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바꾼 중요한 책이 있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지만 단 몇 줄의 텍스트로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있던 문제가 풀리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 순간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1997년 파리 16구,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참사를 당한 파리 알마교 근처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아파트 꼭대기 다락방에서 밤낮을 바꾸어 가며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의 보금자리인 다락방은 원래 하인들이 살던 곳으로 아침엔 비둘기와 함께 일어나고 특히 비 오는 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그날도 밤새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필립 뒤봐(Philippe Dubois)가 쓴 『사진적 행위 (acte photographique)』라는 책으로 벌써 보름 이상 씨름하던 어려운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은 프랑스에 와서 알게 된 책으로 영미 중심의 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생소한 책이었다. 사실 번역이 아니라 내용이 어려워 몇 번이고 던져버렸지만 논문의 본론으로 가면 갈수록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책이 됐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내가 참고하는 책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난해한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중 ‘사진은 텅 빈 의미 상자’ 즉 ‘의미의 수수께끼’라는 설명에 갑자기 어안이 벙벙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예술의 본질을 송두리째 흔든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해석이 안 되는 사진이 있단 말인가? 왜 사진은 수수께끼인가?

  다음날 당장 책을 들고 연락도 없이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마침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지도교수에게 당돌하게 물었다. “교수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혹시 제가 단어를 잘못 읽었나요?” 불쑥 책을 들이밀고서 내용을 묻는 동양인 유학생에게 교수는 “나 바쁘니 다음에 연락하고 와라”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도교수를 따라가 다시 물었다. “교수님 이 책을 읽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지도교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가방에서 빈 종이를 꺼내더니 종이를 가방 위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과 그 밑에 잠긴 빙산이었다. 그리고는 펜으로 빙산의 상단 부분에 지표로서 ‘index’라고 적고 동시에 하단 부분에는 물리적 원인으로서 의문표 ‘?’를 써넣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도교수의 그림은 필립 뒤봐의 책에서 ‘사진의 이해는 결과로서 분석이 아니라 그 행위의 원인에 있다’라는 명제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당시 지도교수가 알려준 그림은 논문의 핵심적인 논제를 단순한 의미 분석에서 생성 존재론(ontologie genetique)으로 바꾸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이 책은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번역해야 할 책이 됐다.

이경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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