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산책길에서
  • 김풀잎 기자
  • 승인 2017.11.15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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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풀잎 학술부 선임기자

‘당분간 꾸미랑 혼자 산책 다니지 마라’ 가족 단체 채팅방에 아빠가 ‘공지’를 올렸다. 세상에! 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통금도 모자라 강아지와의 산책까지 금지당해야 할까. 딸들에 대한 아빠의 고슴도치 사랑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 유명 한식당 대표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유명 가수의 반려견에게 물렸다는 사실과 연관된 이후, 산책길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미안하게도 아빠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닌지라, 오늘 저녁도 반려견과 산책을 나선다. 조금 무섭긴 하니까 배변 봉투는 눈에 띄게 들고, 적당한 거리를 위해 사용하던 15m 리드줄은 1m 리드줄로 바꾼다. 

  서울 번화가의 유일한 녹지 지대인 이 공원엔 수많은 사람이 온다. 반려동물과의 산책, 데이트, 피크닉, 관광, 버스킹, 마실, 홍보… 다양한 목적으로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한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공공장소니까 당연한 얘기다.

  나와 강아지도 공원을 걷는다. 어제는 ‘귀여워~’하던 사람들로부터 ‘요즘 입마개…’, ‘작은 개가 더 사나워…’하는 말을 들으며 걷는다. 이 공공장소에 불청객이 된 것처럼 누구에게도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내 존재가 부정당할 때 느끼는 감정, ‘혐오’의 분위기가 날 둘러싸고 있다.

  언젠가부터 혐오의 감정은 우리 사회 속에 축적돼왔다. 좀 더 사회적 소수를, 좀 더 약한 자를 대상으로, 위에서 아래로 점점 더 좁혀져 내려왔다. 여성으로, 성 소수자로, 엄마로, 아이로, 노인으로, 외국인으로, 중년층으로, 특정 개인으로까지… 한 번 타겟이 되면 어떤 범주에 속하든 이유를 불문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번 ‘개 물림’ 사건은 그 혐오의 불씨를 반려동물과 반려인에게까지 옮겨왔다. 

  혐오의 대상이 생겨나고 소비되는 방식은 일정하다. 바로 ‘형상화’ 과정이다. 형상화는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 즉 이 대상은 혐오해도 괜찮다는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여성 혐오의 일종인 ‘맘충’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때를 돌이켜보자. 온라인에선 더 자극적인 엄마의 민폐 스토리를 공유했고 언론에서조차 ‘몰상식한 엄마’의 사례를 사회적 문제로 보도했다. 맘충에 적합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혐오할만한 스토리를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 대중은 이 캐릭터는 이만큼이나 ‘나쁘니까’ 차별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인다. 대중이 이 가상의 캐릭터를 현존하는 주변 인물에게서 찾아내고, 꼬리표를 달면 혐오는 완성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가수가 반려견에게 법으로 규정된 목줄을 착용하지 않아 물림 사건을 방지하지 못한 건 분명한 범법행위다. 그러나 사망 사건과의 인과관계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론과 커뮤니티에서는 ‘피 맛을 본 개’, ‘안락사’ 등 자극적인 단어만을 조합해 상황을 설명하며 무책임한 말만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 결과 난 반려견과 반려인 혐오를 오롯이 느끼며 이 공원을 걷고 있다. 저만치서 얼마 전 꾸미와 친구가 된 골든리트리버 ‘모아’가 다가온다. 사람의 허리까지 오는 모아의 주인분 손에 수줍게 들린 입마개가 눈에 들어온다. 모아 주인분과 잠시 앉아 얘기를 나누기로 한다. 주위엔 사람들이 각자 행복을 즐기며 오순도순 앉아 있다. 긴 대화의 결론은 하나다. “아니 근데 우리 왜 불안해야 하죠?”

  억울한 마음에 문득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공원이 ‘노키즈존’처럼 ‘노혐오대상존’이 된다면? ‘반려인’이자 ‘젊은 여성’인 나를 가장 먼저 내보낸다. ‘틀딱충’인 노인들, ‘개저씨’인 중년 남성, 신난 아이를 쫓느라 바쁜 ‘맘충’, 외국인, 성 소수자…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혐오의 꼬리표는 금세 공원을 장악한다. 혐오는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남아있다고 해도 그들의 공원은 지금처럼 행복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은 혐오의 안개가 자욱한 이 공원을 언제까지 자유로이 노닐 수 있겠는가. 텅 빈 공원 속엔 당신도 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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