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담긴 누드 이야기
  • 김예령 기자
  • 승인 2017.11.2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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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감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시인 카미유 레모니에는 누드가 뭔가를 감추려 하는 순간 음란해진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누드는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한다.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고 당대의 사회를 말한다. 18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누드작품이 전시된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NUDE>에 다녀와 누드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카로스를 위한 애도,1898,허버트 드레이퍼
이카로스를 위한 애도,1898,허버트 드레이퍼
  누드, 이상을 담다
  지금 막 하늘에서 추락한 듯한 남성과 그 주위를 둘러싼 세 명의 아름다운 요정. 허버트 드레이퍼의 <이카로스를 위한 애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함께 크레타섬에 갇힌 이카로스는 밀랍과 깃털로 가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태양에 밀랍이 녹을지 모르니 높게 날지도, 바다에 날개가 젖을 수 있으니 낮게 날지도 말라는 충고를 전한다. 그러나 감옥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카로스는 탈출과 동시에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 깃털을 연결하던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축 늘어진 그의 주변에는 물의 요정이 전하는 애도만이 맴돌고 있었다.

  비극적면서도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선 내용보단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 먼저 다가온다. 권선민씨(31)는 그림이 주는 완벽한 조화로움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신화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현하면서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을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이카로스의 완벽한 인체 비율은 그의 죽음에 숭고함을 부여한다. 물의 요정의 도자기와 같이 매끈하고 맑은 외모 또한 그림에 신비로움과 고귀함을 더한다.

  이 그림에서 인간의 몸이 가진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주로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이야기를 그림의 소재로 삼은 18세기 분위기에 뿌리를 둔다. 사람들은 이상적이고 완벽한 외형을 가진 누드에서 신화적 존재의 고고함을 느꼈다. 이상적인 누드에 대한 관람객들의 열망이 강렬해서 실존하는 주변 인물을 모델로 그린 사실적인 누드화는 거센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이상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적합했던 누드는 설화화(說話畵)의 고전적 소재로 쓰였고 이상에 가까운 인체만이 예술로 여겨졌다.
 
욕조 속 여인,1883,에드가 드가
욕조 속 여인,1883,에드가 드가
 
  누드, 주변을 담다
  신화 속 이상의 미를 좇던 누드는 19세기에 순간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을 중시하는 ‘인상주의’가 도래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에드가 드가가 있었다. 드가는 신화 속 인물이나 포즈를 취한 모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드가가 그린 <욕조 속 여인>의 여인은 동그란 접시 같은 욕조에서 흰 천으로 몸을 닦고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모습이다. 시종일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여인의 눈은 누드화를 감상한다기보단 주변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티끌 한 점 없는 피부를 묘사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작화도 시선을 끈다. 정동만씨(45)는 드가의 회화적 표현이 그림의 맛을 더 잘 전달한다고 말했다. “다소 거친 표현법과 여인의 진지한 표정 덕분에 일상 속에서 발견한 누드의 아름다움이 한껏 빛을 발하고 있었어요.” 평범한 여성의 신체를 채운 파스텔 톤의 투박한 붓질은 이상적인 누드의 극치를 보여주던 설화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주변 사람을 그려낸 누드화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당시 분위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대 관람객은 ‘예쁘지 않다’, ‘고개를 들지 않아 불쾌하다’는 이유로 드가의 작품에 혹평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창조적인 화풍은 오늘날의 드가를 만든 주제의식이었다. 비로소 일상적인 인간의 몸도 예술이 된 것이다.
 
진흙 목욕탕,1914,데이비드 붐버그
진흙 목욕탕,1914,데이비드 붐버그
 
  누드, 추상을 담다
  데이비드 붐버그의 <진흙 목욕탕>은 누드작품에서 인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음을 상징한다. 푸른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모양새의 사람은 당혹감과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제목처럼 목욕탕을 그려낸 이 작품은 런던 화이트 채플 유대인 지역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화합을 다지던 증기 욕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진흙이라기보단 핏빛에 가까운 사각형의 목욕탕을 향해 기하학적 형태를 띤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모여들고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누군가는 탕 안으로 뛰어 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짝 발을 담그기도 하며 누군가는 탕 속 갈색 기둥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붐버그의 파격적인 누드에 담긴 것은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사회에서 그가 느낀 회의였다. 전쟁 통에 쓰러져 있는 시체 위를 무자비하게 밟고 지나가는 탱크는 그에게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줬다. 차가운 도시 문명이 심화되면 인간은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말 거란 붐버그의 생각은 감정이 빠지고 형태를 잃은, 종국에는 기호화된 누드를 캔버스에 남겼다. 20세기에 모더니즘이 도래하면서 누드를 단순한 인체의 재현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 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줄스 가족: NNN,1974,바클리 헨드릭스
줄스 가족: NNN,1974,바클리 헨드릭스
 
  누드, 사회를 담다
  1974년 바클리 헨드릭스가 발표한 <줄스 가족: NNN(No Naked Niggahs, 나체 흑인 금지)>는 흑인 남성을 전통적인 오달리스크 포즈로 그려냈다. 17세기 작가 앵그르의 작품 <오달리스크>에서 비롯한 오달리스크 포즈는 해부학적인 정확성보다 여성이 가진 곡선의 미를 더 중요시한다.

  작품의 제목 중 ‘나체 흑인 금지’라는 구절은 주로 백인을 그림 모델로 세우던 미술계의 암묵적인 분위기에 도전장을 던진다. 소마 미술관에 전시된 총 66명의 작가들의 작품 122점 중 흑인이 등장하는 그림은 몇 점 되지 않는다. 미술사조에서 모델이 될 수 있던 대상은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사람 뿐이었기 때문이다. 좌측에 자리한 옷 속의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과 대비되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오랫동안 시대가 ‘여성적’이라 규정한 자세를 남성이 취하고 있는 설정도 파격적이다. 누드작품은 전통적으로 남성 화가가 여성의 누드를 그린다는 관습 하에서 제작돼왔다. 그러나 헨드릭스의 그림 속 남성은 관능적인 표정과 함께 오달리스크 자세를 취해 성적 어필을 표한다. 주로 여성의 신체를 에로틱하게 묘사하는 미술계의 성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가의 담대함이 느껴진다.

  에필로그
  권선민씨(31)는 다양한 시대의 ‘누드’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인간의 몸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시대와 상관없이 예술가에게 내재돼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가 사랑한 누드는 다양한 미술사조와 여러 작가의 손을 통해 수많은 발자취를 남겨왔다. 그러나 그 발자취 위에서 누군가의 신체는 이상적으로 여겨졌고, 다른 누군가의 신체는 화폭에 담길 자격을 부정당했다. 이 차별적 시선을 누드는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누드 작품엔 인간의 외면과 내면, 그리고 사회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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