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 할 길

 

카멜레온의 생존법은 ‘변화’다. 푸른 잔디밭에서는 선명한 녹색, 나무줄기에서는 고동색으로 주변의 색과 자신의 색을 맞춰나간다. 시대와 함께 변화해 온 총학생회(총학)도 카멜레온의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대학 밖의 정치·사회 분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과거에서부터 대학 내 개인의 인권과 복지에 집중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총학은 학생을 대변해 목소리를 높이는 유일한 기구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닥뜨린 총학은 또 어떤 생존법을 택해야 할까. 대학 사회 내의 총학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과 이야기해봤다.

 

총학 역할 변화는

시대가 주는 숙명


  과거로 비춰본 현재
  1980년대는 사회 전체가 총학의 무대였다. 당시 총학은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대학생들을 사회 민주화를 이끈 주체로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 정문 앞에서는 총학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진행됐어요. 1학년 학생들이라면 대부분이 학과나 단대 학생회에 소속돼 있을 만큼 총학을 향한 관심과 지지가 높았죠.” 윤종빈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과거 대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총학을 회상했다.


  당시 총학이 학내 사안을 넘어 대학 외부의 정치, 사회, 노동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시대로부터 부여된 대학의 역할 때문이었다. 1980년대 대학진학률은 20~30% 정도였다. ‘대학생’은 사회에서 ‘교육받은 소수의 지식인’이었고 이 특수성이 대학생들을 대학 밖으로 불러냈다. 이들은 시대부름에 맞게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기반으로 군사독재라는 불우한 시대적 상황을 타파하고자 움직였다. 그 때문에 전체 대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은 당시 많은 대학생이 관심을 보이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로 확고한 방향성과 지위를 획득해나갔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대학 사회도 변했다.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으로 높아졌고 ‘대학생’은 ‘지식인’의 지위를 잃게 됐다. 사회적 책임감에서 벗어난 대학생은 정치·사회 등 거대한 문제보다는 개인의 진로와 복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총학 역시 대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춰 구성원 개인의 복지와 인권 증진에 집중했다. 사회와 대학생들의 변화에 따라 총학의 역할도 변화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총학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총학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과거에는 전체 학생들이 그들의 자치성을 보장했다. 하지만 총학과 학생 사회를 향한 관심이 감소한 지금, 뚜렷한 대의 없이 복지사업 등 소극적인 영역에만 힘을 쏟는 총학이 그 지위와 존재를 보장받을 방법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학칙을 통한 제도화다. 학칙 상에 총학의 존재를 인정하는 조항을 기입, 총학의 자치성과 존재의 정당성을 명문화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독소 조항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학칙에의 명시는 총학에 안정성과 정당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독립성과 자율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대 학칙 제5절 제62조(학생회)에는 총학생회를 대학에 필요한 존재로 인준하고 있지만 학생회의 조직과 운영에 관해선 ‘학칙과 관련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백승욱 교수(사회학과)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치의 의미가 아닌 본부가 인정하는 총학의 지위에 우려를 표했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총학이 협조나 인정이라는 명목 하에 대학본부로부터 독립성을 잃게 될 위험이 있죠. 총학이 일은 하지만 대학본부에 귀속됨에 따라 민감하거나 본부와 학생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는 회피하는 등 본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의 총학과는 성격이 다른 별개의 학생 기구가 등장했다. 학생들은 그를 통해 학생 사회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피력할 수 있게 됐고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 또한 수용할 수 있었다. 서울대의 본관점거본부나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사업 반대 농성의 지도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중앙대의 의혈본부가 그 사례다.

 

건전한 학생 사회로의 발전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


  함께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생 기구의 한계는 명확하다. 학생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정당성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우선 총학은 전체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하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대표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다. 반면 별도의 학생 기구는 학생이 직접 구성한 학생 조직이지만 공식적인 선출 과정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을 대표할 수 있는 기구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윤종빈 교수는 총학을 비롯한 전체 학생들의 협의를 통해 학생 기구의 정당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생 학생 기구가 총학과의 협의를 통해 전체 학생들로부터 정당성을 승인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야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죠.” 학생 기구가 독자적으로 나아가기보다 총학과 연계해 다수의 학생에게 인준을 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모델의 등장은 기존 모델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새로운 학생 기구의 등장이 기존 학생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승욱 교수는 새로운 학생 기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고 답했다. “새로운 학생 기구가 등장하면서 학생들은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을 비교하면서 무엇이 더 적절한지를 판단해요. 그 판단의 기준을 정립하면서 학생들은 대학 내에서 자신의 권리와 역할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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