 심사위원인 오정희 초빙교수는 학부 학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인 작품들이라 놀라웠다작품 속 세심하고 현실적인 묘사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일러스트 황예나님

슈퍼맨

형은 구름 위를 뛰어노는 직업을 가졌다
집에 돌아오면 등에 파스를 붙였고

천막이 광장을 뒤덮으면 형은
가랑이를 벌리며 몸을 뒤집었다

박수를 많이 받은 날엔
화장실 수도꼭지가 밤새 잠기지 않았고

자다가도 형의 몸짓이 느껴지면
숨도 쉬지 않았다. 내가 우는 것 까지 막으면
형은 터질 것만 같았다

한 뼘 정도의 방에서 혼자 했던 기도를
신이 들어주지 않은 이유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아마 신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 때문이었겠지

우리는 서로에게 짐을 덜면서 다시 들었다
자꾸 괜찮은 사이가 되어갈 때
형은 돈을 두고, 새벽에도 일을 나갔고

집에 돌아올 때 마다 손가락이 없어졌거나

얼굴을 감추곤 했다

 

슈퍼맨자평: 가난한 형제의 가면

 소년·소녀 가장은 매 순간 가난과 싸운다. 그들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년·소녀 가장은 스스로가 슈퍼맨·슈퍼우먼이 돼야만 했다. 혹여 동생이 있다면 더욱 자신을 내려놓고 단단해져야 한다.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이 그들에겐 가깝다.

 감정은 현실에 항상 굴복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이 감정을 내세워서 삶을 이룩해낸 경우는 없었다. 삶은 감정을 굴복시킨다. 그런 감정은 가난이 가까울수록 더 심한 무력감이나 수치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가난은 인간을 나락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시에 나온 화자도 같은 상황이다. 무력해진 인간은 차갑고 단단한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 됐고 그 장면을 포착한 것이 슈퍼맨이다.

 천막이 광장을 뒤덮으면 형은/ 가랑이를 벌리며 몸을 뒤집었다/ 박수를 많이 받은 날엔/ 화장실 수도꼭지가 밤새 잠기지 않았고

 인간이 돈 때문에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인간의 추락은 가난 속에서 더 빠르게 진행된다. 몸을 팔거나, 광대 일을 하는 등 소년·소녀 가장은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돈을 벌고, 자신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버릴수록 박수를 많이 받거나 돈을 더 받는다. 천막 속, 많은 군중 사이에서 한 개인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장면에 사람들은 손뼉을 친다.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감정의 빈곤은 점점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시에서 형의 감정은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그런 상황에서 동생은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계속 물이 나와도 형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가난을 버틸 수 있고 형의 감정이 더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다가도 형의 몸짓이 느껴지면/ 숨도 쉬지 않았다. 내가 우는 것 까지 막으면/ 형은 터질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괜찮은 사이가 돼가는 관계는 어떻게 보면 멀어지는 관계라 볼 수 있다. 부담을 주기 싫어도 줄 수밖에 없는 개인과 개인, 형과 동생의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서로의 짐을 최대한 덜어 주려고, 또 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서로의 감정에서 멀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 계속 직면하게 되면 그 관계는 슬픈 관계가 된다. ‘의좋은 형제에서 두 형제가 아무리 서로를 위해 가마니를 옮겨도 각자가 가진 가마니의 수는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의 형제가 아무리 서로의 짐을 덜어주려 해도 부담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시는 터질 것 같은 형을 위해 가만히 숨도 쉬지 않고 버텨야 하는 동생의 고충을 말한다. 가난은 그런 것이다.

 집에 들어올 때 마다 손가락이 없어졌거나/ 얼굴을 감추곤 했다

 그러면 가난에 빠진 소년·소녀 가장은 뭘 할 수 있을까. 동생에게 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형은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다. 부담을 줄이고 스스로를 침묵하게 하면서 괜찮은 사이라도 유지해야 한다. 피를 나눈 형제까지도 서로의 얼굴을 감춰야만 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가난에 처한 사람의 심정을 슈퍼맨통해 매만져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를, 그리고 가난과 가난 속에 있는 이들 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무너지는 인간과 그것에는 관심도 없는 사회,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인간까지 말이다.

 

 시 부문 당선자 김태훈 학생 interview: 슈퍼맨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지고

 현실 속 가난이라는 악당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가난과 싸워나가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있어 영화 속 슈퍼맨이 된다. 현실 속 슈퍼맨의 삶을 시로 드러내고 싶어 했던 김태훈 학생(계명대 문예창작학과)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시가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제목은 슈퍼맨으로 밝은 느낌이에요.

 “동생의 눈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희생하는 형의 모습이 슈퍼맨처럼 비칠 것 같았어요. 또 제목과 어두운 내용을 대비해 최대한 극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싶었죠.”

-시에도 역동적인 표현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구름 위를 뛰어노는이라는 표현도 얼핏 보면 밝은 듯하지만 사실 수증기 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형상화한 거죠. 가장 어두운 부분을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밝고 활동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했어요.”

-시에서 형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데요. 혹시 형이 있으신가요?

 “형이 있진 않아요.(웃음) 시를 쓸 당시 가난과 관련된 뉴스를 많이 접했는데요. 그러던 중 가난과 그 속에서의 사람 간 관계를 보여주는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던 중 친구 같고 장난스레 매일 티격태격하는 형의 이미지가 떠올랐죠. 그런 형이 가난 때문에 동생을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끝에 슈퍼맨을 완성하게 됐어요.”

-신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이유를 신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 때문이라 표현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신은 절대자예요. 하지만 형이 기도했음에도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죠. 신이라는 절대자조차도 가난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죠.”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요?

 “평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사람이 맺는 모든 관계를, 나아가 사람에 대한 모든 것들을 써보고 싶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당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과분한 상을 받게 돼서 너무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많이 부족한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될까 싶어요. 앞으로도 겸손하고 착실하게 쓰겠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주신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선생님들과 선배님들께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저와 항상 새벽까지 글을 쓰는 친구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네요. 우리 새벽에 글 쓰다가 배고프면 동전 끌어모아서 컵라면 하나 사 먹곤 했잖아. 이제 군대 가기 전까지는 내가 사줄게! 우리 끝까지 문학 해보자."

 

심사평: 사유의 순간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살아나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 대상이 된 것은 이윤정, 정민기, 김태훈의 작품이었다. 세 후보자의 작품은 모두 각기 다른 목소리와 개성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윤정의 <5월의 공작> 6편은 감각적이고 발랄한 언어 구성이 돋보였으며 다채롭고 화려한 이미지의 배합도 눈에 띄었다. 다만 에피소드에 머무는 것 같은 시계(視界)의 확장을 기하기만 한다면 더 큰 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민기의 <을지는 알고 있다> 7편은 내면적 언어와 이미지가 고요한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시편들이다. 말들은 잘 제련되어 있고 호흡의 긴장도 잘 유지하고 있다. 너무 시선이 안으로 향해 있어 모든 시적 공간이 동질화되는 아쉬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적절한 환기를 허용한다면 더 좋은 시가 될 것이다.

 김태훈의 <무질서> 6편은 과감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몽환적이면서도 즉물적인 다양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였다. 힘이 있으면서도 생기 있는 언어 구사는 매 편의 시에서 입체적이고 풍부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작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된 <슈퍼맨>구름 위를 뛰어노는 직업을 가진 에 대한 이야기다. 일종의 서커스와 같은 연기를 하는 형의 고통을 미학적 시선으로 절제하면서 그려내고 있다. “한 뼘 정도의 방에서 혼자 했던 기도를/신이 들어주지 않은 이유신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 때문이라는 묘사는 세속에서의 형의 고통을 현실적, 존재론적으로 탐문한 특별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이라는 공간으로 집약된 통찰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사유의 순간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살아나는 것이 그의 시의 특장이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손가락이 없어졌거나/얼굴을 감추곤 했다와 같은 부분에서도 이 장점은 살아난다. 함께 보내온 다른 시편들에서 특유의 거침없고 전방향적인 언어의 투사가 어우러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심사위원=조동범·김근·이수명·이승하(대표 집필 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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