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죠. 그런 변화의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우리 사회의 티핑 포인트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은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에 티핑 포인트를 찍어보겠습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 내각 30% 임명을 달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여성이 주로 담당했던 특정 부처가 아닌 외교부, 고용노동부 등에도 여성 장관의 임용을 확대하며 기존의 성인지적 관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어떨까요?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을 통해 그들이 처한 실태를 알아보고 그 해결책을 논의해봤습니다.

 
여성 전임교원의 현주소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생겨난 미국 여자 프로야구를 다룬 영화다. 영화 제목인 ‘그들만의 리그’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당사자들만이 활동하다가 사라진 미국 여자 프로야구리그를 가리킨다. 당시 영화는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제목은 관용구로서 여러 상황에 두루 쓰이고 있다. 주로 특정 조직이나 집단이 주류를 차지하고 그들끼리만 패권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해당 문구가 사용되곤 한다. 지금의 대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남성 교원이 여전히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도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한 것이다. 대학 내 전임교원의 성비 불균형 실태를 점검하고 그 원인을 분석해봤다.
 

 
  수치가 말하는 현실
  서울권 사립대학 13곳의 학부 여성 전임교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13개 대학 모두 여성 전임교원의 수가 남성 전임교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밝혀졌다. 전체 전임교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대학은 ▲국민대 ▲중앙대 ▲한양대 ▲홍익대로 총 4개에 불과했다. 한양대는 총 565명의 전임교원 중 149명이 여성으로 약 26.37%를 차지해 조사 대학 중 가장 높은 여성 전임교원 비율을 확보하고 있다. 뒤를 이어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숭실대 ▲연세대 ▲한국외대 등 총 7개 대학의 여성 전임교원 비율은 15%에서 20% 사이에 머물렀다. 여성 전임교원 비율이 15% 이하인 대학은 동국대와 서강대로 각각 약 13.23%, 약 12.69%에 그쳐 극심한 성비 불균형을 드러냈다. 그 중 서강대는 총 323명의 전임교원 중 여성은 41명으로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이 가장 낮았다.

  조사한 13개 대학 중 중앙대의 여성 전임교원 확보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중앙대 양캠 전임교원 수는 총 974명이다. 그 중 208명이 여성으로 이는 전체 전임교원의 약 21.35%를 차지하는 수치다. 그러나 단대별 전임교원 성비를 분석한 결과 일부 단대에 특정 성별이 편중돼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총 14개 단대 중 여성 전임교원이 남성 전임교원보다 많은 단대는 적십자간호대와 사범대뿐이었다. 적십자간호대의 전임교원 36명은 모두 여성이었으며 사범대의 경우 37명의 전임교원 중 여성은 19명으로 약 51.35%의 비율을 보였다. 이민아 교수(사회학과)는 특정 단대에 여성이 집중된 현상을 성역할 고정관념이 대학에도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간호학과와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학문단위에는 여성 전임교원이 비교적 많이 분포해 있어요. 해당 학문에 여성 전임교원이 많은 것은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교원 임용이나 인력 형성에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죠.”

  두 단대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단대는 남성 전임교원이 여성 전임교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공대와 자연대를 비롯한 이공계열의 여성 전임교원 비율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성 전임교원이 가장 적은 공대의 경우 총 90명의 전임교원 중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다. 창의ICT공대 역시 84명의 전임교원 중 여성 전임교원은 6명으로 약 7.14%를 차지했으며 자연대의 경우에도 60명의 전임교원 중 여성은 6명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이 미비한 원인 중 하나를 ‘여성 인력풀 부족’으로 들었다. “전체적으로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의 수가 부족한 점에는 공감하고 있어요. 하지만 공대나 자연대의 경우에는 여성 전임교원 지원자가 애초에 별로 없는 상황이라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김창일 교무처장(전자전기공학부 교수)은 여성 전임교원의 부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암묵적으로 배제된 여성
  이렇듯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은 현저히 적다. 이민아 교수는 대학 내 여성 전임교원 문제를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가 대학에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고 해석했다.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이에요. 여성 학부생도 증가하고 있고 여성의 대학원 진학률도 높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남성 전임교원이 절대 다수인 것은 대학사회가 아직 성평등의 기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죠.”

  전선애 국제대학원장(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교수사회 내에서도 작용해 ‘남성은 가장이다’는 사회통념이 남성 교원의 전임 채용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남성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에 안정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교원들 사이에서도 남성 교원의 전임 채용을 여성의 경우보다 더 걱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전임교원의 성비 불균형은 대학의 보직 교원 수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중앙대에서 학·처장 수준의 보직을 맡은 교원 28명 중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하다. 김창일 교무처장은 교원의 보직 임명에 있어서 의도적인 여성 배제는 없다고 말했다. “여성 교원을 보직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차별은 없어요. 해당 교원에게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성별에 상관없이 임명하려고 하고 있죠.”
 
  전선애 대학원장은 보직을 맡을 교원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여성 교원이 배제되고 있다고 답했다. “학장 이상의 보직에는 함께 동고동락한 경험이 있는 동료나 후배를 추천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존의 남성 보직 교원이 다시 가까운 남성을 추천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성 보직 교원의 수가 유지되는 거죠.” 채용이나 임명에서 가시적인 차별은 없지만 남성 전임교원들만의 암묵적인 네트워크로 인해 여성 교원의 보직 진출이 더뎌진다는 것이다.

  평등한 대학, 평등한 사회
  대학 내 전임교원의 성비 불균형은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김창일 교무처장은 대학본부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있으며 여성 전임교원 채용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학부생의 편의나 대학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교원을 고루 채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학은 여성뿐만 아니라 외국인 등 전임교원의 다양성을 보장할 의무가 있죠.”

  남성이 다수인 남성 중심의 교수사회에서 여성 교원은 상대적 소수자의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학에서 여성 교원들이 소수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성이 위축된 모습을 지켜보는 여학생들은 그들 스스로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할 이유에 회의를 느끼기 쉽죠.” 전선애 교수는 대학 내 교수사회의 불평등이 여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킬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 교수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민아 교수는 대학사회의 성평등이 사회 전체의 성평등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모든 학생이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바탕으로 사회에 뻗어나가기 위해선 평등한 교육이 반드시 선행돼야 해요. 그리고 평등한 교육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평등한 교원 구성이 전제돼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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