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고 있지만 막상 나의 대학 생활은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았다. 아침 수업은 밥 먹듯이 자체휴강이었고 오후 느지막이 하루가 저무는 기운이 감돌 때쯤 비로소 ‘등교’하여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또 하루를 무료해하며 시간을 보냈다. 20대에 주어진 무한한 선택의 자유라는 선물이 못내 무거워 매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도망을 다니던 시간이었다.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는 오가는 누군가와 술 마실 기회를 잡아보려고 저녁이 되면 죽치고 앉아있던 한 서점에서 집어 들었을 게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탈한 자가 문득」

  몇 학번 선배뻘인 시인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방황, 선택, 도전, 일탈의 숙제를 내 눈앞에 떡 던져주었다. 시집의 다른 시들에서 엿보이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과 고통의 자백을 읽고 있자면 이 시에서의 의연함은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조금 용기를 내어 20대를 마주하기로 했다.

  매해 새로운 제자들을 맞이하면서 참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생활과 달리 새로운 세상을 기웃거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 커진다. 물론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막연하고 두렵다. 깔끔하게 계획되고 재단된 미래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이탈하지 못하는 궤도를 과감하게 이탈할 자유가 가장 공식적으로 주어진 때가 지금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고와 고민, 자신에 대한 성찰과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경험에 아름다운 20대를 바치길 소망한다.

  새내기들이 ‘교수님의 한 말씀’을 청할 때 나는 주저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연애도 꼭 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펼쳐 든 이 시집에서 귀퉁이가 접힌 부분을 펼쳐보니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 있다. 가을, 우리 중대생에게도 이런 사랑이 함께하길 바라본다.

  자다가도 일어나 술을 마시는 이유는
  경의선의 코스모스에서 치명적인
  냄새를 맡았기 때문.
  최초의 착란,
  그 순간 지진이 있었고
  붉은 태양의 시간이 흐른 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던 그이가
  세상 단 한 사람만을 미워하게 되었기 때문.
  잊기에는 생이 짧다는 것을. 

  -「아아」

장영은 교수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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