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벗은 몸을 ‘누드(Nude)’와 ‘나신(Naked)’으로 구분했다. 나신은 예술적 가치 없이 현실 그대로의 벌거벗은 몸을 의미한다. 하지만 누드는 예술의 옷을 입은 몸을 의미한다. 누드와 나신이 구분된 이유와 예술에 나타난 몸의 역사를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다.


  예술이라 쓰고 철학이라 읽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신체는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예술 소재가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누드가 성행할 때도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의 누드는 독자적이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신체가 예술로 표현된 이유는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 이론’과 관련 있다.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본질적인 원형이다. 모든 사물은 이데아의 모방이며 고로 이데아는 모든 인식과 존재의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플라톤은 가시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닌 이데아를 인식하고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예술에도 이와 같은 플라톤의 정신이 담겼다. 그리고 이런 정신과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이자 만물의 척도로 간주하는 인본주의 사상이 만나 누드가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몸은 이데아로 여겨졌죠. 그로 인해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됐습니다.” 김영호 교수(서양화전공)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데아를 추구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예술 속에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작품들이 그려낸 인간의 몸은 ‘일반적인 인간의 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을 멘 남자>, <비너스> 등의 그리스 작품에서 나타난 몸은 일정한 형태로 정형화돼 있다. 자연스러움보다 완벽한 비율, 즉 황금비를 강조한 것이다.

  권기동 교수(국민대 회화전공)는 고대 그리스에선 비율에 맞는 이상화된 신체만이 아름답다 여겨졌고 그런 신체만이 예술의 소재로써 다뤄졌다고 설명했다. “과거 조각상들에서 보이는 이상적인 비례는 현실 인간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몸 역시 몸의 이데아를 현실 세계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상화된 완벽한 비례의 신체는 몸의 이데아의 실천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인 인간의 몸은 예술이 될 수 없었다.

  그리스 이후 한동안 누드는 암흑기를 걸었다. 예술의 주요 소재에서 점차 밀려나고 중세를 거치면서는 철저히 중단되며 맥이 끊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부흥기를 갖게 된다. 르네상스는 과학의 시대이자 이성과 합리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자의식이 싹텄고 사람들은 인간 자체에 대한 미적, 과학적 탐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김영호 교수는 세계관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뀜에 따라 인간의 몸이 다시 예술의 소재로 부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세 신본주의에서 다시 과거 그리스의 인본주의로 돌아간 거죠.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가 해부학과 같은 르네상스의 과학을 만나 다시 한번 인간의 몸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사상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몸을 다시 예술로 불러들였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누드가 고대 그리스의 누드를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둘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존재했다. 누드 작품에 주로 그려지는 대상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에선 남성 누드의 비중이 더 컸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여성의 누드는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반 남성들을 표현한 조각상인 ‘쿠로스’는 벌거벗은 누드로 표현된 것에 반해 일반 여성들을 표현한 조각상인 ‘코레’는 옷을 입은 채로만 표현됐다. 예외적으로 여신은 누드로 표현됐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남성의 건강한 몸과 고귀한 여신의 몸만을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다. 신이 아닌 평범한 여성의 몸은 아름답다 여겨지지도 예술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그리스의 남성 누드는 남성만을 인간으로 여긴 철저한 남성 중심주의와 인본사상의 산물이었다.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여성 누드가 우위를 확보해 나가는데, 이는 여성의 인권이 향상됐기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다. 권기동 교수는 누드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바뀐 것 또한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누드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는 주로 권력과 지위가 있던 남성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성의 누드가 주류가 됐죠.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젠더 간 사회적 불균형이 시선으로 나타난 거예요.”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그대로 예술 속 인간의 몸에 적용됐다.

  다양한 매체 다양한 몸
  과거에서 현대까지 이르기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던 것처럼 예술도 함께 발전하고 변화했다. 이종구 교수(서양화전공)는 현대에 기술이 발전하며 회화나 조각에서 인간의 신체를 소재로 삼는 일이 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과 영상이 발명되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재현하고 입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회화나 조각은 인간의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비율을 줄이게 됐죠.”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소재로써 인간의 신체가 배척된 것은 아니다. 사진, 영상 등의 등장과 발전으로 예술의 장르와 표현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그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김영호 교수는 예술 속 몸엔 시대의 변화와 흐름이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포스트휴먼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떤 프랑스 예술가는 여성신체 일부를 로봇으로 변형하거나 대체하는 디지털 작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시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예술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몸을 다양한 형태와 양식으로 변천시켜왔죠. 예술의 역사에서 몸은 각각 변화하는 시대상과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상으로 다뤄져 왔어요.”

  시대가 지나면서 인간의 몸은 예술의 소재만으로 국한되지 않게 됐다. 다양해진 표현방식과 세계관과 함께 예술의 도구로써 사용되거나 행위예술처럼 그 자체가 예술 매체가 되기까지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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