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에게만 '특별한' 육아
  • 권희정 기자
  • 승인 2017.11.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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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빠가 되는게 
재미있는 세상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진 시리즈가 SNS상에서 화제가 됐었다. 편안히 TV를 보기 위해 아이를 벽에 붙여놓는다든가, 아이에게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장난을 치는 사진들이 주를 이뤘다.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면 ‘이런 꼴’이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이의 조합이 특별한 것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육아가 자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TV 예능이다. 최근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부터 <아빠본색>, <아빠를 부탁해> 등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그린 일명 ‘아빠 예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며 아버지의 육아는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다.


  드물어서 잘 보인다
  이승한 문화평론가는 아빠 예능이 떠오르는 가장 큰 원인을 예능의 장르적 특성에서 찾았다. 예능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이나 우스꽝스럽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장르적 특성을 가졌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의 육아’는 그 자체로 낯선 풍경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가부장제 가정 내에서 육아는 전통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라는 그림 자체가 익숙지 않은 거죠. 그 탓에 육아를 잘 하는 남자는 새로운 볼거리가 되고 육아에 서툰 남자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놀리기 좋은 예능 소재가 됩니다.”


  실제로도 아빠 예능의 대다수는 초반부에 ‘서툰 아빠들’에 초점을 맞췄다. 떡국을 끓여준다면서 떡을 수제비처럼 손으로 뭉텅하게 자르는 모습이라든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 자녀의 생일이나 혈액형을 기억하지 못한 채 멋쩍은 웃음을 짓는 모습 등이 그렇다. 제작진은 이런 모습에 유머러스한 자막을 넣어 마치 그 상황이 우스운 것처럼 표현한다.


  이는 육아에 능숙한 아버지를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능숙하게 아이에게 줄 이유식을 요리하는 아버지(기태영)를 표현할 때는 그의 이름과 아줌마라는 단어를 합성해 ‘기줌마’ 등의 표현을 쓰며 특수성을 부각했다. 육아를 잘하는 남성은, 아줌마 즉 여성의 성질을 가진 특수한 존재라는 식의 표현이다. 어머니의 육아를 당연시하는 현실 속에서 아버지의 육아는 무엇을 해도 예능이 됐다.


  하지만 위 이유만으로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예능의 범람을 설명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들은 아이와의 관계에 점점 익숙해지고 서툰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이승한 평론가는 아빠 예능이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 ‘아버지 되기 서사’를 꼽았다. 전통적인 가부장제가 힘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가정 내에서 새로운 위치를 점해야 했다. 그러나 그 기로에서 많은 남성은 가부장제적 아버지상을 포기함과 동시에 일체의 아버지상까지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성장을 거부하고 철없는 ‘덩치만 큰 어린아이’로 머무르며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남성이 ‘어린아이’로 머무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최근 사회 분위기 탓에 ‘아버지’라는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당연한 일조차 드문 볼거리가 돼 버린 거죠.” 여성은 아이가 생기는 순간 자동으로 ‘어머니’가 되지만, 남성은 아이가 생긴 이후에도 ‘아버지 되기’를 뒤로 미루고 선택할 수 있었다.


  ‘현실’엔 없는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 남성들이 택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친구와도 같은 형태였다. 친구(Friend)와 아빠(Daddy)의 합성어 ‘프렌디(Friendy)’라는 단어가 생성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빠 예능에서 아버지들이 보이는 모습도 이와 같았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와 허물없이 어울려 축구를 하는 모습이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의 아이들과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은 과거 전통적 가부장제 아버지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아빠 예능은 육아를 어머니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고 있고 새로운 아버지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라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한희정 교수(국민대 교양대학)는 아빠 예능이 표면적으로 가부장성을 해체하는 듯 보이나 은연중에 가부장성을 재생산한다고 말한다. “예능 속 아버지들은 친구와 같은 모습을 하고서도 일상에서 자녀들에게 전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해요. 아버지의 질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성을 답습하고 있는 거죠.”


  유달리 활달한 여자아이에게 끊임없이 ‘조신할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나, 겁을 내는 남자아이에게 ‘남자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냐’고 묻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여전히 건재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은연중에 아버지라는 ‘가장’의 이름으로 아이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다. 영상에 달리는 자막도 마찬가지다. 남자아이들에겐 ‘박력’ 등의 적극성을 강조한 자막들이 달리고 여자아이들에겐 ‘수줍’ 등 소극성을 강조한 자막이 주로 달린다. 친구 같은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 뒤에는 가부장적 질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한희정 교수는 아빠 예능이 보여주는 육아는 이벤트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테마 공원, 음식점과 갖가지 체험장 등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하는 공간은 일상적이지 않아요. 이는 자칫 이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풍족한 물질성에서 찾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엄마 없이 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48시간‘이란 컨셉을 가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버지와 아이는 대부분 외출을 하고 무언가를 소비하며 즐긴다. 대부분 집이란 한정적인 공간에서 늘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어머니의 육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로써 아버지의 육아는 ‘일상’이라기보다 ‘특별’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부를 가진 중산층 가정이 아니고서는 비용이 드는 야외활동을 그렇게 자주 할 수 없다. 아빠 예능 서사에서 특별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아버지의 부다. 아빠 예능은 현실 부모의 일상적인 육아라기보단 아빠들의 ‘특별한’ 육아만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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