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아니고선 말할 수 없던 여성들
  • 권희정ㆍ김예령 기자
  • 승인 2017.11.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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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로 돌아온 여성에게

공포영화보다 무서운건 현실이었다

 

보통 귀신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처녀 귀신’의 이미지다. 하지만 실제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 중 여귀가 나오는 서사는 「장화홍련전」과 ‘아랑 전설형 설화’로 대별될 만큼 그 종류나 수가 많지 않다. 한국의 대표 귀신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처녀 귀신이 귀신의 표상이 된 것일까. 나아가, 왜 한국에선 여성들이 귀신이 된 것일까.

 

  억압 속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에 답을 하기 위해선 인간이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지 알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억압된 것의 귀환’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Unheimich(두려운 낯설음)’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프로이트는 사회적인 억압을 받던 타자성이 귀환했을 때 인간은 기괴함을 느끼며 이는 곧 두려움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본래 익숙했던 것이 억압되면 그 대상은 타자화되고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이 된다. 억압된 무언가는 항상 귀환하고자 분투하고, 또 귀환한다. 이렇게 귀환한 낯선 것이 타자가 돼 인간에게 공포를 준다는 것이다.

 

  사회가 금하는 주체가 돌아온다

  바바라 크리드는 저서 『여성 괴물』(여이연 펴냄)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션(Abjection) 이론’에 근거해 개인이 모성, 나아가 여성을 타자화하고 괴기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의식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인간성으로 여겨지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경계’를 계속해서 재정의 하고 견고히 한다. 인간성으로 여겨지는 부분에 주체가 존재하며, 비인간성으로 분류되는 부분은 ‘아브젝트(Abject)’라 불린다. 아브젝트가 주체가 있는 장소로 넘어오면 인간의 주체는 위협받는다. 하지만 모든 요소가 인간성과 비인간성으로 완벽하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경계로 분류되지 않고 인간성의 질서를 교란하는 모호한 요소가 있는데, 이것이 ‘아브젝션’이다.

  아브젝션은 주체 확립에 혼란을 가중하므로 어떻게든 해결돼야 한다. 아브젝션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상을 비천하다고 치부해 아브젝트로 분류하는 것이다. 역겨운 것으로 상정된 아브젝션은 주체 확립의 방해물로 여겨져 비인간성의 영역, 즉 아브젝트의 영역으로 추방당한다.

  크리드는 이 아브젝션 개념으로 공포영화에서 괴기스럽게 재현되는 여성을 설명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선 어머니가 육아를 담당한다. 아직 완전한 주체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를 자신과 합일된 하나의 주체처럼 여긴다. 그러나 아이는 사회화를 위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상’으로 대표되는 아버지를 주체의 이상향으로 여기고 어머니와 분리됨으로써 독립된 주체를 형성해야 하는 과업을 갖는다. 온전한 주체로서 자리 잡기 위해 아이는 주체로 여겨온 어머니를 아브젝션으로 설정하고 아브젝트로 만들기 위해 모성을 열등화한다.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는 모성에서 느끼는 기괴함이 프로이트의 정리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아브젝션이 된 모성에서 기괴함을 느끼고 혐오하는 이유는 프로이트가 언급한 두려운 낯설음 때문이에요.” 주체로서 익숙했던 어머니의 존재는 아브젝션이 되면서 억압을 받고, 이는 개인이 어머니를 낯선 존재로 인식하게 해 기괴함을 주는 것이다.

 

  불필요한 억압 속 소수자가 돌아온다

  타자화로부터 온 두려움, 즉 두려운 낯설음이란 개념은 비단 개인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영역에도 적용된다.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시각과 언어 펴냄)의 저자 로빈 우드는 마르쿠제의 ‘과잉 억압’이란 개념을 차용해 사회적으로 확장된 두려운 낯설음을 설명했다. 먼저 마르쿠제는 억압이 ‘기본 억압’과 ‘과잉 억압’으로 나눠짐을 역설한다.

  이 중 기본 억압은 사회가 기본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억압이다. 살인이나 폭력을 금하는 것이 기본억압의 예다. 이와 달리 지배층이 원하는 바에 따라 피지배층에게 행해지는 억압이 과잉억압이다. 기득권층이 말하는 소위 ‘정상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상성 밖’의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과잉 억압에 해당한다.

  우드는 이 사회는 ‘일부일처-이성애적-부르주아-가부장적-자본주의자’를 정상성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정상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과 프롤레탈리아, 다른 문화나 인종 집단, 대안적인 이데올로기, 양성애 혹은 동성애, 어린이 즉 아주 단순하게는 다른 사람이 ‘비정상’이 돼 타자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자가 된 존재들은 두려운 낯설음을 유발한다.

  이 사회에 공유된 두려움이 가시화돼, 억압된 소수자가 괴물로 귀환하는 곳이 바로 공포영화다. 공포영화의 단순하고 명백한 기본 공식은 ‘정상성은 괴물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낯선 것은 정상성을 위협하고, 정상성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괴물이 된다. 영화 <맨 인 더 다크>에서 공포를 전하는 주인공이 시각 장애인이라는 점이나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이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예시다.

  한국의 공포영화에서 여성 괴물이 주로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여성 괴물 또한 한국에서 ‘과잉 억압’을 받은 존재다. 손희정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가부장제가 원하는 가치를 구현하지 않는 여성은 정상성을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발현하거나, 사회가 규정하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않은 여성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괴물이 되죠.”

 

  남성 중심 근대화, 여성 중심 공포영화

  여귀와 여성 억압의 연관성은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집중적으로 생산됐던 시대의 배경을 살펴보면 더욱 공고해진다. 한국 공포 영화가 집중적으로 생산됐던 시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친 근대화 시기와, 외환위기 후였던 2000년대였다.

  우선 근대화 시기부터 들여다보자면, 1960년대 초는 여성이 공적 영역에 많이 진출해있던 시기였다. 가정에 남성이 부재했던 1950년대 한국 전쟁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생계부양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이렇게 공적 영역에 나온 여성들을 다시금 사적 영역으로 들여보내려 했다. 근대화라는 가치 자체가 행동, 성취로 전형화 된 ‘남성성’을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활동에서 꽤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가부장제 가정 속에 편입시키는 과정은 불만을 야기했다. 백문임 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는 이러한 불만들이 가시화된 것이 1960년대 여귀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잔여적인 불만은 정치나 경제, 사회 담론에선 잘 안 드러나고 문화적으로 드러나요. 그게 공포영화였던 거죠.”

 

  처녀 귀신 때문이 아니야

  1차 공포영화기의 여귀는 「장화홍련전」이나 아랑형 전설 등의 전래 귀신담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백문임 교수는 저서인 『월하의 여곡성』에서 그렇게 생성된 여귀들이 전래 귀신담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고 설명했다.

  전래 귀신담에서 여귀는 보통 가족관계와 정조를 둘러싼 문제로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유교 사회에선 시집을 가지 못한 여성은 ‘비정상성’의 표상이었고 가장 비천한 존재였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이 원귀가 돼서 돌아온 이유는 복수가 아니라 억울함을 풀고 다시금 ‘정상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좥장화홍련전좦에서 장화와 홍련은 직접 복수를 행하기보단 사또와 같은 유력자에게 읍소해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존재 자체는 두려울지라도 근본적으론 가여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1차 공포영화기 공포영화에서 드러난 여귀들은 전래 민담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정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과거 여귀와 달리 섹슈얼리티와 욕망이란 근대적 요소를 지녔기 때문이다. 『월하의 여곡성』은 이미 섹슈얼리티에 ‘오염’된 그들은 ‘정상’으로 포섭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더 두려운 존재가 됐다고 서술한다. 결국 1차 공포영화기에 나타났던 귀신들은 전통 민담보단, 1960년대 억압받았던 여성의 위치와 여성에 대한 인식에서 형성된 것이다.

 

  괴물이 돼야만 보이는

  2차 공포영화의 전성기 역시 여성 억압의 키워드로 설명된다. 2차 공포영화기는 1998년 <여고괴담>, 즉 외환위기 시기부터 시작됐다. 손희정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논문 「한국의 근대성과 모성재현의 문제 : 포스트 뉴 웨이브의 공포영화를 중심으로」에서 외환위기와 여귀전성시대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한국은 IMF가 요구하는 경제구조 조정을 강제적으로 이행했어야만 했다. 이때 가장 먼저 구조 조정 대상에 올랐던 것이 바로 여성들이었고 특히 기혼 여성은 정리해고 1순위에 올랐다.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내쫓겼다.

  하지만 이렇게 공적 영역에서 거세된 여성들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외환 위기는 남성 중심의 산업발달과 근대화의 실패를 의미했다.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근대화’가 실패하자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전근대’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해졌다. 이때 사회는 전근대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 다시금 남성성을 끌어왔다. 공적 영역의 일은 모두 남성에게 부여됐고 이 때문에 외환 위기는 온전히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게 된’ ‘남성의 위기’로 해석됐다. 사회적으로는 ‘남성 기 살리기’가 강조됐다. 손희정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이 시기에 여성은 비가시화 됐다고 말했다. “외환 위기 이후 한국 영화는 남성 주체의 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과 주체는 남성이 되고, 여성들은 상징적으로 소멸되죠.”

  억압받고, 일반적인 서사에서 사라진 여성들이 향할 수 있던 곳은 한정적이었다. 손희정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그렇게 소멸된 여성 캐릭터가 들어간 곳이 공포영화였다고 말했다.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거세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식, 혹은 무의식이 여성을 위험하고 문제적인 것으로 그리고자 했던 거죠. 여성들은 유령이 되거나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한국 영화의 그 수많은 여성 귀신들은 공포영화가 아니고서는 모습을 드러낼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던 여성들의 위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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