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속 불편한 진실
  • 이나원 기자
  • 승인 2017.11.13 0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게임’입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중독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요.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 제도(Shut Down)’가 대표적이죠. 게임 속에서도 게이머의 고충은 계속됩니다. 익명성에 기대 남발하는 언어폭력 때문에 게이머간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어떤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까요?

 

 

닉네임 뒤에 숨어
패배의 화살을 돌리다

 

진짜 경쟁이 아닌
함께 즐기러 온 퀘스트

 

게임은 현대인에게 어느새 대중적인 취미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데요. 바로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언어폭력과 각종 혐오입니다. 마주하고 듣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취미 생활을 방해하는 불편한 ‘현실’이죠. 이준형 학생(기계공학부 3), 유호정 학생(연세대 건축공학과), 조명은 학생(한국성서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과 함께 사이버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충을 들여다봤습니다.

 

  또 다른 전쟁이 펼쳐진다
사회자: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네요. 저는 게임을 즐겨하진 않지만 게임 채팅창의 욕설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어요. 여러분도 게임을 하면서 다른 게이머의 비방과 모욕 때문에 기분 상했던 적이 있나요?


준형, 호정, 명은: 그럼요.


준형: 모든 팀원의 능력치가 중요한 게임일수록 게이머 간 언어폭력이 심해요. 개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니까요.


호정: 맞아요. 게임이 조금만 안 풀려도 남을 탓하는 욕설이 난무하죠. 처음 보는 비속어도 많이 들어봤어요. 게임할 기분이 안 나요. 전투력을 상실하죠.


명은: 저는 욕설이 들리면 보이스 채팅을 꺼버려요. 욕설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죠. 팀원과의 소통이 있어야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사회자: 게임에서 언어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요?


명은: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인 것 같아요. ‘오버워치’라는 게임은 ‘빠른 대전’과 ‘경쟁전’으로 게임장이 나뉘어있어요. 빠른 대전은 점수 변화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반면 경쟁전은 승패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죠. 경쟁전에선 점수를 걸고 실력을 겨루지만 빠른 대전에서는 가볍게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빠른 대전에서조차 패배하면 욕설이 난무해요. 점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준형: 전 익명성 때문에 언어폭력이 심해진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선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심하게 비방할 수 없잖아요. 게임에선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공격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게 되죠.


호정: 맞아요. 하지만 언어폭력은 게임 속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익명성을 띤 모든 공간의 문제예요. 온라인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악플, 성별 간 혐오가 게임에도 그대로 옮겨간 거죠.


사회자: 온라인 게임 속 언어폭력을 줄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형: 게임 회사가 규제를 강화해야 해요. 한 게임은 게임 회사에서 욕설을 제재하기 시작하면서 언어폭력이 많이 줄었어요. 다른 게이머로부터 신고를 당하면 채팅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거나 일정 기간 접속을 정지당하죠.


호정: 비방 표현이 걸러질 수 있도록 게임 회사에서 채팅창 필터를 강화했으면 좋겠어요.


명은: 맞아요. 욕설을 규제하지 않는 게임일수록 점점 유저의 관심이 줄어들기 마련이에요. 신고를 해도 표현이 애매하면 제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누가 봐도 기분 나쁜 표현인데도요.


준형: 신고를 많이 당한 아이디 옆에 주의 표시를 띄우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이 게임하는 친구에게 불량 유저라는 낙인 표시가 보인다고 생각하면 조심하지 않을까요. 스스로도 창피하고요.


명은: 어떤 게임은 욕설을 하면 캐릭터가 재판장에 가요. 다른 캐릭터들이 나와서 게이머를 혼내죠. 욕설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야만 다시 게임이 진행돼요. 효과가 꽤 큰 방법 같아요.

 

  ‘여성 게이머’란 이유로…
사회자: 게임 내에서 여성 게이머를 향한 희롱과 차별도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여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한다’를 뜻하는 ‘여필패’와 같이 여성 게이머를 무시하는 용어도 심심찮게 보여요.


호정: 여자라는 사실이 다른 팀원에게 알려지면 게임 패배의 원인이 여성 유저에게 돌아가요.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못하는 팀원에게 ‘너 여자니?’라고 묻더라고요. 여자인 제가 옆에서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여성은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이 깊게 박혀있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명은: 맞아요. 게임상에서 여자인 걸 드러내는 순간 저를 얕보고 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제게 팀원을 서포트 하는 ‘힐러’만 하라고 말하는 등 특정 포지션을 유도한 적도 많았고요.


호정: 애교를 요구하거나 외설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보이스채팅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게임 닉네임도 여자인지 알아채기 힘든 닉네임으로 바꾸고 최대한 여성 유저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죠.


명은: 반대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의를 베푸는 경우도 있어요. 게임에서 제 캐릭터가 죽으면 ‘저 여성분 살려주세요’라고 한다거나, 자신이 죽으면 다른 게이머에게 저를 ‘지켜달라’고 하죠. 채팅으로 추파를 던지는 게이머도 많고요. 실력 없는 게이머가 가만히 다른 게이머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의 ‘버스를 탄다’는 말도 여성 게이머에게 공공연하게 쓰여요. 남자 게이머들과 게임을 하는데 보이스 채팅으로 ‘한 명 여자네’, ‘버스 제대로 타네’라는 말을 들어야 했죠. 게임에선 여자인 걸 조금도 티내고 싶지 않아요. 못 하면 욕먹고 이기면 버스 탔다고 하거든요.


준형: 저도 여성 게이머를 향한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청소년은 이성을 향한 호기심이 성희롱 같은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 같아요.


호정: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부 성인 유저도 여성 게이머를 차별하고 비하해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게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준형: 맞아요. 게임은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여성 유저가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여자는 게임을 못 한다’는 인식은 잘못됐죠. 그래도 여성 게이머와 여성 게임 BJ가 늘고 있어서 점차 인식이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호정: 여성 게이머를 향한 차별만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남녀 캐릭터 복장에도 차이가 있죠. 보통 여성 캐릭터는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출시 86일 만에 서비스가 종료된 ‘서든어택2’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줘요. 총을 들고 싸우는 캐릭터가 왜 수영복을 입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명은: 맞아요. 남성 캐릭터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싸우는 반면 여성 캐릭터는 교복 입고 싸우는 게임을 본 적도 있어요.


준형: 게임 회사가 주 타겟층인 남성 유저를 대상으로 자극적인 마케팅을 펼친다고 생각해요. 남성 게이머 입장에서도 선정적인 마케팅은 거부감이 들죠. 모두가 불편한 게임 마케팅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달라진 시선, 남은 숙제는
사회자: 아직도 게이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아요. 왜 이런 시선이 생기게 된 걸까요.


준형: 언론 매체가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긴 것 같아요. PC방 전원을 꺼버려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자 이를 게임의 폭력성 때문이라고 보도한 것처럼요.


명은: 일반화의 오류도 많죠.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중에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언론 매체에선 그 사람이 ‘게임을 해서 그렇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죠. 그래도 지금은 게이머를 보는 시선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소모적인 취미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연봉이 높은 프로게이머나 게임 BJ가 늘면서 게이머도 돈을 버는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죠. 우리나라 게이머가 ‘e스포츠’에 두각을 보이면서 게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고요.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한국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도 모두 한국팀이 올라갔잖아요.


호정: 아무래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게이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아는 커플은 한 쪽은 게임을 안 하지만 다른 한 쪽은 게임을 즐겨요. 그러다보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싸웠죠. ‘왜 PC방에서 밤을 새우는 거야?’라고 다투면서요. 저도 게임을 하기 전엔 왜 굳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요즘 PC방은 예전 같지도 않고요.


명은: 요즘 PC방은 깔끔한 카페 같아요. 예전처럼 담배 냄새 풀풀 풍기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아니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출연자들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잖아요. 미디어에서도 게이머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사회자: 게이머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니 다행이네요. 요즘은 e스포츠나 게임 BJ처럼 ‘보는 게임’도 인기를 얻고 있어요.


호정: 맞아요. 잘하는 게이머가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게임을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종종 봐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뛰어난 게이머가 많은 반면 제작 분야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죠. 게임이 발전해야 e스포츠가 생기고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어서 투자 분위기가 활성화됐으면 해요.


명은: e스포츠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특히나 대단하게 느껴져요. 외국에서도 한국 플레이어 실력을 다들 인정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e스포츠 지원은 여전히 부족해요. TV에서 게임 경기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죠. 언론에서도 한국 플레이어의 뛰어난 실력을 잘 조명하지 않고요. 롤드컵이나 오버워치 월드컵 같은 프로 경기도 주로 유튜브를 통해서 봐야 해요. 한국이 e스포츠 강국인데도 막상 게이머가 아니고서야 잘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준형: 게임 산업이 발전해서 우리나라 게임도 인기 e스포츠 종목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건전한 게임 문화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명은: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당연히 불법으로 다운 받는 거였어요.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죠. 게임도 엄연히 저작권을 가져요. 유료 게임이라면 정당하게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형: 요즘엔 게임을 즐기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게임 산업도 그런 클린 게이머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고요. 게임 회사도 게임을 상업화하려고만 하지 말고 게임 콘텐츠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제작해줬으면 좋겠어요.


명은: 게이머의 태도도 중요해요.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한국 서버에서 게임을 하다가 외국 서버로 넘어가면 굉장히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어요. 게임의 승패와 상관없이 ‘Good Game’의 약자인 GG를 채팅에 치고 나가기도 하거든요. 게임 중 적팀과 만났을 때 싸움을 멈추고 인사하면 상대도 공격하지 않은 채로 지나가는 진풍경도 볼 수 있죠. 우리도 게임 자체를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회자: 게임을 좋아하는 여러분 덕분에 게이머의 고충을 알 수 있었어요. 게임 안과 밖의 문제가 해결돼서 게이머가 맘편히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네요. 이상 좌담회를 마치도록 할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