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에서도 설 곳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
  • 권희정 기자
  • 승인 2017.11.27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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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상보다 나쁜 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

'소녀'라는 틀에 매인
여성 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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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스틸컷. 붉은 꽃과 나풀거리는 교복치마로 대표되는 ‘소녀성’은 두 여성 간의 사랑을 미성숙한 것이라 치부하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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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스틸컷.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스틸컷.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말은 감히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불가능한 상황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상상되지 않는 것은 곧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콘텐츠는 사회의 상상을 드러낸다고 할 때, 콘텐츠에서 재현되는 것들은 ‘사회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말한다. 그리고 레즈비언은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

  여자라서, 동성애자라서
  게이가 정형화된 고정관념의 재생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레즈비언은 콘텐츠에 등장할 자리조차 담보 받지 못했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콘텐츠는 손에 꼽을 정도다. 「201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15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는 232편이다. 한 해에 200편이 넘어가는 영화들이 개봉하고 있는데, 레즈비언을 다룬 영화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창피해>(2011), <도희야>(2014), <아가씨>(2016), <연애담>(2016) 정도로 간신히 계보를 잇고 있을 뿐이다.

  정슬기 교수(사회복지학부)는 레즈비언이 비가시화 되는 원인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한국의 정서를 꼽았다.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여성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에도 아직 미숙해요. 그런 상황에서 하물며 여성 동성애자를 다루는 것은 더욱 엄두를 못 내는 거죠.” 여성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은 더더욱 그려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수성이 강한 TV 드라마에선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몇몇 작품에서 겨우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제재받기 일쑤다. 2011년 KBS 스페셜로 방영됐던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여성 동성애자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이유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결국 다시 보기 서비스가 중단되기까지 했다. 2015년 방영됐던 <선암 여고 탐정단>의 경우도 여고생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법적 제재인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성간 진득한 키스 장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TV 드라마에서, 여성 간의 키스 장면은 문제시된 것이다.

  이렇게 공적인 콘텐츠에서 비가시화 된 레즈비언이 활발히 재현되는 장르가 있다. 바로 음란물이다.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레즈비언은 음란물에서 남성 이성애자들의 성적 대상으로 재현된다고 설명했다. “여성 레즈비언 간의 성적인 관계는 음란물에서 남성 이성애자들의 판타지로 소비돼왔죠.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는 음란물에는 대체로 레즈비언 코드가 들어가 있어요. 음란물이고, 성적 판타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더욱 공영 방송에선 드러날 수 없죠.” 남성 동성애는 ‘남성은 성적 주체로서만 존재한다’는 이성애 기반 가부장제의 전제를 깬다. 이는 가부장제 남성성에 대한 도전이 돼 남성 동성애는 남성들에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여성 간 동성애는 남성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성적 대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즈비언 간의 관계는 남성에게 쉽게 음란물로 소비됐다.

  레즈비언을 가리는 ‘소녀’
  음란물이 아닌 공적인 콘텐츠에서 그나마 여성 간의 멜로가 나타날 땐, 여성 간의 감정은 사랑이 아닌 미묘함으로 치부됐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주란’과 ‘연덕’의 관계에서 그 미묘함을 느낄 수 있다. 경성학교로 전학 간 주란은 따돌림을 당한다. 그의 일본 이름인 ‘시즈코’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떠나버린 아이와 같다는 이유다. 그런 주란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바로 시즈코와 단짝이었던 연덕이다. 주란은 연덕에게 의지하며 점점 단짝 친구로 발전해 나간다.

  “처음부터 시즈코 대신에 나한테 잘해준 거 알아. 대신인 거 나 상관없어.” 주란은 자신이 연덕에게 시즈코 대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한다. 질투를 하기도 하고, 괜히 연덕을 닦달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덕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그러던 와중 학교와 관련된 비밀이 밝혀지고, 그 과정에서 연덕은 살해당한다. 연덕의 죽음을 본 주란은 폭주해 복수를 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연덕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며 그 옆에서 죽음을 맞는다.

  질투하고, 집착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그의 옆에서 맞는다. 둘의 감정은 충분히 사랑으로 해석될만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란과 연덕 사이의 감정선은 정의되지 않는다.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뿐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이처럼 여성 간 동성애를 무화시키는 이유는 사회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이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걸 인정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굉장히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레즈비언 관계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묘사하는 거죠.”

  이 애매한 감정선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바로 ‘소녀’라는 정체성이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또한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소녀들’의 서사다. 붉은 꽃이나, 사탕, 나풀거리는 교복 등 영화는 소위 ‘소녀’적인 이미지로 넘쳐난다. 영화를 가득 메운 ‘소녀성’은 둘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보단 사소한 흔들림이라는 식의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됐다. “여학교에서 사춘기 때 느낄 수 있는 사랑과 우정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동성애는 아니에요.” 주란을 연기한 배우의 말은 ‘사춘기 여학생’이란 정체성이 동성애를 어떻게 봉합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기 위해서 ‘소녀’로 표현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성인 여성의 성숙한 욕망으로 가져가는 순간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죠. 하지만 가부장제 안에선 그게 용납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걸 소녀들 간의 미숙한 사랑, 나이 먹으면 바뀔 감정으로 안전하게 소비하는 거죠.”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는 여성을 성적 대상이라는 틀에 가두려 하는데 레즈비언 간 관계에선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된다. 그렇기에 이들을 ‘소녀’로 묘사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다. 여성 간 미묘한 멜로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가 10대 여고생을 다룬 <여고괴담> 시리즈라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국 콘텐츠에서 레즈비언은 음란물이거나, 섹슈얼리티를 부정당한 채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여성 동성애자는 두 발로 서 있을 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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