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죠. 그런 변화의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우리 사회의 티핑 포인트가 되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장애인 이동권’입니다. 지난 11월 3일 장애인이 전북도지사를 만나기 위해 전북도청의 계단을 기어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전북도지사에게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을 비롯한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북도청이 엘리베이터 운영을 정지시켰기 때문이죠. 결국 장애인들은 계단을 기어오르며 그들의 권리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편안하게 사용하는 대중교통을 누군가는 처절하게 요구해야만 하는 현실,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제한된 이동권의 실태
 

4번 플랫폼에서 노량진역사로 올라가는 계단, 장애인이 오르기에는 너무도 가파르다.
4번 플랫폼에서 노량진역사로 올라가는 계단, 장애인이 오르기에는 너무도 가파르다.

 

사람은 이동할 때 발과 다리를 움직이며 걷는다. 대중교통을 시민의 발이라 부르는 이유도 대중교통이 발처럼 움직이며 시민들의 이동을 돕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저렴한 요금으로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하지만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 이용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대중교통의 접근과 이용 측면에서 무수한 어려움을 겪는다. 누군가는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대중교통을 ‘시민의 발’이라고 선뜻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편리하지는 않았다
  시각장애인에게 독립 보행은 자립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혼자만의 힘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중증 시각장애인은 대개 청각과 촉각에 의지해 점자블록이나 음성안내시스템을 식별한 후 버스 정류소를 찾는다. 하지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편의시설지원센터 홍서준 연구원에 따르면 이마저도 미진한 경우가 많아 정류소의 접근성이 현저히 낮다고 말했다. 특히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버스중앙차로제는 장애인의 이동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시설로 꼽힌다. 낯선 곳에서 도로 중앙에 있는 정류소로 접근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찾거나 이동하는 과정에 두 배의 고생이 들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활동가는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 역시 버스 정류소의 낮은 접근성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버스 정류소가 위치한 인도가 협소해 휠체어가 버스 정류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요.” 실제로 인도의 폭뿐만 아니라 규격에 맞지 않게 세워진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이나 높은 인도의 턱으로 인해 휠체어 통행이 어려운 곳이 즐비하다.

  힘겹게 버스 정류소에 도착해도 무수한 불편함이 남아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전인옥 상임대표는 자신이 승차할 버스를 분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버스가 한 대만 정차하는 경우에는 버스 식별이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한 정류소에 두 대 이상의 버스가 정차하는 경우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른다는 거죠.” 버스 도착 정보를 안내하는 음향 서비스에 의존하는 시각장애인은 정류소에 정착한 여러 대의 버스 중 어떤 버스가 자신이 승차할 버스인지, 출입문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들다.

  저상버스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약 22.3%에 불과했다. 저상버스 수 자체가 적고 배차 간격이 길어 편리함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힘든 수준이다. 또한 박현 활동가에 따르면 저상버스는 버스 운전자나 버스 정류소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인 경우가 잦다. “저상버스 운전자가 신경 써서 버스 정류소에 최대한 가까이 버스를 정차시키지 않는다면 버스 탑승이 힘들어요. 또 버스 정류소 구조가 곡선 형태이거나 비탈길에 있을 경우 저상버스 경사로를 내리는 것도 쉽지 않죠.”

  또한 홍서준 연구원은 버스 내부에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하차 벨의 위치 파악이 힘들어 하차할 정류소를 지나치기도 해요. 그리고 승하차 카드 단말기의 위치가 표준화되지 않아서 카드를 태그할 때 어려움을 겪어요.”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버스보다 편리하다는 지하철 역시 개선할 점이 수두룩하다. 홍서준 연구원은 일부 지하철의 객실 통로 중앙에 설치된 수직 손잡이를 지적했다. 수직 손잡이는 입석 승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수직 손잡이의 설치 자체가 비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어요. 현재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 역시 불편하다는 민원으로 인해 단계적으로 철거되고 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열차가 있죠. 시각장애인에게는 객실 내에서 이동할 때 충돌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시설이에요.”

  엘리베이터 설치가 미흡한 점 역시 장애인의 이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박현 활동가는 지하철 환승구간에 엘리베이터가 미설치된 역이 많다고 강조했다. “종로역같이 많은 승객이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가 전무한 곳이 있어요. 그런 경우 환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멀더라도 다른 역을 이용해야 하죠.” 실제로 박현 활동가에 따르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한 번의 환승으로 이동 가능한 거리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을 이용하기 위해 여러 번의 환승을 감수하고 먼 거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잦다.

  출구번호가 작거나 점자 출구번호가 없어 저시력자가 출구를 식별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었다. “분당선의 경우 출구번호가 작아서 저시력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그뿐만 아니라 계단으로 된 출구는 점자표기가 부착돼 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출구는 점자 표기가 없어 출구를 확인하기 힘들죠.” 전인옥 상임대표는 출구번호나 계단의 색을 눈에 띄는 색으로 크게 표기하는 방안을 예로 들며 시설 개선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바른 이해가 만드는 인식
  1981년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 제13조에 심신장애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설비를 갖출 것을 언급한 이후 약 3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대중교통과 관련 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도 장애인 이동권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홍서준 연구원은 장애인 관련 시설에 대한 이해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향 신호기나 음성 유도기의 안내 음성을 소음으로 인식하고 민원을 넣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런 직접적인 부분에서 시민들의 의식을 계몽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점자블록이나 음향 신호기 등 장애인의 이동 보조 도구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를 통해 현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역시 문제다. 박현 활동가는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장애인 이동권이 훨씬 낙후된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의 장애인 이동권은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동권은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임에도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장애인은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죠.”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지난해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에 따르면 서울은 전체 버스 중 약 40.4%가 저상버스인 반면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저상버스 도입률 평균은 약 19.45%에 불과했다.

  “장애인 단체의 끊임없는 요구에 힘입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통해 장애인이 처한 문제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닌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죠.” 전인옥 상임대표는 최근 장애인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반 대중의 관심과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며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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