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여행’입니다. ‘힐링’,‘욜로’ 열풍에 힘입어 여행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을 위한 탈출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내국인 출국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죠. 지난달 황금연휴 기간 동안 인천국제공항 이용객은 개항 이래 최다 이용객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또한 여행의 소비자로서 빠질 수 없는데요. 대학생이 말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요?

 

 

대학생의 필수 관문이 된 여행
낭만 그 뒤편의 모습을 털어놓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와 낯선 이와의 만남은 지친 삶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너도나도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하죠. 여행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여행을 강요하거나 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에게 ‘네가 여행을 안 다녀봐서 그래’라는 말은 불편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여행지에서 알게 되는 현실과의 괴리도 무시하기 힘들죠. 파리의 모습을 동경해 파리로 떠났지만 이상과 다른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 ‘파리 신드롬’처럼요. 대학생들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장소정 학생(사회학과 2), 홍창근 학생(일본어문학전공 3), 김민정 학생(광운대 산업심리학과), 이현지 학생(홍익대 교육학과)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낭만의 세계로 출발하기 위해
사회자: 여행은 대학생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죠. 여행을 가기위해 돈을 모으고 방학이 되면 여행을 떠나는 학생이 많은데요. 이번엔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여러분은 여행을 자주 가시나요?


창근: 여러 나라를 가보진 못했지만 일본은 도시별로 많이 가봤어요. 방학마다 일본을 다녀오거든요. 공부와 알바에 힘쓴 한 학기를 마치고 나에게 주는 상으로 여행을 떠나죠.


현지: 새로운 경험을 맛보기 위해 방학마다 여행을 가려고 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위해 돈도 아껴 쓰죠.


민정: 대천, 순천, 제주도 등 주로 국내 여행을 다녀요. 동아리 활동 때문에 알바 할 시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비용이 덜 드는 국내로 여행을 떠나죠.


소정: 여행을 정말 좋아해서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여러 군데를 다녀왔어요. 앞으로도 체력이 닿을 때까지 여행 다닐 생각이에요.


사회자: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였네요. 여러분은 ‘여행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보았다’ 하는 일이 있나요?


현지: 학기 중에 돈을 아끼기 위한 걱정을 많이 하죠. 방학에 여행을 가기 위해선 돈을 어느 정도 모아놔야 하니까요.


소정: 전 공모전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해요. 미친 듯이 밤을 새워서 공모전 서너 개를 준비하면 금방 돈을 모을 수 있더라고요.


민정: 저도 공모전을 나가야겠네요.(웃음) 그런데 가끔 여행을 향한 집념 때문에 허탈할 때가 있지 않나요? ‘고생하면서 굳이 여행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행 갈 돈을 생활비로 사용하면 좀 더 넉넉히 생활할 수도 있잖아요.


창근: 저도 여행 욕심 때문에 알바를 열심히 해요. 알바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여행, 이상과 현실
사회자: 여행 시작 전에 겪는 고민들을 나눠보았어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광경은 여행객의 맘을 설레게 하죠. 여행지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궁금해요.


소정: 고등학교 2학년 때 혼자 전북에 위치한 변산반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교과서에서 배운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 기회였죠. 저는 변산반도에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고, 표를 끊어야 하고, 혼자 숙박이 안 된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그때를 계기로 교과서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활동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현지: 여행을 가면 다양한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게 되죠. 저는 그동안 부모님 의견에 의존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친구와 단둘이 간 여행에서 비행기도 놓쳐보고 현지인에게 직접 길을 물어보기도 하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 것 같아요.


창근: 맞아요. 여행은 성격이 변하는 계기가 되죠. 저는 소극적인 편이라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쉽게 못 하곤 했어요. 하지만 혼자 여행을 가면 옆에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까 적극적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그 나라 언어도 더 공부하고 싶어지고요. 외국어 공부가 필요한 제게 자극제가 되는 것 같아요.


사회자: 반면 기대를 품고 간 여행에서 실망스러운 경험을 겪은 적 있나요?


소정: 저는 패키지여행이 실망스러웠어요. 정해진 계획대로만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탑승하기를 반복했거든요. 여행사가 정해준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요. 현지인에게 직접 맛있는 식당을 물어보는 게 더 재밌는데 말이에요. 패키지여행에선 같이 간 사람만 만나게 되는 아쉬움도 있어요. 원하는 곳을 직접 찾아가지 못해서 여행이 힐링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다가왔죠.


현지: 여행 전에 후기를 많이 보고 가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여행지에 도착하니 인터넷에서 본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감흥이 없었죠.


사회자: 생소한 풍경을 마주할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없어서 여행이 지루하게 느껴졌나 봐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오는 감동이 여행의 묘미인데 말이에요.


소정: 반대로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실망한 경우도 있어요. 베이징에 갔을 때 현지가 상업화됐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자금성 옆 골목에서 상인들이 ‘싸요, 싸’, ‘천원, 천원’이라고 외치며 좌판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에겐 내가 단지 상품을 구매하는 관광객일 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현지: 해외 여행지에 한국 사람이 많아서 아쉬운 적도 있어요. 특히 가까운 대만, 일본에 한국인이 정말 많더라고요. 해외여행이니까 나만 한국인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소정: 맞아요. 일본에서 규카츠 맛집을 찾아갔는데 모든 테이블이 한국인 관광객으로 차 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홍콩을 경유해서 일본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죠. 홍콩에선 일본어가 많이 들리고 일본에선 중국어가 많이 들리더라고요. ‘여행을 반대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회자: 여행은 여러 명이 함께 갈 때가 많잖아요. 혹시 동행자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도 있나요?


민정: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함께 여행을 가면 사소한 일부터 갈등이 생겨요. 사진 찍어줄 때도 ‘왜 이렇게 찍었어’라는 말이 오가면서요. 함께 여행하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을 알게 되죠.


소정: 여행 방식에 취향 차이가 있으면 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것 같아요. 함께 여행을 간 친구 중에 정해진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만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는 필요하면 일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시간이 늦어지면 거기는 안 가도 된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토라져 버렸죠.


창근: 저는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친구 사이에서 난처했던 적이 있어요. 친구들이 오키나와에서 스노클링을 하자고 제안했는데요. 돈이 부족해서 ‘나는 빠지겠다’고 하니까 나머지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눈치가 보였어요.

 

  어떤 여행을 해야 할까
사회자: 꿈꿔 온 여행길과 다르게 마냥 이상적인 일만 벌어지지는 않네요. 그럼 여러분은 어떤 여행을 가고 싶나요?


현지: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의존적인 성격은 버리고 독립심을 기르고 싶거든요.


민정: 저도요.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은 갈등이 많아서 혼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소정: 전 한계에 도전하는 여행을 좋아해요.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걸어 보고 싶죠. 남미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혼자 가긴 위험하니까 신혼여행으로 가볼까 해요.(웃음)


사회자: 대단하네요. 그럼 여러분은 어떤 방식의 여행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소정: 친구가 ‘생태관광 모니터링 체험단’을 해요. 좋은 취지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태관광을 하는 여행객은 여행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표기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탄소발자국 여행’을 해요.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서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도 하고요.


현지: 생소한 여행 방법이네요. 저도 환경을 보존하는 여행에 지향점을 둬야겠어요.


민정: 전 여행지에 사는 주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여행을 하려고 해요. 이화 벽화마을 주민들이 관광객 때문에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외부인이 밤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여행지지만 어떤 사람에겐 생활터전이잖아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제 자신도 되돌아보게 됐어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
사회자: 요즘 <꽃보다 ○○> 시리즈, <배틀 트립>, <뭉쳐야 뜬다> 등 여행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이 흥행하고 있어요. SNS에서도 여행 체험기같이 여행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고요. 이젠 여행이 유행처럼 느껴져요.


민정: 맞아요. 특히 가깝고 저렴한 여행지에 가는 게 유행이 된 것 같아요. 정해진 일정도 있죠. 일본 오사카에 가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들르거나 글리코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요.


창근: 여행이 유행하게 된 데엔 SNS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사진을 보는 사람은 박탈감을 느껴서 ‘나도 여행을 가야겠지’하는 생각이 들죠.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똑같은 자리에서 몇십 분 동안 사진만 찍는 사람도 본 적 있어요. 적당히 찍으면 좋을 텐데 여행을 하러 온 건지 사진을 남기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죠.


민정: 맞아요. SNS에 올릴 만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엔 충분한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동하면서도 계속 사진을 보정하고 있고요. 이럴 땐 여행이 ‘보여주기’가 된 것 같아요.


소정: 여행이 사람을 특정하는 하나의 프레임이 되면서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여행 다니는 사람을 ‘스스로 가꿀 줄 아는 사람’ 혹은 ‘여행이라는 투자를 할 만큼 자신을 아끼는 사람’으로 여기죠.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사회자: 여행이 유행이 되면서 ‘꼭 가야만 하는’ 압박이 생긴 것 같네요. 여러분은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소정: 여행은 가고 싶을 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도 방학만 되면 단체 채팅방에 ‘여행 어디 갈 거야?’라고 물어요. 이런 분위기에 압박감을 느낀 친구도 있었죠. 경제적인 부담이 있는 친구에겐 박탈감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여행 갈 시간을 내기 위해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창근: 1학년 때 ‘어떻게 여권이 없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전까지 해외로 나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만 여권이 없는 건가’ 하는 상대적 소외감이 들었죠.


현지: 대학생 때 여행을 못 가면 평생 못 간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주위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해서 저도 여행을 많이 가려고 하는 편인데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친구에게 여행을 강요한 적이 있어요. 어느날 그 친구가 ‘이번 방학엔 쉬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조금 상처받긴 했지만 대학 생활을 즐기는 방식이 각자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사회자: 여행으로 일상에 변칙을 주는 것도 좋지만 흘러가는 일상을 그대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지 않나요? 의미 있는 여행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냥 낭만적일 것만 같은 여행의 속사정까지 들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러면 이만 좌담회를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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