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다
  • 박현준 기자
  • 승인 2017.12.0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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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쉽지 않다’이다. 쉽지 않다는 말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미묘한 의미를 담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또 단순히 ‘어렵다’라는 말과도 그 맛이 사뭇 다르다. 할 수 없다는 말은 불가능을 내포한다. 어렵다는 말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함의가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표현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으며, 난항이 예상되지만 헤쳐 나가기에 내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자신감도 품고 있다.

  지난 2년 6개월간의 중대신문 기자 생활을 ‘쉽지 않았던 시간’으로 평하고 싶다. 그 어떤 취재도 쉽지가 않았다. 어떤 취재는 일방적으로 거부당하기도 하고, 취재원은 약속한 연락 시간을 기어코 어겼다. 계획에 없는 사건은 왜 꼭 마감 시간이 임박해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밤을 지새워가며 작성하는 기사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물 흐르듯 쓰이질 않았다. 사실관계는 언제나 모호하고 꼭 담아내야 할 이야기는 어딘가 빠져있기 일쑤였다.

  밤과 새벽과 아침은 경계가 없었다. 휴식은 허락됐지만 잠은 사치였다. 피곤에 절어 있는 후배의 눈을 끝내 못 본 체해야 할 때의 감정은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그렇게 애써 내놓은 기사는 꼭 누군가로부터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쉬운 것은 커피를 마시는 일과 뜨는 해를 보며 라이터를 켜는 일과 틈틈이 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무너지지 않는 한 끝내 기사는 나왔고 신문에는 내 이름이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정기자부터 편집장까지 월요일 아침 배부대에 신문이 올라가지 않는 일은 없었다. 결국은 끝마쳤기에 기자 생활은 아무리 고단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잘 해냈느냐가 아니다. 결국 끝을 봤느냐 보지 못했느냐다. 끝을 보지 못했다면 그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며, ‘어려운’ 일을 해낼 재간이 없는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다.

 

쉽지 않은 일은
할 수 있는 일이다

 

  쉽지 않은 시간이 나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 듯하다.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면 그 어떤 학생보다 학내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데, 지금의 중앙대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현듯 튀어나와 학교를 휩쓸고 지나간 건 비단 안성캠퍼스 멧돼지만이 아니었다. 올 한 해 동안만 해도 안성캠 생활관 괴한 침입 사건, QS 사태, 전공개방 모집제도와 캠퍼스 간 입학정원 이동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중앙대를 뒤흔들었고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주에는 교수협의회가 총장 신임·불신임 투표를 진행한다. 대학본부와 교수협의회 사이에 깊게 팬 갈등의 골은 도무지 좁혀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기회가 좋아 기자 생활 동안 총장과 교수협의회장을 몇 번이나 인터뷰해 볼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총장과 교수협의회장은 모두 ‘불신 해소’와 ‘협력’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내가 임기 만료를 준비하는 지금에 이르러 결국은 신임·불신임 투표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나로서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제 쉽지 않았던 시간을 마친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아갈 중앙대의 앞길은 쉽지 않은 일 투성이다. 쉽지 않은 일들은 끝내 쉽지 않았던 일로 마무리돼야 한다. 어떤 일도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되거나, 해내기 ‘어려운’ 일이 돼서는 안 된다. 산적한 문제를 결국엔 풀어내고 말아야 한다. 중앙대가 맞닥뜨린 각종 현안도,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의 골도 언젠가는 반드시 ‘쉽지 않았지만 해결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후배들이 만들어 갈 신문에서는 ‘중앙대가 해냈다’라는 헤드라인을 마주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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