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시대 런던의 군중은 ‘글로브 극장’ 앞에 줄지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기다렸다. <햄릿>, <오셀로>, <리어왕> 등의 셰익스피어 작품이 상영된 이 글로브 극장을 중앙대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 영어원어연극학회 ‘글로브(Globe)’의 김현주 학회장(영어영문학과 2)을 만났다.

  -연극학회라니, 연극을 공부하시나요?
  “아니요.(웃음) 연극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해 무대에 올리는 학회에요. 대신 영어 극본을 사용해 원어로 연극을 진행해요. 지난 9월에도 <RENT>라는 뮤지컬을 상영했어요. 학회 역사상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했죠.”

  -도전은 성공하셨나요?

  “나름 성공적이었어요. 많은 관객이 오셨고 특히 재학생이 아닌 외부 관객들도 많아서 만족스러웠죠. 결과와 무관하게 배우와 연출의 눈에 띄는 성장이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요. 화성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인문대 신입생이 무대 위에서 화음을 맞추고 카리스마있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연출을 책임졌던 친구는 뮤지컬 연출가라는 꿈을 도약시킬 수 있었다고 하고요.”

  -멋져요. 그렇지만 기존 학회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함께 앉아서 공부하는 전형적인 학회는 분명 아니에요. 그렇지만 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능동적인 공부를 할 수 있어요. 극본을 정하고 스스로 번역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해요. 그리고 긴 영어 대사를 통째로 외우죠. 길고 복잡한 문장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히니까 문법을 따로 몰라도 단어만 바꾸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요. 또 서로가 발음과 발성, 억양에 대해 피드백을 나누다 보니 좀 더 원어에 가까운 발음을 구사하게 돼요.”

  -하지만 대사와 현실의 표현은 좀 다르지 않을까요?
  “아뇨. 전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입에 익은 대사를 그대로 사용하곤 해요. 작년 공연에서 전 애인과 현 애인이 만난 상황에서 사용했던 대사인데요. 정확히는 “I’m so mad that I don’t know what to do”라는 대사였어요. 외국인 친구와 과거의 연애 고민을 나누던 중 불쑥 튀어나왔죠. 참고로 전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은 없어요. 그렇지만 현실 언어인 관용구나 속어를 연극에서 배워 사용하죠. 외국인 친구들과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요.”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겠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하나의 극본을 체화하는 경험은 이해의 폭을 넓혀줘요. 전공과목 중 영미권의 드라마 수업에서 극본을 공부해요. 시나리오의 구성과 감정을 경험해보고 나니까 무미건조한 텍스트에서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어요. 마치 문학 속 화자가 내가 된 것처럼 무대를 그리다 보면 내용 이해나 암기의 속도가 빨라지거든요. 전공 공부에 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비전공 학생들끼리 연극을 준비하기 어렵지는 않나요.
  “물론 어렵죠. 그래서 공연을 위해 두 달 정도를 집중해서 준비해요.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소화해야 할 연극을 직접 관람하는 거예요. 원작 내용에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나 소재가 많잖아요. 그래서 전문 배우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연출했는지 주의 깊게 보며 배우죠. 이때 한국어로 하는 연극을 보면서 자신이 외운 영어 대사가 들리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어요.”

  -학회원들의 개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다들 순수하게 어떤 한가지가 좋아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에요. 연극과 뮤지컬 관람을 취미로 하는 친구도 있고 망치질을 잘한다며 무대 배경을 만들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죠. 무대를 상상하며 기획하는 친구나 조명 효과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연출을 하고요. 무대 위에서 화려한 끼를 펼치는 친구들도 많아요. 언어는 자신감이라고 하잖아요. 당당하게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관객 앞에 선보이며 영어에도 자신의 삶에도 자신감을 듬뿍 얻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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