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인사동에서 내몰리는 작은 가게들을 살리자는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 이후 그 가게들은 다시 영업할 수 있었고 독특한 장소로 재탄생돼 여전히 살아있다. 이 때 당시의 현실과 겹쳐지면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영화가 있었다.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최근 젊은이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가 많다. 삼청동길, 경리단길, 연남동 등. 특색 있는 작은 가게들이 연이어선 거리들은 삭막한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 나만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는 독특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소들은 주목받았다가 이내 시들기도, 새로운 곳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여러 선진 도시가 겪었듯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존재한다. 이는 자생적이든 계획적이든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로 인해 지역경제와 환경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기존 상인과 주민이 원치 않게 떠나야만 하는 부작용도 있다.


  뉴욕 맨해튼의 걷기 좋은 거리엔 길모퉁이마다 작은 가게가 휴식처나 이정표의 역할을 하며 거대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크고 새롭고 빠른 것이 주는 순간의 마력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고 느린 것이 주는 은근한 매력이 주목받는 현실에서 <유브 갓 메일>은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를 중심으로 아름답고 잔잔한 러브라인을 그려낸다. 영화는 조 폭스(톰 행크스 분)와 캐슬린 켈리(맥 라이언 분)가 우연히 인터넷 채팅에서 만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사랑과 그들이 마주친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주 멋진 가을날, 인터넷 세상을 암시하듯 뉴욕의 3D 모델링이 펼쳐지면서 맨해튼 전경 속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브로드웨이를 지나 어퍼웨스트 72가 부근의 골목길에서 실사 장면으로 바뀌면서 시작한다. 캐슬린은 어머니의 유산인 작은 아동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뉴욕커다. 하지만 그의 서점 부근에 대형서점 체인인 ‘팍스북스’가 입점하면서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동네 명소인 그의 서점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팍스북스 사장인 조는 캐슬린과의 채팅에서 그가 싫어하는 대형서점의 사장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작은 서점은 문을 닫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어진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도시의 한 장소를 지켜온 작은 가게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추억과 길모퉁이의 작은 이정표가 지워진 것을 그리고 있진 않다. 감독이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닌가?

 
  요즘 도시재생 ‘뉴딜’이 화제다. 지난 개발시대에는 건물을 대규모로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의 재생시대에는 맞춤형으로 도시를 살리는 추세다. 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며 현실 수요에 대응하는 도시발전 전략이다. 이 영화는 달달한 연애 스토리보다 더 진한 도시민의 삶과 살기 좋은 도시의 소망을 말한다. 난 가을이면 이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 같지 않은 현실의 도시 속에서 좋은 도시를 만들기를 다짐한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배웅규 교수

도시시스템공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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